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닦기
결혼식을 앞두고 우린 자주 만났다.
예비 며느리(예며)는 "어머님 오늘 어디로 점심식사하러 가실까요?"
문자를 보내면 언제든지 나는 OK사인을 보냈다.
식대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어른은 그냥 공짜 어른이 아닌 거다.
새 식구를 들이는데 마음이든 물질이든 팍팍 싸줘야 한다.
(예며)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온전히 결혼준비로 돌입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서 좋았다.
낯섦을 낯설지 않게 하기 위한 우리들만의 길 닦기 방법은 이렇게 맛집 순례로 시작했다.
나는 운전이 능숙하지 못하다.
예며는 운전실력이 월등하다.
자신의 차로 나를 씽씽 모시러 왔다.
바로 쇼퍼드리븐카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다.
느긋하게 앉아서 부드러운 드라이브를 즐기는 시간이 수밀도처럼 달달했다.
아무리 그랬어도 며느리는 시어머니인 내가 여전히 어려운 존재다.
도대체 묻는 말 외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사람은 그저 둘 이상 만나면 대화가 필요하다.
서로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벽이 생긴다.
골났나?
뭐가 맘에 안 드나?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이런 때는 침묵은 금이 아니라 어색함 자체였다.
우린 사귀어 보자고 의도적인 시도를 하는 거지만 여전히 서먹한 사이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이가 아니다.
얘는 나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다이너마이트쯤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가?
나의 살가운 행동에도 예며의 말문은 쇄국정책으로 일관했다.
그러게 왜 애초에 시어머니 상을 그토록 고약하게 만들어놓은 건지 선배시어머니들에게
(삿대질도 못할 거면서 마음이 그렇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어머니를 향한 속담에 긍정적인 표현이 하나도 없다.
남편의 어머니는 아내의 악마다. (네덜란드)
행복하게 결혼한 여자는 시어머니도 시누이도 없다.(칠레)
시어머니 등뒤에는 악마의 날개가 있다.(독일)
시어머니 없는 사내와 결혼한 여자는 행복한 여자다.(스코틀랜드)
그럼 우리나라 속담은 어떤가?
세끼 굶은 시어머니 상판 같다.
시어머니가 미워서 개 옆구리 찬다.
하룻밤에 아기가 세 번 울면 시어미를 나무라라.
세계적으로 시어머니가 성토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나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가기냐.
며느리 시절도 억울.
시어머니 자리도 억울.
그러면 나는 어떡하라고.
알고 보니 예며는 원래 말이 많지 않은 과묵한 사람이었다.
그러려니 받아들이기로 맘먹었다.
예며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더니 말대신 떡을 무지무지 많이 퍼 날랐다.
이거나 먹고 아무 말 마시라고 입막음이라도 하는 것처럼.
(예며)가 들고 오는 떡의 양은 감당이 안될 정도로 많았다.
이것은 판매용이 아니다.
친정엄마가 일부러 만든 떡이다.
아예 박스, 박스 째 배달이 되었고 우리 집에서 2호점을 차려도 될 만큼 넘쳐났다.
세상의 맛있는 떡이란 떡은 허구한 날 나의 배를 둥글게 둥글게 부풀려갔다.
오죽하면 시장으로 볼 일을 보러 갔다가도 그 댁을 멀리 돌아다녔다.
혹시나 마주치면 또 떡을 얻게 될까 봐서.
딸을 잘 부탁한다는 친정엄마의 감춰진 속마음과 며느리의 시집을 향한 낯섦이 떡이라는 매개체로
순환의 의미를 전달해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생경스러운 관계를 말랑말랑하게 주물러갔다.
우리의 소통 수단은 주로 문자였다.
결혼식 하루 전날에도 나는 며느리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렇게 문자를 보냈더니 며느리에게 답장이 달려왔다.
이렇게 우리는 고부라는 가시 울타리를 걷어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가 퐁당퐁당 즐거워질 수 있도록.
이제는 여자의 일생을 막장으로 몰고 간 시어머니들이 시대와 함께 많이도 변했다.
변해야 하고 변해야만 한다.
요즘 시엄마들은 현대 시엄마의 면모를 갖추려고 나름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엄마는 같아요. 뭐가 변해요?"
며느리들이 벌 쏘듯 침을 놓는다 하더라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시대에 맞는 옷을 입으려고 시엄마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나도 시엄마의 한 사람으로서 몸소 체험한다.
세대차이로 이건 좀 아니다 싶은 것들도 분명 있다.
젊으면 나이 든 사람의 사고를 이해 못 할 때도 있다.
나이 든 이는 젊은 청춘의 태도가 못마땅할 때도 있다.
신세대와 구세대의 간극은 어쩔 수 없다.
그 틈새로 흐르는 거품만 걷어내면 그만이다.
우선 더 살아봤으니.
더 경험해 봤으니.
더 생각해 봤으니.
시엄마의 널찍한 마당에 멍석을 깔고 며느리를 거기 불러들이기로 했다.
아들이 그렇고 남편도 그렇다.
이래서 媤(시) 자만 생각하면 시큼 시큼 해지는 시어머니가 되지 않으려고 자신을 구겨 넣는다.
설익은 자두를 먹듯 한쪽 눈이 절로 감기는 그런 시엄마가 되지 않으려고 마음속에 설탕을 치는 중이다.
어쩌다 이렇게 시어머니는 까칠한 고슴도치가 되었을까.
왜 이렇게 온몸에 가시를 두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전국의 아니 세계의 시어머니 협회라도 만들고 싶다.
마더 인 로우 소사이어티.
아들을 가졌고 그 아들이 결혼했으면 회원 자격이 있다.
시엄마들 협회라니 벌써부터 며느리들이 으르렁 거린다.
거기서 또 무슨 모사를 꾸미려고 그래요?
아하! 그런 거 아니라니까.
謀事(모사)가 아니고 敎練(교련) 이라니까 그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