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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김 미 선
Jun 28. 2023
조선남자 엿보기 (2화)
아침밥
조선남자
는 먹보다.
아무거나 잘 먹다 보니 덩치도 묵직하다.
누구나 그렇지만 다른 건 안 먹어도 밥은 먹어야 되는 건 맞다.
간식으로 대체할 때도 있지만 주식은 여전히 밥이다.
주식도 상황에 따라 건너뛸 때가 있을 텐데 우리는 그것이 전혀 허용이 안된다.
그는 세상이 무너져도 아침밥은 꼭 먹어야 되는 사람이다.
밤새 술에 만취해서 들어왔어도 아침밥만은 거른 적이 없다.
식탁에 아침밥이 차려져 있지 않으면 천둥소리를 들어야 한다.
노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늦어도 아침 7시 안에는 아침밥을 먹는다.
그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건강을 위해서나 하루 에너지를 보충하는 데 있어 아침밥의 중요성을 뭐라 탓하진 않겠다.
중요한 건 알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잠을 더 자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회사는 가야 되지만 왠지 일어나기 싫고 단 5분이라도 더 자고 싶고 뭐 그런 날.
그건
가정주부든, 학교 선생님이든, 대기업 사장이든, 구멍가게 주인이든
다 마찬가지다.
수면의 질에 따라서 컨디션이 좌우되니까.
진짜 진짜 일어나기 싫을 때도 이를 악물고 일어나야 하는 솥뚜껑 운전수의 비애를
조선남자는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각방을 쓴다.
그는 큼직한 안방을 차지하고 황제처럼 넓은 침대에서 뒹굴뒹굴 늙은 호박 굴러다니듯
잠을 잔다.
반면 나는 황제마마가 부르면 언제든지 튀어나올 수 있는 안방 옆에서 잔다.
흔히 말하는 문간방이다.
물론 안방처럼 크지도 않고 침대도 호박처럼 뒹굴 여유는 없다.
각자가 잠을 자다 보니 기상 시간도 조금씩 차이가 난다.
나는 내가 먼저 일어나도 크게 늦지 않는 한 그를 깨우지 않는다.
그는 내가 제때 일어나지 않으면 내 방 문을 주먹으로 두들긴다.
쾅, 쾅, 쾅.
세 번에 안되면 계속 주먹종을 쳐댄다.
주먹종이 거듭될수록 데시벨이 올라간다.
얼른 일어나서 밥을 하라는 신호가
점점 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자던 잠, 꾸던 꿈 다 팽개쳐 버리고 부엌으로 나서야 한다.
후다닥.
후다닥.
그런데 이상하게도 휴일은 주먹종도 쉬는 날이다.
그렇다고 아예 내버려 두는 건 아니다.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와서 곤히 자고 있는 내 발바닥을 간질거린다.
그것도 반응을 봐가면서 강도를 조절한다.
기어코 발이 오그라들어 배위로 접힐 때까지 전극을 주고는 나가버린다.
기분에 따라서 주먹종의 종류와 깨우는 방법이 이렇게 다르다.
그때 꾸던 꿈이 복권이 당첨되려던 찰나에 깨운 거라면 반찬이 형편없고, 누군가에게 쫓기는
악몽이었다면 잘 됐다 싶어 계란 프라이 하나가 추가된다.
채송화처럼 뽀얗게 살고 싶다.
그는 사업상 새벽에도 골프를 치러 갈 때가 종종 있다.
그땐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
혹시나 못 일어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다가 새벽 3시부터 깨어 있을 때도 있다.
알람도 못 믿고 신경이 곤두서면 아예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일어나서 밥을 차리려니 피곤하기 이를 데 없다.
어찌어찌 밥상을 차려서 내보내고 나면 노곤함이 우르르 몰려오지만 그렇다고
낮잠은 멀리한다.
새벽부터 공을 치면서 일행들끼리 아침밥은 얻어먹고 나왔느냐고 은근슬쩍 묻는단다.
먹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가정 내에서 남자의 입지를 재보는 것일까?
" 나 오늘 아침밥 든든히 먹고 나왔어."
자신감 있게 먹었다고 말하면 그 말이 난 마누라를 잘 다스리고 있다는 암묵적인 표현으로 통하는 것인지.
별거 아닌 밥 한 공기라도 얻어먹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우위를 점하는 건지.
기를 쓰고 아침밥을 먹어야만 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는다면 아마도 이 집단은
조선시대가 아니라 고려시대 사람들이 아닐는지.
필자가 그린 수채화.
지난해 연말에 생각지도 않게 서울로 부부 동반 모임을 다녀왔다.
그때 용케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던 코로나가 내게 붙어버렸다.
일행이 자기도 코로나에 걸린 줄 모르고 왔다나.
아픈 건 둘째치고 우선 밥을 며칠 안 해도 되겠다 내심 좋아했다.
그런데 웬걸.
시간이 되어도 내가 일어나지 않자 조선남자는 여지없이 방문을 두들겨댔다.
문이라도 열어보고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기라도 하면 손가락에 부스럼이라도 나는 모양이다.
