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아들이 저녁을 먹잖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맨날 오밤중에 들어오던 애가.
“웬일이냐?”
“엄마 아빠에게 할 말이 있어서요.”
“할 말?”
할 말이 있다는 말에 우리는 호기심으로 지정해 준 식당을 찾아 나섰다.
식당에서 만난 아들은 룸으로 우릴 안내하면서 싱글벙글이다.
`쟤가 아무래도 수상해.`
밖으로 나서기 전 부쩍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머리도 샥샥 빗어넘기다가 맘에 안 들면 한쪽으로 다시 빗어도 보고,
앞 뒤를 돌아보면서 세세하게 복장을 살폈다.
우리는 잠복 형사가 되어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기로 했다.
룸은 우리 셋만으로 대화가 자유로웠다.
밥을 다 먹어갈 즈음.
아들이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엄마, 아빠 저 결혼할게요.”
“엥? 결혼을 한다고?”
시방 우리가 뭔 소리를 들은 거야.
무슨 애가 이리 잠복형사를 김 빠지게 하는 거니.
잠복도 하기 전에 범인이 먼저 튀어나왔다.
“어떤 아가씬데?”
아들은 동네 떡집을 주석으로 달았다.
나는 떡 얘기가 나오면서 재빠르게 그 가게를 연상했다.
그때까지 아들은 상호도 몰랐다.
`떡`이라는 말만 으로도 촉이 바로 달려왔다.
그 가게는 동네에서 뿐 아니라 멀리서도 찾아오는 떡의 명가였다.
작년 추석에 송편을 사러 그 가게로 갔었다.
평소에도 붐비던 가게는 명절을 맞아 문전성시였다.
온 가족이 동원되어 떡을 팔고 있었고 가게 안 주인과 많이 닮은 아가씨도 동참했다.
나는 아가씨에게 떡을 사면서 “엄마하고 많이 닮았네.”했다.
아가씨는 아뭇소리 않고 돈만 받더니 자기 할 일을 하는 거였다.
그러려니 하고 가게를 나왔는데 일 년 전 그 아가씨를 떠올리게 되다니.
아들은 하고 싶은 게 있어 좀 늦게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했었다.
우리도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에게서 소개팅 제안이 들어왔단다.
한 마디로 거절하고 잊고 있었는데 한 참 후에 그 친구가 또 전화를 해서
“한 번 만나봐라 이눔아.” 하더란다.
누군데 자꾸 만나보라고 야단인지 호기심이 발동했고 소개팅 날짜를 잡았다.
그냥 아무 기대 없이 무덤덤하게 나간 자리가 의외로 이쁜 아가씨가 `뿅` 나타난 거였다.
음 괜찮네.
음 멋지다.
서로가 한눈에 여길 안 나왔으면 어쩔뻔했나!
순간 눈 속에 다이아몬드가 반짝거리게 된 거다.
내 사람 될 사람은 한 번에 감이 온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가 보다.
아들이 결혼 발표를 하고 얼마 지나서 우리는 며느리를 만나보기로 했다.
한정식 식당으로 점심 약속을 정했다.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아가씨가 문 밖을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었다.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나자 쌩 달려와서 허리를 깊게 숙이고 인사를 했다.
그놈의 DNA는 복잡한 가족관계를 따지지 않아도 금세 들통났다.
두 사람이 母子 관계임을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媤(시) 자만 들어가면 왜 그리 오금부터 저려오는지.
아가씨도 어쩔 줄 모르고 안절부절 이었다.
자리에 앉자 “아가씨 나 몰라요?” 내가 물었다.
“모르겠는데요.”
“작년 추석에 내가 아가씨네 가게서 떡 사면서 엄마하고 닮았네 했는데.”
나는 한 사람이고 아가씬 그 많은 사람을 상대하니 모르는 건 당연하다.
그러면서도 미안한지 아가씨가 히히힝 웃었다.
웃을 때 드러나는 가지런한 치열과 이목구비의 조합이 나쁘지 않았다.
포니테일 머리가 둥근 이마와 잘 어울렸다.
나의 시어머니가 며느리 감으로 보름달 얼굴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고 익모초 마신 얼굴을
하셨지만 나는 갸름한 얼굴이 맘에 들었다.
