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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계현 Apr 04. 2024

학원선생님께 인사를 안 해요

과연, 인사란 무엇인가.


살면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과연, 인사란 무엇인가. 인사는 왜 해야 하는가. 안 하면 안 되나. 귀찮을 때는 가끔 건너뛰어도 되는 거 아닐까.'


직장 동료와 출근길에 마주쳤을 때, 서로 눈을 맞추고 고개를 가볍게 까닥이거나 "안녕하세요"하고 말하는 건, 그냥 자연스럽게 몸에 밴 습관인 줄 알았습니다. 매일 아침 교통정리를 해주시는 관리아저씨와 마주쳤을 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 기분도 좋아지니까요. 별생각 없이 하게 되는 게 인사인 줄 알았는데, 문득 '인사를 왜 해야 하는가'하는 의문에 빠졌습니다.


김진주가 인사를 안 합니다. 학원 선생님, 친구네 엄마, 관리아저씨, 하물며 오랜만에 만난 친척어르신에게도 인사를 하지 않아요. 어릴 때야 넘어간다지만, 일곱 살이면 이해할만한데도 바뀌지

않네요. ‘진주야, 인사해야지~', '인사 안 하니?' "인사!" "엄마처럼 인사해 봐' 다양한 버전으로 반복해서 말합니다. 물러설 수 없는 거라면 '단호하게 한 마디'로 훈육하라는 조언에 따라, '인사해야지'를 매번 반복하지만 김진주는 끄떡하지 않습니다.


그래, 한번 생각해 보자, 인사는 왜 해야 할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달라질까.

 

어느 날 김진주가 ‘학원에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등록했죠. 새로운 환경에 자진해서 들어가겠다는 의미니까요. 등록을 마치고 나오는데 김진주가 학원 선생님께 인사를 안 합니다. ‘엄마 학생’이 모범을 보이죠. 90도 꾸벅 수그리면서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인사합니다. 김진주 보란 듯이. 진주는 제 뒤에 숨어서 학원 선생님을 훔쳐봅니다. 아이 머리를 억지로 수그려서 인사를 시켜야 하나, '너 왜 인사 안 하니?'라고 면박을 줘야 하나, 순간 두뇌가 멈칫했지만 일단 그대로 나왔습니다.


상황이 생겼으니, 또다시 훈육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묻습니다.

“진주야, 선생님께 왜 인사를 안 하는 거야?“

“...” 못 들은 척 발장난을 치네요.

”엄마는 인사했는데~“

“부끄러워~“

진주가 몸을 베베 꼽니다. ‘부끄럽다'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집니다. 고칠 방법이 없거든요. 부끄러운 건 감정이니까요. 그래서 김진주에게 똑바로 일러줍니다.


"진주야, 부끄러운 건, 길을 가다 바지가 벗겨졌을 때지."

"꺄아아악~" 상상을 했는지, 김진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깔깔댑니다.  

"선생님한테 인사를 안 하는 건, 불편해서일 거야. 아직 덜 친해서, 낯설어서 불편한 거지. 어린이집 선생님한테도 처음에는 인사를 안 하다가 친해지니까 인사를 잘하잖아."


'부끄러움' 뒤에 숨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을까 봐 염려가 되어 나온 말이지요. 스스로 '나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인사를 못해'라고 단정 지어버릴까 봐요 또 이렇게 말해줍니다.


"선생님이 별로였어?"

 "아니, 좋았어."

 "그런데 네가 인사를 안 하면 선생님은 네가 안 좋아한다고 오해할 수 있어. 너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는데 상대방은 서운해질 수 있는 거지."

이건 못 알아듣는 눈치입니다.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 안 하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에서 배우는 기본 예의니까요. 학교에 가면 으레 배울 테니 크게 강요하지는 않지만, 반복해서 일러줘야 하죠. 1) 부모가 인사를 잘하는 모범을 보이고, 2) 아이가 인사를 안 하는 것을 당연시하지 않게끔 반복해서 말해주고, 3) 어쩌다 인사를 하면 격하게 칭찬하고, 4)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을 풀도록 다양한 관계 경험을 늘려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기다립니다. 아이가 낯선 환경을 받아들이고 수긍하고, '인사하는 것'이 예의라는 것을 학습할 때까지. 그때까지는 ‘나의 민망함’은 견뎌내야 할 몫입니다. 행여 ‘부모가 잘못 가르쳤군’하는 쓴소리를 들을까 염려되어 아이를 호되게 다그치면 방향이 틀어져요. 할 일이 또 생기죠. 부모를 무서워하고 눈치를 살피는 소심함까지 고민해야 하거든요.


언젠가 김진주가 달라질까요? 학원 친구들이 인사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합니다. 인사를 받은 선생님이 환하게 웃는 얼굴을 즐겼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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