전염성이라는 심각성을 고려하면 가까이 올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방문을 살짝 열고 물어볼 수는 있잖은가.
문을 두들기되 쾅, 쾅, 쾅 이 아닌 그보다 작은 소리로 콩, 콩, 콩, 콩 기상을 독촉했다.
아픈 건 아는데 미안하긴 하지만 일어나라는 조심스러운 표시다.
이마에서 뚝배기가 끓고 있어도 아침밥을 하러 어기적 거리고 일어나야만 했다.
머릿속이 카오스 상태임에도 아침밥은 해야만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쉼표가 없다.
유일하게 쉼표가 있는 날은 그가 어딘가로 공을 치러 가거나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갈 때 그때뿐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파서 누워있는 사람에게 밥을 하라고
문을 두드리는 남자가 세상에 또 있을까?
문밖은 온통 식당이다.
슬리퍼를 끌고 가든 잠옷을 입고 가든 식당은 근처에 널려있다.
아무 데서나 손님은 대환영이다.
밥 한 끼 어디 가서 사 먹으면
그 하루는 얼마나 퐁당퐁당 신이 날지
그것도 모르니 조선남자
맞다, 맞아.
하루 또는 며칠 벗어나게 됐다고 좋아하던 계산 착오가 코로나 보다 더 아프다.
며칠 전에도 새벽에 공을 치러 간다고 미리 알려줬다.
착오 없길 바란다는 뜻이다.
요번에는 빵과 과일만 준비할 테니 그것만 먹고 가라고 했다.
제대로 잠을 못 자서 하루 종일 피곤하다고도 했다.
그랬더니 또 `버럭 `이다.
"한 달에 몇 번이나 새벽에 간다고 그까짓 거 하나 못하고 맨날 피곤해?
피곤하면 낮잠 자면 되잖아."
두 사람 사는 거 뭐가 그렇게 할 일이 많아 피곤하냔다.
피곤한 건 한 사람이 살던 두 사람이 살던 마찬가지다.
혼자 산다고 해서 피곤하지 않은 건 아니다.
부부가 싸우는 건 남편이 말하는 의미와 아내가 말하는 의미가 서로 상충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새벽밥의 횟수와 의무를 말한 것이라면,
여자는 밥을 해준다는 자체보다 새벽부터 잠을 설쳐서 피곤하다 이거다.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내일부터 밥 하지 말라."고 언성을 높이는 걸 보면
역시 하나의 갈비뼈는 아니구나 싶다.
여전히 언제까지나 부부는 두 개의 갈비뼈 일 수밖에 없다.
삿대질을 하면서 미간에 주름을 잡는 그를 빤히 쳐다보면서 시대착오를 느낀다.
이 시대가 도대체 19세기 인가.
20세기 인가를.
한 끼라도 밥 하지 않는 건 온전한 직무유기다.
그에겐.
40년 넘게 솥뚜껑 운전수 하다 보니 이제 운전수 생활도 슬슬 싫증이 난다.
운전수도 운전수 나름이지 솔직히 솥뚜껑 운전수는 제일 싸구려 직종이다.
직업이 아니고 전업주부로서의 솥뚜껑 운전수는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생명과 연장된 업무임에도 대접은커녕 맨날 구박덩어리다.
직장에서는 정년이 있고 엄연히 퇴직금도 있다.
퇴직금도 없고 수당도 없고 휴가도 없는 이 업종을 그냥 이참에 확 집어치워?
하루에도 아니 아니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은 사직서를 써봐?
하면서 무모한 꿈을 꾼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도 숱하게 많은 마음속 사직서를 쓰면서도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이제 나이 많은 나를 어디서 데려다 대접해 줄 곳도 없다.
사직서를 쓰려면 진작에 썼어야 했다.
무청처럼 싱싱할 때.
넝쿨장미처럼 도발적일 때.
몇 날 며칠 잠을 덜 자도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을 때.
그때 호주머니에 넣어둔 사직서를 기세 좋게 그의 코앞에 뒤밀어야 했다.
꽁냥꽁냥 시간을 좀먹고 있었던 것은 아이들 때문이다.
아이들이 제대로 크다 보면 저 남자도 현대남자로 쓰윽 변신할 날이 오겠지.
어리석은 기대와 환상이 지나가버린 버스 뒤꽁무니처럼 허전하다.
이제는 콩나물이나 다듬는 것이 상책이라고 스스로 올가미를 씌운다.
이미 누렇게 변해버린 사직서 위에 포기라는 글자를 찍어왔다.
포기는 진작에 배추장사 한테나 던져줬어야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의 종 치는 횟수나 간지럼의 질량에 따라서 香秔(향갱, 맛있는 밥)
糠粃(강비, 겨와 쭉정이로 된 거친 음식)의 향방이 갈릴 것이다.
앞으로 종을 쳐도 좀 살살 쳐보시길.
문짝 떨어져 나가도록 요란스러우면 驚起 (놀라서 일어남) 하니까.
낼 은 또 무슨 반찬으로 아침을 차리지? 이것이 오늘도 내일도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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