姑婦(고부) 그게 뭔데요?(9화)

뜻밖의 선물

by 김 미 선


며느리 발등에 이 떨어졌다.

내 생일이 닥쳤기 때문이다.

친정엄마 같으면 발등에 불이 아니라 강 건너 불이다.

대략 엄마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사서 들고 가면 그만이다.

그만큼 마음이 여유롭다.

문제는 이 뾰족한 존재인 시어머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며느리 머릿속은 벌써부터 실타래가 얽힌다.

일 년에 한 번이지만 부담스러운 일인건 틀림없다.

이미 태어났는데 생일을 없앨 수도 없고 어쩔 것인가.

나 몰라라 할 순 없고 고문처럼 생일은 다가왔을 것만 같다.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고 말하는 시어머니 입장과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닌

며느리의 관점은 다르다.

그러니까 바짝 긴장하게 되는 거다.

선물만 달랑하자니 섭섭할 거 같고.

머리를 뱅뱅 돌린 결과 집에서 간단한 차림으로 식사준비를 한다고 했다.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밥만 하는 게 아니다.

집안 청소도 신경 써야 하고 주변 정리부터 손을 봐야 한다.

생각보다 복잡하다.

엊그제 오전 11시까지 아들네 집으로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우리는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아들네 집으로 더듬거리며 찾아갔다.

걔네들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지만 우리는 손짓을 해야 간다.

손님이다.

며느리가 부지런히 식탁에 알록달록 음식들을 차려놨다.

고민하며 움직인 결과물이다.

소불고기, 잡채, 계란말이, 김치전, 미역국, 밀푀유나베와 밑반찬이 식탁을 장식했다.

며느리가 차린 생일상.


맛이 있든 없든 가짓수가 많든 아니든 수고스러움의 결정체다.

처음엔 음식이 서툴렀지만 이제는 시엄마와 동급이 되어간다.

한국음식은 한 가지만 하려 해도 과정이 복잡하다.

다듬고 썰고 삶고 무치고.

이렇게만 차렸어도 만든 사람은 몇 시간 관절들이 혹사되었다.

고맙기 그지없다.


1차로 밥을 먹은 후 2차로 케익과 과일을 먹고 3차로 선물 증정식을 가졌다.

며느리가 종이백 하나를 쓰윽 내 앞으로 내밀었다.

선물은 그 자리에서 뜯어보는 거라면서 아들이 열어보라고 손짓을 했다.


양파껍질을 닮은 포장을 여러 차례 벗기니 은밀하게 숨어있던 물체가 나타났다.

다름 아닌 몽블랑 볼펜이었다.

내 이름까지 새겨진 볼펜에 잠시 시선을 꽂고 있자니 생각 뭉치들이 몰려왔다.


며느리가 선물한 몽블랑 볼펜. 사진을 축소했더니 이름이 흐리다.


일찍이 고대 희랍시인 에우리 피데스는 선물은 신도 설득시킨다고 했다.

신도 설득시킨다는 선물을 받았지만 이건 설득이 아니라 부담이다.

만약에 내가 책을 낸다면 한 권당 일만 오천 원짜리라고 치자.

10% 인세로 계산해 볼 때 430권을 무조건 판매해야 이 돈이 생길 수 있다.


며느리가 내게 너무 큰 등짐을 얹어놨다.

볼펜으로 부지런히 글 써서 이런 금액에 도달하려면 보통일이 아니다.

비싼 볼펜을 내게 쥐어 준 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다.


이쁜 옷도 아니요, 멋진 신발도 아니요, 폼을 내는 핸드백도 아니다.

이것은 좋은 글을 쓰라는 호된 채찍이다.

그만한 가치를 해달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야단 났다.


필기구 보다 차라리 산책할 때 입는 티셔츠 라면 부담스럽진 않을 텐데.

빈약한 내 필력으로는 이 볼펜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환원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동네 산도 못 가는 저질 체력이 히말라야 등정을 권유받은 것처럼 숨이 가쁘다.


나는 가족들에게 내 글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내가 글을 쓴다는 건 알지만 무슨 내용의 글을 쓰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걸 알기에 볼펜을 생일 선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집에 오자 나는 이런 문자를 며느리에게 보냈다.



이렇게 보냈더니 며느리에게 답장이 날아왔다.

오호라!


이것은 그 이튿날 보내온 문자다.


이렇게 매사에 진심이 담긴 며느리가 어찌 이쁘지 않을까.

꼭 선물을 해줘서가 아니라 며느리 마음속에 고인 물이 순수하고 맑기 때문에

고맙고 감사하다.

고부관계란 그저 거리를 두되 온기를 잃지 않아야 평화롭다.

달착지근한 혀 보다 마음이 무게가 있을 때 심금을 울린다.

뜻밖에 생전처음으로 몽블랑을 선물 받고 여전히 속내가 복잡해진다.


이제 이 볼펜과 나는 밀애를 나눠야만 한다.

어떻게든 서로 밀착해서 고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야 할 것만 같다.

마음을 옮기는 볼펜을 통해 세상밖으로 나를 내놓아야 한다.


만물을 다스리는 것은 신의 영역이겠지만 신의 영역을 조금 비껴간 자리엔

예술이라는 이름이 자리한다.

나는 매일 예술이란 마당에서 볼펜과 마음을 교감해야 한다.

글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면.


오디 디우스는 말했다.

기회는 어디에도 있는 것이다.

낚싯대를 던져놓고 항상 준비태세를 취하라.

없을 것 같아 보이던 곳도 언제나 고기는 있는 법이다.


그렇다.

내게 낚싯대는 볼펜이다.

이 볼펜으로 영치기영차 힘을 내 보련다.

으~랏차차 영치기~~ 영차.

며늘아 다시 한번 고맙다.

꼭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할게.





벌써 9화째 고부 시리즈를 엮고 있습니다.

다음 10화 를 끝으로 고부 시리즈를 끝낼 예정입니다.

마무리가 잘 될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들의 박수를 기대합니다.

박수 치다가 부상이라도 입었다면 바로 저한테 신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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