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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를 읽었을까

하루하루 쌓아뒀던 오래된 기억, 잊혀진 기록

by DW Feb 23. 2025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를 읽었을까


논문을 찾아보다 어지러이 켜놓은 구글 크롬 창은 벌써 20개가 넘는 탭들이 제목도 안보이게 늘어져 있다.

한번에 스크랩해뒀다가 내일 찬찬히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한번에 저장할 방법이 없나 찾아보다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름이 검색창에 떠올랐다.


‘에버노트’

2011년 군대 전역하고부터 21년에 개원 준비할 때, 22년까지도 가끔 썼으니 10년 넘게 내 메모장 역할을 하던 어플이다.

이제 다 망해서 꺼내보기도 힘들게 되었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남아있는 기록이 없어지기라도 할까봐,

헐레벌떡 방법을 검색해가며 그동안 적어둔 글들을 내보내기 했다.


예전에 중고등학생 때는 가끔 일기를 썼다. 인사동 갔을 때였나 봤던 옛 서책 같이 생긴 수첩이 맘에 들어서 거기에 한참 일기를 적어 놓은 것이 아직도 부모님댁 서재 어딘가 잘 보관되어 있다.

기숙사 생활을 한터라 혹여나 누가 읽을까 싶어 가장 내밀한 이야기는 나름 고안한 암호로 적어놓기도 했다.

이사 후에 한번 아주 오랜만에 일기를 들춰봤을 때 분명히 나는 아니지만 나와 동질적인 누군가가 화자로서 나에게 말을 거는 신선한 체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인생은 이어져가고 내가 현 생을 사는 시간보다 기록을 남기고 그 기록을 읽을 시간은 한 없이 늘어져만 간다

어릴 때 했던 ‘아무리 책을 빨리 읽어도 새로 나오는 책이 많은 도서관의 역설’과 ‘아무리 새로운 길을 탐방해도 다른 길을 돌아보는 사이 지난길도 바뀌어버리는 골목길’의 역설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무한한 삶을 살지 않는 이상, 아니 무한한 삶을 살더라도 멀티플한 무한대로 삶과 기록의 유리된 간격은 더 벌어져 갈 뿐일테니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를 읽었을까? 

아마 중간에 파직되고 어렵게 자신을 변호해야하는 아주 일부의 순간에만 자신의 일기를 찾아볼 여유가 있었지 않았을까

아니 옥고를 치르고 여기저기 끌려다니는 와중에 적어놓은 일기를 찾아보는 것 조차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럼 그 기록들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모든 저작물은 읽혔을때, 보아졌을때, 들어졌을때 의미가 있는 것인 듯 보인다. 

아무도 보지 않은 영화, 아무도 모르는 노래들이 있다면

투입된 시간대비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망함을 어찌할까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고 사라지고 있겠지.


오랜만에 들춰본 간략히 적힌 일기들은 대체 무슨 이야긴지 이젠 알기도 어렵다

결국 내 삶의 기록은 상당한 편집을 거쳐, 새로운 형태로 저장되어, 삶과는 유리된 새로운 뭔가로 남게된다.

오랜만에 생긴 여유에 빨려들어가듯 읽은 기록들이 주는 달콤쌉쌀, 몽롱하고 멜랑콜리한 기분을 즐길 수 있는 것, 그 시절의 기분을 한번 되돌아 보는 것.

하지만 이런 기분은 아마 인생을 좀더 힘차게 한참 달린 후 정말 휴식을 취해도 괜찮을 때 느껴도 충분할 것 같다.


그래도 주말 밤 몇시간의 추억팔이 끝에 한번더 이렇게 뭔가를 써보게 하는 작은 원동력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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