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마지막 김치를 먹게 된다면

by 지성파파

#1.

아주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엄마의 김치를 먹고 커왔다. 먹을 것이 부족했다고 생각되는 어린 시절이 풍족하게 느껴지는 건 김치 때문이 아닐까. 집 앞 밭에서 나는 온갖 푸성귀는 모두 김치재료가 되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길을 거치면 아주 먹음직스러운 김치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때는 그저 그런 그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배부르고 행복했던 시절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부엌 안의 두런거림과 우물 주위의 살가웠던 풍경들. 우물가에 달려있던 커다란 수세미와 은은하게 부서지던 달빛 조각들.


우리 집은 김장김치의 종류와 양이 상상을 초월했다. 대가족이긴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이라 쌀이나 김치가 동나는 집이 많았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그런 분들을 위해 많은 김치를 담그고 그 많은 양을 겨우내 비축했다. 우물 옆에 있는 장독대와 부엌과 마당에 묻은 김칫독까지 가득 들어있던 김치들. 동네에서 우리 집 김치가 가장 오랫동안 남아있어서 겨울 아침이나 봄날 저녁이 되면 양푼이나 냄비를 든 아주머니들이 많이들 왕래하셨다.


12월의 장독대 항아리 위에 쌓인 소복한 눈을 기억한다. 햇빛이 닫지 않는 곳에는 동치미 항아리가 놓여있었다. 살얼음이 살포시 떠있는 동치미는 겨울 김치중 백미였다. 아이들도 맵지 않아 잘 먹을 수 있었고, 새콤한 국물까지 더하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그 눈 쌓인 장독대는 한겨울에 느낄 수 있는 따뜻하고 정감 어린 한 폭의 동양화였다. 할머니의 인심과 살가운 세상이 그림처럼 펼쳐졌던 어린 시절. 우리는 그런 정다운 시간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동치미는 배추와 무 두 종류를 어린아이 키보다 더 큰 항아리 두세 개에 담가서 나눠먹곤 했다. 보약보다 낫다던 동치미는 김치중 가장 먼저 동이 나 많이 안타까워했었다. 그래서 남에게 나눠주지 말라고 말씀드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러면 안돼"라는 한마디였다. 할머니 말씀이 "우리가 다들 누구 때문에 살아가는디, 그러믄 안되지" 하시면서.... 그 맛있는 동치미 국물까지 가득 부어드리곤 했다. 그때 어렸던 우리 막냇동생은 도끼눈을 뜨고 멀어져 가는 김치를 바라보곤 했었다. 욕심이 많았던 어린아이.... 서로 나눔이 따뜻했던 수많은 아침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쌓여있던 마당의 새하얀 눈빛까지. 수십 년을 가족 같은 이웃으로 살아온 정감까지.


어머니도 할머니랑 똑같은 마음이셨는지.... 그 뒤로도 상당기간을 그렇게 해오셨다. 동네에 우물 있는 집이 몇 안되던 시절이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늘 북적거렸고, 때가 되면 같이 밥을 먹었다. 겨울이면 가마솥에 가득 팥죽이나 호박죽을 끓이고 무 동치미와 곰삭은 배추김치를 같이 내어 먹었다. 큰 교자상 두 개를 펴고 열댓 명이 우르르 둘러앉아 면기에 가득 담긴 죽을 먹는 광경을 생각해보시라. 그렇게 우리의 겨울 저녁은 그리운 흑백사진처럼 지나갔다. 혹여나 그릇의 바닥을 긁는 이가 있을까 봐, 어머니는 꼭 큰 양푼에 두 개씩 더 가져다 놓으시곤 했다. 눈치 보지 말고 더 먹으라고. 지금 다시 팥죽을 먹다 보면 그때 그 맛이 나질 않는다. 왜 그럴까. 그때 그 아이들과 이웃들, 소란스러웠던 그 저녁이 아니어서일까.


다시 그런 정겨운 밥상을 소환할 수 있다면.



#2.

결혼한 지 이십여 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엄마의 김치를 받아먹고 살고있다. 우리 집 모든 가족들은 어머니(아이들에게는 할머니)의 김치가 없으면 밥을 먹을 수가 없다. 다른 반찬이 아무리 많아도 김치 없는 밥상이란 상상하기도 싫다. 사 먹는 김치는 맛도 깊이도 마뜩지 않다. 초등학교 2학년인 막내도 할머니 김치를 밥 위에 척 얹어 잘도 먹는다. 입가에 김치 양념을 묻혀가면서 먹는 모습을 보면, 수십 년 전 오손도손 모여서 먹었던 그런 밥상이 다시 그리워진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김치는 1 솔, 2 파, 3 갓이다. 첫 번째는 부추(전라도에서는 솔) 김치, 두 번째는 파김치, 세 번째는 갓김치다. 세 김치 모두 바로 담궜거나 잘 익었을 때나 밥도둑이 따로 없다. 이 세 김치의 특징은 고유의 향이 있다는 거다. 거기에 전라도 특유의 젓갈이 여러 개 가미되어 각 김치의 풍미를 더한다. 서울의 여느 한정식집의 김치를 먹어봐도 우리 집 김치 맛에 미치지 못한다(개인적인 취향에 따르면). 세 김치 모두 오래 묵을수록 맛과 가치는 따질 수 없다는 게 정설이다.


어머니도 연세가 드셔서 김치 맛이 예전 같지 않다. 그렇지만 밥상 위에 엄마표 김치가 없으면 허전하기 짝이 없다. 어머니 기력을 생각해서 우리가 스스로 김치를 담가먹거나 사 먹는 시도를 해본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시도는 허무하게 실패로 끝났고, 가족들에게 비난만 들었다. 이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김치가 아니라고. 어머니 또한 김치 담가서 자식들 나눠주는 재미가 쏠쏠하시다며 역정을 내신다. 아직은 힘이 팔팔하니 걱정하지 말고 잘 먹기만 하라는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으신다. 그 말씀 속에 담긴 뜻은 다양하겠지만, 지금은 어머니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고 싶다. 건강한 어머니를 오래도록 뵙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수십 년 전 어릴 때의 입맛과 맛보았던 김치의 맛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김치를 담그시던 굵은 손마디와 마법의 김치 양념과 주변의 즐거운 소란을. 택배 상자마다 이중삼중으로 포장된 그 빈틈없는 사랑을. 자식들과 손자들이 잘 먹으라 말씀하시던 전화 속의 따뜻한 목소리를. 밥상 위에서 행복에 겨워 사라지던 김치의 흔적들을.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맛에 버무려진 김치를 먹고 자란 우리는 그 맛있었던 미각의 행복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두 분을 기억할 것이다. 김치로 인해 축복받았고, 건강했었고, 맛있었던 밥상을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언젠가 어머니의 마지막 김치가 택배로 배달되어 올 것이다.


그런 날이 먼 훗날의 일이기를 바라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머니의 손맛도 기력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좀 더 오랫동안 건강하게 머무르셔서 엄마의 손맛이 담긴 김치를 먹으며 살고 싶다.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증조할머니가 담가주신 김치를 맛보게 하려는 욕심은 과욕인 걸까. 조심스럽지만 욕먹을 각오를 하고 욕심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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