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두 사람이 부부로 살다 보면 서로에게 좋은 점도 많지만 부딪치는 면도 만만치 않다. 가사분담부터 아이들의 양육문제, 서로의 다른 가치관이나 생활습관의 문제까지. 이 중에서 서로 대화나 타협으로 아름다운 결론을 맺은 것도 있겠지만, 서로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끝까지 상충되는 것들도 있다. 부부 생활하는 동안 계속해서.
가정에서 부부가 사소한 상황 때문에 서로 말다툼을 하다 서로의 감정이 한계치에 달한다. 거실과 부엌의 경계 부근, 목요일 밤 10시 30분경. 샤워를 끝내고 거실로 나오는 남편을 향한 아내의 날선 한마디.
아내: 자기는 화장실을 사용하면 머리카락이나 이런 뒤처리 좀 잘하지. 남자가 왜 그래?
남편: 내가 뭘. 그럴 수도 있지. 자기가 치우면 돼지.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왜 그래?
아내: 양말이나 속옷 좀 제대로 벗어놓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 초딩 애들도 아니고.
남편: 아이 참 피곤한데,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어차피 세탁기가 다 하는데. 왜 그래?
아내: 자기는 왜 맨날 나쁜 습관들이 고쳐지지 않지. 어머니는 아들을 이모양으로 낳으셨는지 몰라. 정말?
남편: 우리 엄마는 왜? 울 엄마는 자기처럼 그렇게 잔소리하지는 않았는데. 자기는 왜 그래? 정말?
부부간에 서로 이해가 부족하거나 양보심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인데도, 서로 뾰족한 연필심처럼 한 점에서 결국 부딪치고야 만다. 그 순간 사랑이라는 감정은 쉽게 기화되고 실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는다. 그런 분노의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면 그에게서도 새로운 "화"라는 감정이 태어난다. 평범하게 시작된 부부의 대화는 갈등과 분노 표출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확전 된다.
부부간에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왜 그럴까. 철들지 않을 영원한 (아웅다웅하는) 부부의 본성 때문에 그럴까.
#2.
직장은 자신이 고용주가 아닌 이상 모두 피고용자이면서도 선후배나 직급 등 위계서열로 이루어진 다차원적인 조직이다. 실제의 직장생활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인지상정에 의해 큰 문제가 없다.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 거의 동일한 업무를 계속하다 보면 가족 같은 끈끈한 인간관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차적 인간관계의 특성상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경우가 가끔씩 고개를 쳐든다.
직장에서도 상사로서의 역할과 부하직원이나 동료로서의 역할이 서로 충돌할 때 서로의 감정은 민낯을 드러낸다. 어느 사무실 과장의 책상 앞, 목요일 오후 5시 10분경. 분기 실적보고를 빨리 끝내고 데이트를 할 희망에 설레는 김대리에게 과장의 뼈있는 한마디.
과장: 어이 김대리, 이 결재문서가 의미하는 바가 뭐야. 통 이해가 안 되네.
대리: 그거야 보시는 대로 분기별 2/4분기 영업실적과 3/4분기 영업전략이죠.
과장: 결재를 올릴 때는 이문건이 뭘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두괄식으로 나타내야지. 끝까지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김대리는 0 0 대학교 제대로 나오기는 한 거야. 국어 실력이 영 시원찮은데? 그리고, 이 오타는 또 뭐야....
대리:(자신보다 학력이 한참 떨어진 과장을 바라보며) 그거야. 잘 가르쳐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제가 제대로 배우지를 못해서.....(창밖을 무심히 바라보며), '자기도 맞춤법이나 문장력이 별로면서'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과장:(결재 파일을 던지며) 뭐야! 다시 해와. 내일 아침 출근 전까지 반드시.
대리:($#@&!...) 지금 오후 5시인데요..... 알겠습니다.('오늘 또 야근이군. 젠장, 저녁 약속 취소해야겠네')
직장에서도 업무를 둘러싼 관계에서 흔히들 벌어지는 상황이다. 이 불편한 상황의 본질은 일에 대한 책망이나 실수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관계의 배신감이나 업무로 인한 피로일 것이다. 하지만 몇 마디 대화에서 응어리진 불편함은 쉽사리 풀어지지 않는다. 업무에 대한 지적이 나 자신의 인격에 대한 비난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감정조절에 실패한다.
상대방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럴까. 삭막한 직장생활이 우리의 인간성을 사막화시켜서 그럴까.
#3.
살다 보면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하고야'마는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속적 리얼리티는 이렇듯 불편하거나, 어렵거나 좌절을 주거나 하는 식으로 예상하기 힘든 상황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가장 이성적인 생명체라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상황 설정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런 사례는 감정이 이성을 배신하고 우연이 의도를 배반하는 경우에 주로 나타난다. 그것도 자주, 많이, 누구에게나.
우리는 이렇듯 사소한(혹은 충동적인) 감정이 지배하는 일상을 살아간다.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버럭 하거나 묵혔던 감정이 때와 장소를 못 가리고 분출되기도 한다. 한두 번에 그치면 다행이겠지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더라도 반성의 기회는 계속 제공된다. 그렇다고 나중에 후회할 수밖에 없는 일상을 피할 수 있을까? 아마도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나 철학자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정답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도 딱히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매 순간 정답을 구하려고 노력하나 허무한 시도에 그치는 경우가 일상다반사다. 어쩌면 살아가는 동안 이러한 상황을 피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우리의 생각이 짧고 비이성적이며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그 순간의 판단이 마치 이성적인 것처럼 생각되나, 결과는 충동적이었다는 늦은 후회를 통해 나타난다. 생각해보면, 충동적인 감정이 이성적인 판단에 조금 양보했어야 하는 상황이 많다. 물론 시간이 흐른 뒤에 깨달은 것이지만.
다시, 부부간의 이상적인 대화
아내: 자기는 다 좋은데, 양말 벗는 거나 화장실 뒷정리 좀 잘해주면 안 될까?
남편: 그래 알았어. 내가 생각이 짧았어. 나쁜 습관은 고쳐야지. 미안해....
아내: (더 미안해하며) 자기 샤워한 모습을 보니 남자답고 멋있는데.... 맥주나 한잔 할까?
남편: 맥주 좋지! 그런데 맥주로 끝나면 될까......
다시, 직장에서의 이상적인 대화
과장: 김대리, 이 기안문은 통계치랑 다 괜찮은데. 결론이 선명치가 않아서, 두괄식으로 표현하면 더 좋지 않을까? 이것만 보완하면 엑셀런트 할 것 같은데.
대리: 과장님, 죄송합니다. 부족한 점을 말씀해주시면 다시 완벽하게 검토하겠습니다.
과장: 그래, 오늘은 늦었으니 일찍 들어가고. 내일 오후 퇴근할 때까지 다시 같이 보자고. 아! 오늘 데이트 있다고 그랬지. 잘해봐.... 얼른 결혼해야지.
대리: 넵, 과장님. 오늘 저녁은 화끈한 데이트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아 보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이런 식의 대화였다면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갈등이나 충돌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늘 아쉬움은 후회 뒤에 온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더라도 이성적으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이상은 어디까지나 상상 속의 바람일 뿐이다. 그래서 현자(賢者)가 드문 세상이다.
그렇다.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하다"는 얘기가 완벽하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충동적인 감정이나 갈등이 존재하는 일상도, 자기 제어에 실패하는 순간들도, 우리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소중한 삶의 일부란 거다. 변명의 여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