姑婦(고부) 그게 뭔데요?(10화)
참기름처럼 보름달처럼
대한민국 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우리나라 추석은 달빛으로 만물을 평정한다.
심술궂게 비만 오지 않는다면 낮 보다 밤이 빛나는 날이다.
여름내 뜨거움을 견뎠던 모든 것들.
그들이 승전고를 울리듯 가을밤 클래식 선율을 탐하는 날이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불쑥 생각나는 시점이다.
달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고 초목들이 그렇다.
글 속엔 소나타가 등장하고 있지만 내 마음은 지금 멀리뛰기를 하고 있다.
명절은 주부들에게 최고로 바쁜 시기다.
평소엔 한가하던 사람들도 이쯤 되면 뭔가 마음부터 뛴다.
버스 안에서 뛰어가듯이.
가족들에게 咀嚼(저작)의 기쁨을 만들어 줘야 할 책무가 주부들에게 매달려 있다.
더구나 제사상을 차려야 하는 입장이라면 더 복잡해진다.
시장으로 가는 발걸음부터가 둔탁해지는 이유다.
나는 둘째라서 그나마 제사상에선 자유롭다.
예전에는 추석에 송편을 한 말씩이나 했다.
하루종일 쪼그리고 앉아 조몰락 댔어도 태산 같던 반죽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관절들이 우르르 반란을 일으켰다.
그게 뭐라고 그리도 벌서듯 붙박이가 되었든지.
시어머니께 이것 좀 다음부터는 줄일 수 없겠냐고 제안을 했다가 호되게 지청구만 들어야 했다.
그깐게 뭐가 많냐고.
당신 시절에는 더 많았다고 혼쭐만 났다.
옴 살 부리지 말라고.
없던 시절에 명절은 상차림이 너무나 풍성했다.
한꺼번에 일 년 치 먹거리들을 다 몰아서 먹어야만 하는 것처럼 온갖 산해 진미로
상다리가 휘청거렸다.
동네가 다 집성촌이요, 이웃사촌들이니 나눠먹고 옮겨먹던 시절의 풍습이다.
며느리들은 그만큼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꼭 돌아와야만 하고 와락 반겨야만 했던 우리들의 최대 관심사 명절.
이것조차 없었더라면 그 빈곤한 시절을 무슨 낙으로 버텨냈을까.
지금은 대가족이 핵가족이 되어가고 그것이 일인 가구로 축소되는 현실이다.
그전에는 명절이 전부였다.
이젠 명절이 전부가 아니다.
명절보다 해외여행이나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먼저가 되었다.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시기도 명절 전후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현실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부모들도 많다.
굳이 제사상을 차려야 하냐고 아예 없애버리는 집도 차츰 늘어나고 있다.
명절은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아직은 명절, 그런 건 모른다 할 순 없다.
지금도 여전히 전통 명절은 힘이 세다.
변화의 조짐이 보일 뿐 명절은 명절이다.
남들이 다 시장으로 고향으로 선물 보따리 들고 다니는데 혼자만 무인도 일 수는 없다.
세태야 어쨌든 주부들은 마음이 복닥거린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을 때 보은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올핸 참깨가 잘 되었으니 한 말 팔아달라는 문자였다.
마침 명절도 다가왔겠다 흔쾌히 OK 사인을 보냈다.
이틀 만에 참깨가 우리 집으로 달려왔다.
한참 두들겨 맞고 온 애들을 나는 방앗간으로 쫄래쫄래 싣고 갔다.
아프다고 우는 깨알들을 달래줄 생각은커녕 참으로 무정하다.
참깨들은 곧 뽀얀 얼굴로 변모했다.
언듯 보면 공사장 모래알 같지만 이것은 분명 값비싼 국산 참기름으로 변신할 것이다.
방앗간에서 씻어 건져진 참깨.
뜨거움과 압착에 시달리고 나면 어느새 누런 액체로 변해 있을 터.
깨알들의 덧없는 생명이 이리 볶이고 저리 볶이니 우리들 인생과 무엇이 다를까.
자신들의 입맛을 위해 잘 자라고 있던, 한 때의 생명들을 이다지 무지하게 괴롭히고 말았다.
누가 모자 씌워 달랬는지 참기름이란 표시로 빨간 모자가 덥석 씌워졌다.
들기름은 노란 모자니까.
참기름으로 변신.
작년에는 2홉들이 소주병으로 아홉 병이 나왔다.
올핸 일곱 병이다.
양념으로 먹을 통깨를 조금 덜어내기도 했지만 방앗간 주인의 말에 의하면 깨가 덜 여물어서 그렇다고 했다.
일곱이든 아홉이든 되는 대로 먹어야지 별 수 있겠나.
완성된 참기름을 며느리 몫으로 3 병을 신문지에 돌돌 말아 따로 보관해 두었다.
그래도 명절인데 며느리가 우선이다.
나머지는 지인과 나눠야 하는데 누굴 줄지 무게추가 출렁거린다.
생각 같아서는 밭뙈기로 참깨를 사고 싶다.
친척들에게도 내 독자들에게도 골고루 나눠주고 싶은 심정이다.
올해도 며느리가 참기름으로 냠냠냠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해 먹길 바란다.
부족함이 많은 고부 관계지만 비빔밥을 비비듯이 그렇게 어우러져 살고 싶다.
올 추석에도 이 고소한 참기름으로 무엇이든 맛있게 비벼볼 수 있어 또한 감사하다.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비빔밥.
그것은 우리에게 맛을 추구하는 음식이라기보다 화합과 뭉침을 의미한다.
어색하게 떨어져 있던 각각의 재료들을 한데 버무리고 비벼서 한 통속을 만드는 것.
그것을 더더욱 풍미롭게 하는 것은 역시 참기름의 역할이고.
이번 추석에도 보름달처럼 둥근 마음으로 모여 앉을 수 있도록 내가 먼저 선수를 쳐야겠다.
우리 조상들이 명절을 왜 만들었을까.
행복하라고, 골고루 먹고 건강하라고, 모여 앉아서 화합하라고, 조상들께
감사하라고 본래 취지가 그거 아니었나.
명절이 멍절이 되지 않으려면 보름달 처세가 최고다.
올 추석에도 환한 달빛이 모두에게 축복처럼 쏟아지길 바란다.
고부 그게 뭔데요?
10화 긴 시리즈를 오늘로 마칩니다.
그동안 긴 글 읽어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1~5화 까지는 제가 며느리 시절을 다룬 내용이고,
6~10화는 시어머니가 된 입장을 다룬 내용인 건 다 아시지요?
살아온 길이 길다 보니 얘기가 좀 늘어났어요.
다음 회부터는 잡화점을 차려놓고 여러분들을 기다리겠습니다.
찢어지는 휴지 들고 오지 마시고 질긴 천 손수건 들고 오세요.
눈물도 웃음도 한 보따리 싸들고 올게요.
추석 명절 부디 행복하게 잘 지내시고요.
가정에 화목이 넘치시길 바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