엄마 맘에 들면 아들의 심적 부담이 줄어드는 건 사실일 게다.
한정식 특성상 오래 밥을 먹다 보니 갈치구이가 기다란 접시에 얹혀 나왔다.
갈치가 나오자 아들은 갈치살을 바르기 시작했다.
행여 가시가 있을까 살피고 살펴서 발라낸 허연 갈치살.
그것은 아가씨 수저에 덥석덥석 올려졌다.
귀여운 막내딸에게 아빠가 오구, 오구 내 새끼 잘 먹어라.
부성애가 따뜻하게 꽂히는 애정 어린 눈빛으로.
몇 번 받아먹던 아가씨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아들은 “엄마도 한 입.”
이러고 내 수저 위에 갈치살을 얹어놓았다.
치사해서 안 먹는다 이눔아 할 수 도 없고 한 입 얻어먹고 입을 쓱 닦았다.
쟤 좀 봐라!
엄마에겐 갈치살 아니라 고등어 살도 안 주던 녀석이 뭔 일이래.
쟤가 분명 열 달 꽉 채워 세상으로 나온 애 맞지?
여덟 달 반 토막 짜린 아니지?
우리 시어머니는 애정 행각도 안 했건만 못난 놈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무안하게 하셨는데
나는 이럴 때 어째야 되는가.
가만! 이런 정도로 꼬장거리면 꼰대짓이지.
요즘 것들은 이런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
괜히 고리짝 냄새 풍기지 말자.
째려보려던 눈을 순둥순둥 강아지 모드로 바꾸고 현대 시엄마의 덕목을 찾아들었다.
나는 아가씨가 좋아할지 싫어할지도 모르는 음식을 아가씨 앞으로 자꾸 밀어놓고
“많이 먹어. 많이 먹어.”를 연발했다.
그렇지 않아도 시부모 될 사람들을 알현? 하는 자리가 소화도 안될 정도로 어려운 자리다.
얼음장 분위기를 깨려고 나는 푼수 아닌 푼수끼까지 덤으로 얹어 그 자리에 기름을 둘렀다.
그날도 아들이 늦게서야 들어왔다.
“엄마 아가씨 어때요. 괜찮지?”
“응 괜찮더라.”
그리하여 우리는 또 상견례라는 의식으로 직행했다.
손님이었던 내가 이젠 사돈의 입장으로 만나게 되다니 기분이 묘했다.
“안녕하세요. 저 아시죠?”
“.....”
그분들도 아가씨처럼 아리송한 눈빛으로 히히힝 웃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갔음에도 긴가민가? 이쪽도 멋쩍기는 마찬가지였다.
모자가 닮고 모녀가 닮은 두 가족은 누가 봐도 상견례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었고
분위기는 훈풍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이 만난 지 처음 되는 해 우리는 이곳에서 6년째 살고 있었다.
아파트를 새로 분양받아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와서 보니 유난히 떡집이 많았다.
여기가 병점도 아니고 웬 떡 집이 이리 많다냐!
빵보다 떡을 좋아했던 나는 오히려 잘됐다 싶어 내키는 대로 한 집을 골라 단골로 삼았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요, 소문을 들은 것도 아닌 그냥 그 가겔 우연히 선택한 거였다.
알고 보니 그 가게는 한 곳에서 30년을 우직하게 서있었다.
떡 맛집이었다.
밥이 없다고 떡을 사러 갔고, 반찬이 없다고 그곳엘 갔고, 입맛이 없다고
드나들었던 가게 주인과 사돈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세상은 넓기도 하지만 좁기도 하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가난만은 물려주지 않겠다고.
어떤 일이 있어도 이곳에서 성공하겠다고.
새벽잠 떨치고 집도 아닌 멀리 떨어진 가게로 이동했던 사돈 부부의 고단한 노동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알토란 같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아이들에게 성실의 아이콘이 되었다.
인연은 이미 우리들 인생 지도에 그려져 있었다.
다만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손님과 잠재적 사돈 간의 관계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두 갈래가 한 가닥으로 엮어지는 일이 전혀 모르던 한 동네에서.
그것은 소설을 가장한 논픽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