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늦게 쓰는 애도일기

by 지성파파

새벽 5시 20분 전화벨이 울렸다.


꿈속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는 느낌이 들었다. 환청이었을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가는 순간. 그 소리가 전화벨인지 기상 알람 인지도 헷갈렸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핸드폰 알람 소리는 분명 아니었다. 거실의 전화기에서 나오는 다급한 벨소리. 왠지 불안감이 먼저 나를 깨웠다. 거실에 걸어 나가기가 겁이 났다. 무언가 실체를 알 수 없는 주저함이 안방 문에서 거실까지의 거리를 한없이 늘려주었다.


누가 이 시간에 전화를 했을까? 나는 어떤 내용의 통화를 기대했을까? 이렇게 이른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제발 술 취한 취객이 잘못 누른 전화이기를 기대했다. 나 대신 누군가가 받기를 바랐지만, 가족들은 아무도 눈을 뜨지 않았다. 아니 눈을 뜨고도 걸어 나오는 시간이 나보다 늦었을 수도 있다. 내가 받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전화였다. 누군가 전화를 받을 때까지 이 벨소리는 계속될 것이다. 수취인 불명의 편지도 아닌 수신인이 분명한 전화였기 때문이다.


잠든 새벽을 깨우고 아들의 가슴을 깨우치는 전화. 반드시 내가 받아야 할 그런 소식. 부모로부터 자식으로 이어지는 숙명적인 관계에서 한두번은 올수밖에 없는...


수화기에서 들리는 첫 목소리는 울음이었다. 의성어와 의태어가 하나의 문장을 만드는듯한 소리. 어머니의 쓰러져가는 오열이었다. "아...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라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고 말씀하신다. 평소에 그렇게 발음도 목청도 좋으신 엄마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분절된 단어의 연속이어서 의미가 분명치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알아들었다. 그것은 새벽 다섯 시에 슬픈 부음을 알리는 안타까움이었다.


그때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뻐꾸기조차 울지 않는 고요.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인지 어슴푸레한 새벽의 기운이 창밖에 맴돌고, 거실에는 깊은 잠 같은 적막이 자리를 잡았다. 전화를 끊고 망연자실한 내 뒤에는 고개를 떨군 아내가 서있었다. 시간은 5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둘째 딸이 일어나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순간을 되돌릴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을 회피할 수 있을까. 현실감이 없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순간을 맞이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가 어찌할 수 있을까. 동생들은 알고 있겠지.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짧은 순간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메마르거나 촉촉한 삶의 기억들. 아버지라는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 나이가 되면서부터 지금까지 가져온 아버지에 대한 생각과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갔다. 적어도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바로 얼마 전에도 병원에 계신 모습을 뵙고 왔기 때문이다. 마음 한편에는 누워계신 아버지를 보며 병상에서 연명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버지에게 도움이 되는 생의 기간이 될까. 병원에 갈 때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마른 눈물을 흘려보냈다.


아버지는 당신이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한때는 전국체전에 단거리 육상선수로 출전할 정도로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신 체력이었음을 기억하실 텐데. 단지 신체의 노화와 질병이 당신의 육체를 병들게 했음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계셨을까. 당신의 기억 속에서 살아온 추억과 가족과의 일상이 사라지고 있음을 알고 계실까.


그 병원에서는 중증 환자분들이 많아서 늘 죽음의 그림자가 배회하고 있었다. 인간에게 가장 괴로운 생존의 시간들.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존심의 경계가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때 마음 한구석에서 아버지의 회복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갈수록 나약해지는 아버지의 생의 의지를 바라보면서 병마가 인간의 삶을 이리도 갉아먹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마지막으로 뵙던 그날도 아버지는 또렷한 의식으로 우리 막내의 이름을 불렀다.

"지성아, 우리 막둥이 지성아....."

아버지는 뼈밖에 안 남은 손으로 어린 손주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다섯 살배기 우리 집 막내는 할아버지 손을 잡으며 해맑게 한마디를 건넨다.

"할아버지 왜 누워 계세요? 빨리 일어나세요...."


