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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미 선 Jul 12. 2023

조선남자 엿보기 (4화)

하루의 시작과 끝 

아침을 먹고 출근 준비를 끝낸 조선인.

뒷짐을 지고 슬슬  집안을 돌아본다.

저녁마다 산해진미로 배를  채운 탓인지 복부가 남산보다는 작지만 8개월쯤 임부의 모습을 닮았다. 

(잦은 음주)


복스러운 배를 가진 시험감독관은 무엇을 잡아 낼 것이냐.

살림꾼인 마누라의 관절들이 끙끙거린 자리엔 뭐라 꼬투리감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커닝이라도 한 사람처럼 감독관의 뒤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긴장된 자세로.


뒷짐 지고 한 바퀴 둘러본 감독관.

콜록.

콜록은 그가 감독을 끝냈다는 신호음이다. 

어설픈 기침으로 감독관을 끝내고 드디어 이중 현관문을 연다.


그가 구두를 신고 나면 나는 들고 있던 한약 봉지를 그의 호주머니에 쑤셔 박는다.

"잊어버리지 말고 제때 드셩."

감흥도 없고 재미도 없는 말꼬리를 물고 그의 오른손이 번쩍 들린다.  

손바닥을 높이 들고 쫙 펴진  오른손이  나의 오른손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아침마다 하이파이브를 해왔다.

 꽤 오래되었다. 

조선스러움이 묻어나는 사람이 이런 때는 잠깐 현대인으로 복귀를 하는 건지 하이파이브는 

절대 잊지 않는다. 

서로 마주 본 상태에서 오른손 손바닥을 쫙 맞추는 작업을 매일 아침마다 치르고 있다. 

현관문을 나서기 위한 통과의례다. 

어떤 때는 엇박자가 되어 새끼손가락을 스치고 지날 때가 있다.

똭도 아니고 촥도 아닌 미지근한 소리는 그의 인중을 늘이지 못한다.


짧은 거리에서도 그것 하나 못 맞추는 인간들이 뭘 하겠다고. 

"다시."

구령에 맞춰 하나, 둘, 셋. 

실패한 서로의 손바닥은 이제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날쌔게  서로의 손바닥을 향해 돌진한다. 

90kg이 넘는 거구와 50kg의 부딪침.


제대로 정 중앙을 강타당한 내 손바닥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아침부터 깨갱, 깨갱.

그는 경쾌하게 부딪친 손바닥의 파열음을 무지무지 좋아한다.

그럴수록 내 손바닥은 너덜너덜해진다. 

시뻘게진 손바닥으로 그에게 대여섯 번의 바이바이를 해주고서야 현관문이 닫힌다.

하이파이브를 거를 때는 서로 기분이 꿀꿀하거나 언쟁이 있을 때이다.

그런 때는 현관에서 배웅도 하지 않고 바이바이도 쉰다. 


그가 기분이 좋을 때는 하이파이브를 끝내고 나를 번쩍 안아서 높이 올리고 내리 고를 수없이 

반복한다. 

제발 내리라고 소릴 쳐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허공에서 다리가 춘향이 그네 뛰듯이 춤을 춘다. 

마치 어른이 어린 아기를 치켜들고 올리고 내리 고를 하듯이 똑 같이 반복한다.

발버둥을 치다가 겨우 바닥에 발을 디디면 어지러워서 갈릴레이의 지동설을 무한 긍정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올 때면 그는 항상 우당탕 소리를 낸다. 

현관문에 종을 하나 달아두었는데  그것이 저녁때는 깨질 듯이 울린다. 

서방님이  들어왔다는 표시다.

어찌나 세게 문을 열고 닫는지 깜짝깜짝 놀라면서 현관으로 뛰어간다. 


들어서는 그를 보고  "어서 오셩." 

보너스를 두둑이 송금한 날 저녁에는 "어서 오십시오." 상대경어법 6단계 중에서 상등급인 

`하십시오체` 를 쓴다.

미소가 찰랑찰랑 만면에 파동을 불러들인다. 


그밖에 내 기분에 따라서 인사말이 틀려진다. 

"어서 오셔."

"어서 와."

"어서 오소."

"어서 왕."

내 말에 따라서 그의 미간이 찌그러들기도 하고  인중이 길게 늘어나기도 한다.

표정을 바꾸는 것은 역시 말이다. 

말맛이 좋아야  상대에게서 됫박으로 받을 것을 말로 받는다. 


그는 저녁때 귀가할 때도 있지만 늦은 밤에 귀가할 때도 종종 있다.

