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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Dec 25. 2022

나는 어떻게 읽힐까?

버리는 중 알쓸민잡 - 2. 책장정리

이사를 결정했다. 불가피한 상황은 아니었고, 다만 지금 집에서 더 살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처음 이곳을 선택했던 이유들 중 여전한 장점들이 있지만 살아온 시간이 생각을 바꾸기도 하니깐. 이사를 결심하니 그때부터 집안에 뵈는 것들이 죄다 ‘짐’으로 다가왔다. 처음 독립해 나올 때는 이삿짐센터도 부르지 않은 채 차로 몇 번 오가고 말았는데 살림이 많이도 늘었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 십 년을 모조리 드러낼 수야 없겠지만 ‘최대한 버리기’를 마음먹었다. 그 과정 중 알쓸민잡, 알아둬야 쓸데없는 민주의 잡생각


네모 반듯해 차곡차곡 쌓기도 좋아 포장이 어렵지 않아 뵈는데 ‘책이 진짜 짐이다’라는 말을 제법 자주 들었다. 이사 견적을 받을 때 큰 가구로 책장이 있다고 하니 책이 빼곡한 지 묻는 걸 봐서 괜한 말은 아니겠다. 하긴 그 무게를 무시할 수 없지. 책이 엄청 많은 축에는 끼지 않는다. 더부살이했던 언니네에 있는 책들은 설사 내가 샀더라도 내 책, 니 책 구분하지 않았고, 그래서 독립할 때 나 외에겐 그저 종이 묶음에 불과한 것들만 챙겨 나왔었다. 또, 다른 것에 비하여 욕심을 부리는 게 책인 건 분명하지만 어디 가서 독서광이라고 내세울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 이삿짐센터에서 혀를 내두르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을 놓지 않고 그들의 예상치를 넘기지 않기로 했다. 싣고 가는 책장 용량을 초과하지 않게, 아무렴 추가로 책장을 들이는 일 없이 정리하기도 그 편이 나을 테다. 처분할 책과 CD를 추리고, 버리는 방법밖에 없는 것과 누군가는 관심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을 나눴다. 후자를 두고 중고 판매를 알아볼 수도 있었는데 우선 지인들에게 목록을 보냈다. 완판은 못 됐지만 몇몇이 열의를 보여 대부분 새 주인을 찾았다. 책장 한 두 칸은 비우지 싶다. 얼마간 신간을 구입하기에 부담을 덜었다.


“아빠, 또 돌아가신 분 생각하고 계십니까?”

“김선우 씨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인턴이 돼서 공장에 나가는 청년이었고 대학에 진학하려고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고 가장 바라는 꿈은 정규직이 되는 것?”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무브 투 헤븐> 중 한 장면이다. 유품정리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죽은 사람이 남긴 물건으로 사연을 읽어내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뿐 아니라 작년엔 유독 이 직업을 매체에서 여러 번 만났다. 무연고는 아니니 그들의 도움을 받게 될까 하면서도 1인 가구이기도 해서 모를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직업이 특이하거나 두드러진 취미가 있지 않아 필수적인 살림살이 말고는 별다른 게 없는 편이다. 그렇다면 일면식도 없는 이가 나의 삶을 추정할 단서는 어쩌면 책장이 유일하지 않을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리나? 그래서 살아온 궤적과 취향, 바라던 바를 비교적 정확히 짐작하게 하는지, 도리어 노이즈를 만드는지가 책장 정리의 기준이 되었다. 졸업 후 펼쳐본 적이 있었나 가물거리는 전공 서적 중 대다수를 폐기하면서도 그 끝에서 밥벌이하는 터라 기초가 되는 몇 권을 꽂은 채 두고, 무릇 잡지는 지난 호는 지난 이야기가 되는 법이지만 수십 권의 『더뮤지컬』을 남긴 이유다.


<무브 투 헤븐>


몇 년 후 동일한 기준으로 다시 책장을 정리하게 된다면 지금 남긴 것들이 그대로 살아남을지 가차 없이 버려질지 슬쩍 궁금해진다. 취향이 변할까? 지향점이 달라질까? 여전히 지금과 똑같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기쁠지 슬플지도 가 봐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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