누구든지 듣고 싶지 않지만 결국 들어야 할 말들을 삼키면서 우리의 시간은 그렇게 지나간다. 살아가면서 반드시 지나가야 할 슬픔과 애도의 시간들은 그렇게 조용히 시간의 강속으로 흘러 스며든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내 주변의 사람들은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어쩐지 그런 것 같다).
나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하지만 한 사람이 당한 슬픔의 타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이 우습고도 말도 안 되는 시도).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중에서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사흘간의 길고도 짧은 이별의 순간을 마주하면서 서글픔의 바다를 건넜다. 많은 이들의 따뜻한 위로와 애도의 말들은 나에게 위안과 회한을 교차시켰다.


살아생전 한 번도 아버지를 제대로 안아드리지 못했다. 부모의 로망인지 아들의 소망인지는 모르지만, 한 번도 아버지와 목욕탕을 가보지 못했다. 물론 아버지의 등에 기대거나 등을 밀어드리지도 못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서글프게 울지도, 하소연하며 인생 상담도 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아버지를 타박하고 원망했던 시간이 더 길었었다. 이 땅의 아들들이 다 그럴까.


왜 그러지 못했을까. 후회할 줄 알았으면서...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지난 50여 년 동안 아버지에게 한번도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를 못 했다는 거다.


아버지와는 따뜻하기보다는 건조한 대화의 연속이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부자간이 그렇겠지만. 생각해보면, 부모의 삶과 자식들의 삶이 서로 맞닿아 있어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지 못했다. 자식은 부모에게 생의 모든 것을 받고 살아온 대상이고, 부모는 그 모든 것을 위해 희생하는 주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가는 부모를 보면서 좀 더 거리를 두고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을 했어야 했다. 그래야 생전에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들이 받아왔던 은혜의 손길과 작은 상처를 화해시킬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어느 추운 겨울 저녁 호빵 한 봉지를 사 오시면서 곱은 손을 내밀던 그 아버지를 기억한다. 어떤 날 술에 취해 가족들에게 넋두리하시던 젊은 아버지의 절망을 기억한다. 내가 해병대를 지원해서 군대 가던 날 안타까워하시던 그 무언의 눈빛을 기억한다. 아버지는 그 어떤 순간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다. 아들이 그토록 바라던 고시 합격의 낭보를 알려주었던 어느 겨울날 저녁. 그 감격의 순간에도 무심코 신문을 보는척하시며 속으로만 촉촉이 눈물을 감추셨다.


큰아들인 나는 아버지의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왔을까. 아버지의 직장생활의 실패와 젊은 날의 과오에 대해 지나치게 반응하지는 않았을까. 어린 마음에 부부 싸움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일방적으로 어머니 편을 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은 젊었던 아버지와 나이 든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 뒤에야 비로소 인간의 죽음에 눈을 뜨게 된다. 추상적으로만 느껴왔던 생과 사의 문제가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에 의해 구체화되는 순간을 우리는 마주한다. 그저 피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런 가능성이나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부음과 애도의 시간이 흘러갔다. 인간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다. 이제는 슬픈 감정도 회한의 추억도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로 인해 즐거웠던 어린 시절의 추억과 애틋한 감정이 흑백사진 속의 아버지와 함께 더 많이 남아있다.


이제는 아버지의 애도일기를 다시 쓰는 심정으로 홀로 계신 어머니를 바라봐야겠다. 누구도 되돌릴 수도 반복할 수도 없는 한 번뿐인 삶. 보다 적은 후회를 남길 수 있게끔 그런 하루를 살아가야겠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는 말은 영원히 죽지 않는 어떤 존재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는 롤랑 바르트의 말을 기억하면서.


가끔씩 아들을 욕실로 불러 아빠의 등을 내민다. 등을 밀어주는 아들의 작은 고사리 손가락이 조금씩 커나감을 느낀다. 왜 이런 뿌듯함을 아버지께 드리지 못했을까. 아버지에게 그런 아들이 되지는 못했지만, 내 아들들에게 아빠의 등을 밀어줬다는 그런 기억만큼은 주고 살아가야 되지 않을까.


다시금 마음속으로 애도일기를 쓴다.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아버지, 당신을 사랑했었습니다"라는 첫 문장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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