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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미 선 Jul 19. 2023

조선남자 엿보기 (5화)

길들이기


"여보, 여보 이리 와 보소."

내가 손바닥을 팔랑거리며  그를 불렀다.

냉장고 앞으로 오라고. 

그가 냉장고 앞에 서자 나는 냉장고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있잖아." 

"이건 두유."

"이건 빵."

"이건 블루베리."

"이건 삶은 계란."

"알았지이?"

"응."

 뒷짐을 지고 섰던 그가 단답형 대답을 하고 즉시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가리킨 먹거리들이 뭔지 보면 모를까.

이건 뭐다 이건 뭐다 일일이 짚어주지 않아도 다 안다. 

굳이 일일이 지적하는 것은 이튿날  아침에 먹고 가라고 다짐을 하는 것이다.

웬만하면 식탁에 차려놓으면 좋겠지만 요즘같이 후덥지근한 날씨에 훅 갈 수도 있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위치를 알려준 것이다. 


2화에서 아침밥에 대한 글을 썼고 새벽에 공을 치러 가는 날에는 밥 차리는 고달픔을 토로한 바 있다. 

그동안 나는 새벽잠을 토막 내지 않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 왔다. 

아주 꾸준하게.


언제까지나 권리가 되고 습관이 되고 의무가 되는 이 틀을 고무풍선이든, 열기구든, 

찌그러진  바가지든 꾹꾹 채워서 날려버리고 싶었다. 

새벽에 공을 치러 가는 날에는 무조건 과일과 빵으로 땜질하기 위한 나의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하야 이 쪼끄만 여자는 머리를 맴맴 돌리면서 전략에 착수했다. 


며칠 전 아침에 하이파이브를 끝내고 나는 그에게 소프트하게 속삭였다.

"오늘은 일찍 들어와요. 맛있는 거 해놓을게요."

OK. 

맛있는 거 해준다는 말에 쉽게 그가 OK 사인을 보냈다. 


그날 오전부터 장을 봐오고 저녁까지 모든 관절들이 풀 가동되었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상다리 관절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할 정도의 

음식이 올려지게 되었다. 

약속대로 일찍 귀가한 그는 앞치마까지 두르고 분주하게 오가는  나와 밥상을 번갈아 쳐다보며 

의문의 가시광선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여자가 또 무슨 아쉬운 소릴 하려고 이러나.`

언제나 아쉬운 소릴 해야 될 상황이거나 중요한 일을 관철시킬 때는 이와 비슷한 

수법을 써 왔던  경험을 상기했을 것이다. 


밥을 차려놓고 한탄 한 수저, 읍소 두 수저, 청원  세 수저가 범벅된  종합세트로

자신을 꼬드겼던 쓰린 기억을 끄집어냈을 것이다.  

그것이 실패로 돌아갈 때도 있었는데 그때는 조선시대가 완고하게 박혀버려 

무슨 수법이든 통하지 않던 초, 중기였다.

요즘은 그나마 조금  말랑말랑 해지고 있다. 


남자란 단순해서 맛있는 음식과 상냥한 말투와 애교가  섞인 여자의 말에는 

무너지기 쉬운 법. 

어려운 협상은  항상 풍요로운 식탁 앞에서 할지어다.

이것이 내 생활신조가 되었다. 

맛있는 음식과 포만감은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최고의 명약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가 욕구이론 5단계에서 생리적 욕구(여기서는 식욕)를 

첫 번째로 꼽아주지 않았던가.

한우를 두껍게 썰어서 양파, 당근, 파프리카를 넣고 사과까지 갈아 넣은  한우 조림은 

내가 먹어봐도 달착지근하고  맛있다. 

(나만의 맛간장도 풍미를 내는데 한몫.)

큼직한 고기를 그의 수저에 얹어주면서 "맛있어요? 맛있지?"

그가 대답도 하기 전에 계속 다그치고 또 다그치고.

"응, 맛있어."


오이소박이도  네 개의 갈래를 하나로 찢어서 얹어주고,

두툼하게 부쳐낸 해물 전도 먹기 쉽게 잘라주고,

채 썬 우엉조림과 이것저것 무쳐낸 나물들은 그의 수저 위에서 들락날락 변신을 거듭했다.

다섯 살 배기 막내아들 밥 떠먹이듯  거둬 먹이느라 정작 내 뱃속은 채워지지 않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맨날 나 때문에 살이 찌는 거라고,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불만 아닌 불만을 퍼냈다. 

그의 중량을 늘이는 일등공신은 술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배부르게 잘 먹었지?"

"너무 배불러.  근데 오늘 뭔 일 있어?"

 

`있지, 있지.` 이때다 싶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있잖아요, 이제 앞으로는 새벽에 공치러 갈 때 빵이나 과일로 먹고 가요."

....

"새벽 3시부터 깨있다가  밥을 하려니까 정말 힘들거든."

....

"나도 이제 나이가 먹었잖아용, 평상시는  어김없이 밥을 해주겠지만 새벽은 자기가 양보해요."


전혀 생각지도 않은 나의 제안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는 

가만히 자신을 타진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의  미간에 밭고랑을 파느냐,

인중에 탄성이 생기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집을 사고파는 문제도 아니건만 뭐 그리 신중해.

그가 심사숙고 중이다. 

째깍째깍 초침이 부지런히 지나간다.

