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 버리기
어느 날은 박스가 유난히 많은 날이 있다.
그날도 그랬다.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생활필수품을 사들이다 보니 크고 작은 박스가 쌓이게 되었다.
빈 박스는 중량감 보다 부피가 커서 버리기가 불편하다.
큰 박스가 3개.
작은 박스가 3개.
그것을 한꺼번에 버리기는 힘들겠고 나눠서 들락거리자니 번거롭다.
그날따라 조선 남자가 일찍 귀가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그는 양말을 벗고 누워서 TV를 켰다.
`이참에 한 번 얘기해 볼까?`
`박스 좀 같이 갖다 버리자`고.
`아냐.`
괜히 잘못 얘기했다가 `버럭` 하면 어쩌라고.
버럭씨가 화내면 둘 다 혈압이 한라산으로 올라가잖아.
그래 그냥 혼자 버려.
그러면서도 혼자 버리긴 어딘지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는데 왜 이제 와서 억울한 생각이 드는 건지.
나도 이제 뭔가 시도를 해볼까?
맨날 그러는 것도 아니고 이참에 실행해 봐?
혼자 생각하다가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TV에 집중하고 있는 그의 표정이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다.
뭘 가져오라고 쳐다보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쳐보자.
참외를 곱게 깎아서 그가 비스듬히 누워있는 앞자리에 얌전히 내려놓았다.
그러잖아도 뭣좀 먹고 싶던 참이었는지 비스듬히 누워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그적, 와그작 식감의 리듬이 요란스럽다.
시원하고 달콤한 참외와 TV의 콜라보.
이건 절호의 찬스다.
"저기 있잖아."
TV를 보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오늘따라 박스가 많네. 나랑 둘이 저것 좀 갖다 버릴까?"
.....
순간 그의 턱관절이 가동을 멈추었다.
찰나에 멈췄던 저작 행위.
무슨 말이 나오려나 긴장으로 쳐다본 것도 잠시,
뭔 뚱딴지같은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다시 그의 이빨은 와그작 바그작 참외를 부숴버렸다.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
아! 작전 실패다.
그래도 한 번 더 시도해 보자.
"오늘따라 어깨가 아프네. 잠깐만 같이 들고나가봐요."
존댓말까지 섞어서 건네는 내 말에 무딘 반응이 왔다.
귀찮다는 표정은 여전했으나 그가 몸을 일으켰다.
자기 볼일이 있어야 일어나는 사람인데 몸을 일으켰다는 건 대단히 긍정적 표현이다.
두 번이나 도전했는데도 그래도 무반응이라면 이제 더 이상 들쑤시지 않기로 맘먹었었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내가 혼자 갖다 버리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자꾸 싫은 소릴 하는 것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좋을 거 없다는 결론이었다.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의외로 쉽게 성사가 되었다.
읍소였든 하소연이었든 그가 일어났다.
오!
시원하고 달콤한 참외와 나의 존댓말이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며 나가보라고 독려했을 터다.
남들은 말하기도 전에 쉽게 해결되는 일이건만 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속에서 신바람이 강풍을 일으켰다.
쫄랑쫄랑 근육 빠진 종아리에도 활기가 돌아왔다.
그는 큰 박스.
나는 작은 박스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탄 것까진 순탄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공동현관에 이르니 어떤 여인네 셋이서 팔짱을 끼고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앞장서서 나가던 그는 그 모습을 보고 뒤에서 쫓아가고 있는 내게 돌아왔다.
그리고 자기가 들고 있던 박스를 내 작은 박스 위에 얹더니 바람처럼 밖으로 나가버렸다.
순식간에 고층 박스를 안게 된 나는 시야가 가려진 상태로 휘청거렸다.
작은 박스 위에 얹힌 큰 박스와의 불균형으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나도 모르게 버나를 돌리게 됐다.
조선시대 남사당패의 접시 돌리기 공연에서 접시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이런 내 모습을 보다 못한 수다 떨던 아줌마 한 명이 얼른 박스를 내려주고 문을 열어주면서 즉시 접시 돌리기는 일단락 됐다.
(그냥 바닥에 내동댕이 치지 뭐 하러 그걸 돌리고 있었는지.
그 덕에 접시 돌리기 재능의 DNA를 뒤늦게 발견했음.)
박스를 내려주던 아줌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요새도 저런 남자가 있구나.
저 마누라는 참 힘들겠단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런 행동은 요즘에는 좀처럼 보기 힘들 테니까.
앞서 나갔던 남편은 박스 처리장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가 박스들을 양 떼 몰듯 끌고 밀면서 그 근처를 갈 때까지도 꼼짝 않고 서서 나를 지켜보고만 서 있었다.
겨우 몇 발자국 앞에서 그걸 들어다 처리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의 황소만 한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폭풍 같은 잔소리를 한여름 소나기 쏟아붓듯 퍼내고 싶었지만 눌렀다.
그래봐야 결국은 내가 패하고 마니까.
내가 편하려고 한 것이다.
편하게 누웠던 사람을 일으킨 건 나였다.
그는 아줌마들 앞에서 남자로서 무지무지 쪽팔리는 행동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왜 그렇게 망신 주는 거냐고 항의했어도 할 말이 없다.
그의 입장은 그렇다.
그러니 거기다 대고 뭐라 했다간 화산이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그저 묵언수행 이것만이 현명한 처세술이다.
아마도 허공을 향해 내뿜던 담배 연기 속에는
"남자는 그런 거 버리면 안 돼. 그런 거 시키지 마."
그런 메시지가 녹아 있었겠지.
다 버리고 나서 후회한 것 한 가지.
박스를 접었더라면 부피도 크지 않고 힘도 덜 들었을 것을.
그것을 미련스럽게 그대로 들고나가다가 봉변을 당했다.
젊을 때 말랑말랑하던 머리가 점점 장작개비로 굳어가는가 보다.
사람이 죽으면 몸이 굳듯이 늙는다는 것은 유연성과 거리가 멀어지는 듯하다.
생각이 풀을 먹인 듯 어석버석 소리가 나니 몸에서도 바삭바삭 과자 소리를 낸다.
조선남자의 머리는 이미 조선시대로 굳을 대로 굳어서 떠내기가 힘든다.
거기에 맞는 현대여자의 재치가 부재중이다.
다음에는 부재중인 재치를 잽싸게 장착하고 조선시대를 장악하리라.
입술을 꽈악 깨물고.
아~아악 이 흔들린다.
조선남자 길들이기는 내 생애 마지막으로 치러야 할 큰 프로젝트입니다.
100% 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30%만 고쳐져도 어디게요.
고쳐나가는 빗길에 악전고투가 예상되지만 그 속엔 포복절도할 내용도 있을 것입니다.
그 험난한 여정에 여러분들이 함께 동참해 주시면 으쌰으쌰 힘을 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