늦을수록 술에 취할  확률이 높다. 

술에 취하고 들어오면 일단 내 이름을 불러댄다. 

대답을 안 하면 할 때까지 이름을 부른다.

귀찮다.

"왜, 또 얼른 씻고 자요."


술에 취할수록 "이리 와." 하면서 두 팔을 벌리고 내가 그 팔 안에 안겨들길 강요한다.

술냄새도 싫고 반 강제로 안기는 것도 싫고.

질색을 하면서 뒤로 물러나면 끝가지 쫓아와서 그 우악진 팔로 갈비뼈가 뚝 부러지도록 나를 껴안아버린다.


무슨 청춘이라고 이리도 정열적으로 애정표현을 하는지.

자기 딴에는 애정표현이라고 하는데 나는 후유증이 크다.

억센 팔로 조여 오는 힘은 약해빠진 내게 고문이 아닐 수 없다. 

팔도 시큰시큰하고 어깨도 벌게지고.


언젠가는 도망가는 암탉을 잡듯이 나를 포획하다가 책상모서리에 발이 찍혀서 한동안 고생한 적이 있다.

여자는 항상 유리잔 다루듯이 살살 다뤄야 한다고

그렇게 만리장성으로 교육을 시켰건만,

강사의 말을 엉터리로 치부했던지, 해마가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건지 도무지 고쳐지질 않는다.


이렇게 거창한 귀갓길 퍼포먼스는 늘 술에 취한 상태로 벌어진다.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은 조용하다.

완전 새색시다. 

아뭇소리 않고 밥만 먹고 TV만 보다가 잔다. 

이런 날이 땡잡는 날이다.


그의 사회생활은 무지무지 활발하다.

활동반경도 넓고 인맥도 푸짐하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뭔가를 얻어 올 때가 많다. 

상추, 감자, 버섯, 옥수수  과일과  술까지 계절에 맞게  골고루 공수를 해온다.

들고 온 보따리를 풀어보고  마음에 들면 "아이구우 좋은 거 얻어왔네용."

하면서 서둘러 그것을 제 자리에 정리해 둔다. 


그렇지 않고  시큰둥하면  "다음부터는 안 가져와. 기껏 갖다 줬더니..."

입이 대여섯 발  나오는 걸 보면서 그 입을 제자리로 들이기 위해 나는 콸콸 웃어버린다. 

장마철 도랑에 흘러가던 물처럼 콸콸 요란한 소리로 웃는 것이다.

그러면 그도 따라 웃는다.


그렇지, 그렇지. 보따리 드는 거 질색인 사람이 주는 사람 성의를 무시 못하고 

들고 왔는데 시큰둥하면 김 빠지지. 

술에 취해서 정신줄이 날아갈 만도 한데 보따리는 들고 메고  여전히 

집을  잘 찾아 들어오는 걸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그렇게 만취하고서도. 


얻어온 것들 중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술이다.

술 종류는 아무리 좋은 거 아니라 금술이라고 해도 거부반응이다.(술을 한 잔도 못 마심)

허구한 날 술에 취해 들어오는데 술이 좋을 리 없다. 

술을 들고 온 날은 슬그머니 창고 맨 뒤에 숨겨두고 누구를 줄까 궁리를 한다.


술은 많이 마시면  평소의 그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변신을 한다.

웬 말은 그렇게 많아지는 것인지 세계 수다대회라도 있으면 거기서 아마도 최우수상은 충분히 거머쥘 수 있을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장광설에 날밤을 샐 지경이다.

오죽하면 화장실 간다고 슬그머니 일어나 그 자릴 뜬다.


화장실에서 금세 나오지 않고 꾸물거리면 또 쫓아와서 쿵쾅쿵쾅 큰 북을 울린다.

아마도 그는 전생에 큰북이나 작은북처럼 타악기를 치는 연주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툭하면 울려대니 그 주먹은 안녕하신지 나중에 들여다봐야겠다. 


화장실에서 나온 나를 원위치시켜놓고 2차 3차 연설이 또다시 시작이다.

아휴! 누가 이럴 때는 좀 소음방지 귀마개라도 갖다 주시면 좋겠는데.

하다 하다 스스로 지쳐서  잠이 들면 그때서야 나도 잠을 잘 시간이 주어진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하이파이브로 시작하고  길디 긴 일장연설로 마무리를 한다.


  `쾅` 하루는 이렇듯 고달프게 닫힌다. 





3화에서 선보였던 유화 덧칠 완성. 사진이 어둡고 실물이 훨씬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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