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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Feb 26. 2023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는 이유

버리는 중 알쓸민잡 - 4. 가구구매

이사를 결정했다. 불가피한 상황은 아니었고, 다만 지금 집에서 더 살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처음 이곳을 선택했던 이유들 중 여전한 장점들이 있지만 살아온 시간이 생각을 바꾸기도 하니깐. 이사를 결심하니 그때부터 집안에 뵈는 것들이 죄다 ‘짐’으로 다가왔다. 처음 독립해 나올 때는 이삿짐센터도 부르지 않은 채 차로 몇 번 오가고 말았는데 살림이 많이도 늘었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 십 년을 모조리 드러낼 수야 없겠지만 ‘최대한 버리기’를 마음먹었다. 그 과정 중 알쓸민잡, 알아둬야 쓸데없는 민주의 잡생각


1톤 트럭 한 대. 업체 분이 테트리스 하듯 끼워 넣기의 신공을 발휘하시기도 했지만 말씀하시길 원룸 이사보다도 짐은 없는 편이라고 인증해 주셨다. 짐을 줄이자는 다짐을 잘 실천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런데 새집에 와서 깨달았다. ‘최대한 버리기’를 잘 수행했기보다 그냥 부피가 나가는 가전가구들이 적었던 덕이다. 대형폐기물 비용만 십만 원 넘게 치렀으니 웬만한 건 죄다 버렸다고 할 수 있다. 뭐 이도 ‘버리기’의 하나이고 이제 와 너무 다 버렸나 후회하지도 않는다. 다만 침대 없이 바닥에 요를 깔고 상을 펴서 식탁과 책상을 대신하며 많은 물건들을 꾸렸던 모양 그대로 널브러뜨린 채 무려 한 달 이상을 지내야 했다. 가구를 새로 장만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예외적으로 버리기가 아닌 사들이기 중 알쓸민잡.


‘메모리폼이 어쩌고, 편백나무가 좋고......’ 본래 쓰던 침대는 말 그대로 ‘대충’ 샀던 싸구려였는데 둔감해 그런지 큰 불편은 몰랐다. 그래서 사실 일이 년 더 버티려고도 했는데 이사 당일 매트리스를 드러내고 보니 그간 이 내 몸을 어떻게 견뎠나 싶게 프레임이 망가져 있었다. 딱 3초 고민하고 “안 실을게요” 했다. 그 꼴을 봤으니 이젠 대충 살 수 없다. 그런데 저게 다 무슨 소리? 클릭 한두 번에 새로운 단어는 서너 개가 튀어나왔다. 모르는 단어를 검색창에 두드리면 또 어마한 양의 콘텐츠가 화면을 채웠다. 당연히 침대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가구마다 신세계가 열렸다. 같은 원자재에 스펙도 얼추 비슷한데 가격은 또 왜 이렇게 천차만별인지, ‘대충’ 안 하려다...... 결국 무한 검색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여기에 두신다고요?” 설치 기사는 짐짓 놀라며 물었고, 식탁을 거실에 놓는 게 그리 의아할 일인가 싶어 내가 오히려 조금 당황했다. “헤드는 어느 쪽으로 하실 건데요?” 당황이 배가됐다. 진짜 사각 식탁에도 머리와 꼬리가 있는데 내가 모르는 줄 생각했다. 그러다 파악되기를, 식탁이 아닌 침대라는 것이다. 비로소 질문들은 이해가 됐지만 당황스러움은 절정에 이르렀다. 식탁 배송이라는 말에 거실의 너저분한 것들을 급한 대로 안방으로 쓸어 옮긴 참인데 안방에 들일 침대가 온 거라니! 양해를 구하고 안방을 치워야 하나, 금방 치울 수는 있는 수준인가 붕괴가 온 멘탈에, 주문도 침대가 먼저였는데 왜 착각했을까 자책을 얹고 또 얹었다. 그때 들린 기사의 말소리, “아, 식탁이 맞네, 침대는 다음 집이네”


결국 괜한 멘붕이었다. 단지 동시에 여러 가구를 들이다 보니 정황이 맞아떨어져 이런 웃픈 에피소드까지 생기더란 말이다. 이날은 웃고 말면 그만이었지만 사실 가구 하나를 살 땐 대수롭지 않았을 과정들이 여러 건이 되니 어지간히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침대는 배송일이 조율되지 않아 평일 일하다 말고 사무실 이석을 했다. 책상을 직접 조립하다 진을 뺀 나머지 의자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나서 조립해서 현관 앞에 둬 주시라고 부탁을 드려야만 했다. 기사가 침대 벙커 덮개를 놓쳐 바닥에 그대로 내리꽂히는 사고도 있었다. 따로따로 생각하면 가벼이 여겼을 일들을 연거푸 하니 신경을 꽤나 잡아먹었다.


인테리어에 진심이었던 것도 아니다. 북유럽풍이니 빈티지 감성이니 마음만 먹으면 예쁜 사진들이 셀 수 없이 쏟아지겠지만 인테리어의 ‘인’도 검색창에 두들기지 않았다. 열심히 직접 발품을 파느라 에너지를 쏟았나 하면 그도 전혀. 친구와 I 매장을 한번 방문하긴 했으나 ‘아, 이렇구나’ 하며 훑기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꾸미기도 아닌 겨우 ‘갖추기’ 위한 검색과 주문, 배송과 설치, 그 최소한의 과정조차 위에 썼듯 그렇게 버거울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두 가지 다짐을 했다. 하나, 곱게 오래 쓰자. 둘, 반드시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말자. 유행을 좇는 것도 아니고 당위도 모르겠다. 다만 힘들어서 미니멀리스트를 꿈꾼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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