`끄윽` 

그가 트림을 하더니 "그래 알았어. 그 대신 내가 잘 찾기 쉬운 데다 놔둬야 돼."


오! 오! 오!.

이건 로스쿨에 합격한 것보다 더 감격이야.( 언제 로스쿨에 합격해보기나 했나.)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냉장고 문을 열면 남자가 여자라도 되는 건지 문도 못 열던 사람이, 

냉장고를 열고 뭐를 꺼내 먹겠다니 이것 참 보통 혁명이 아니네.


그런 일이 있은 후 냉장고 문을 열고 요목조목 먹거리들을 가르쳐주는 천지개벽을 감행했다. 

그 첫 실행으로  아침 7시까지 뽀얗게 잠을 자고 일어날 수 있었다. 

계란 껍질과 빵 부스러기가 나 뒹굴고 있었지만 단잠을 보장한 것치곤 

그런 류의 어지름은  너무도 약소하고 초라하다.

나를 깨우지 않고 살금살금 고양이 발바닥으로 나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금메달감이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말씀처럼 "해보기나 했어?"

되든 안되든 시도는 해봤어야 했다. 

싸우기 싫어서.

울기 싫어서.

큰 소리 나는 거 싫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두었던 내 권리를  또 하나 찾아내게 되었다. 

첫 시도가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이보다 훨씬 쉽다는 걸  재삼 느꼈다. 


그동안  중세국어도 아니고  어법에 맞지 않은 언어로 그를 구슬리느라 참 힘들었다.

세종대왕님께 죄송하다. 

다 나름의 처세술이요, 전략임을 어찌하랴.


그는 주민등록상 동갑내기다.

나보다 생일이 빠를 뿐이지 친구란 말이다. 

그럼에도 가장이라는 프리미엄으로 늘 상석에서 나를 조종해 왔다. 


순종의 미덕을 세뇌시키면서 이 시대 마지막 조선남자로 군림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분이 화창할 때는 그의 인정욕구를 채워줄 수 있었지만 기분이 흐릴 때는 

경어도 아니요 하대도 아닌  "그러셩, 저러셩." 으로 나의 기분을 표출하곤 했다.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처음 본  사람에게도  "그러셩?"

했다가  아래위로 인상착의를 훑는 눈길과 마주해야 했다. 

습관은 이렇게  무의식 속에서 아무 때나 튀어나오는 오류를 범한다.

이제는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고  그와의 관계가 좀 더  화기로울 수 있도록

주력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앞으로도 고쳐나가야 할 문제들이 수두룩 하다.

껌 아무 데나 붙여놓지 않기.

과자 부스러기 치우기.

물 컵 정도는 닦아두기.

재활용 제대로 분류하기.


"물 한 컵 가져와. 과일 가져와." 명령하지 않기. 

옷 아무 데나 팽개쳐두지 않기. 

등등 고쳐야 할  과제들이 아직도 수북하다. 


아무튼 새벽 3시부터 눈을 뜨고 불안했던  미련스러움을 한 가지 해결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성과인지.

꼭 해결해야 할 과제를 씩씩한 호승감으로 충전했던 내가 왜 이토록 야무져 보이는지 

참말로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도 잘못된 생활습관을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고성도 오갈 것이지만 나는 용기를 얻었다.

독자들에게 내 일거수일투족을 고백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글을 올리면서  무슨 눔의 활기는 이렇게 차고 넘치는지. 

앞으로 조선남자 길들이기가 순탄하게 진행될 조짐이다. 


그는 브런치에 내가 글을 쓴다는 건  알지만  무슨 내용의 글을 쓰는지는 모른다.

그냥 글을 쓰나 보다  할 뿐 관심도 없다.

아니 나름대로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세상에서 만큼은 언론의 자유를 허락한 그가 무지무지 품이 넓다. 

굳이 뭘 쓰냐고 묻지를 않아서 우선 편하다.

그런 걸 일일이 점검하고 따지면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그의 조선스러움을 표현할 수 없었겠지.


조선남자 길들이기는 이렇게 한 단계씩 수위를 높이면서 나는 싹싹한  敎官(교관)으로

그는  똑똑한 生徒(생도)로 보폭을 넓혀갈 생각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하지만 완전하게 고치기는 힘들어도 약간의 수정은 가능하다고 본다.


이혼이 흔해지고 있고  황혼이혼도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시대에 그 대열에 합류하여 쥐꼬리만큼 

남은 생을 남루하게 살긴 싫다.

그냥 약간의 수정을 통해 기존의 보푸라기들을 제거하며 살고 싶을 뿐이다. 


이런 계획만이라도  지난날 위축됐던 시간들이 보상받는 기분이다.

이 원대한 계획이 순항하여 성공이란 섬에 꼭 닻을 내리길 소망한다.

생각만 해도 벌써 숨이 벅차다. 

얏호! 



유화, 필자가 그린 열기구 그림. 






조선남자 시리즈를 5화로 끝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이곳에 처음 입문한  제게 라이킷과 댓글로 화답해 주셨어요. 

고맙습니다.

일단 5화로 끝을 내고  길들이기가 성공하면 그 사례들을 사레들린 사람처럼 

컥컥거리며 또  써놓겠습니다. 

다음회부터는 媤(시) 자 들어가는 글로 시작합니다.

수요일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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