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영원한 숙제 세 가지

by 지성파파

#1.

서로 사랑하라, 허나 사랑에 속박되지는 말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엔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우되 어느 한 편의 잔만을 마시지는 말라.

서로 저희의 빵을 주되, 어느 한 편 빵만을 먹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그대들 각자는 고독하게 하라,

비록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외로운 기타 줄들처럼.

칼릴 지브란, <예언자> 결혼에 대하여 중에서.

결혼에 관한, 그리고 결혼한 남녀인 부부에 관한 칼릴 지브란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어떤 영감을 얻어야 할까?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랑,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랑, 상대방의 영혼을 존중하는 사랑....


우리는 어떤 사랑을 꿈꾸고 어떤 모습으로 부부의 삶을 살아갈까?



#2.

세상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인간관계는 부부관계다.


부부의 사랑은 따스한 봄빛 아래 잉태하고 여름밤의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며, 내장산 애기단풍처럼 세상의 온갖 빛깔로 무르익는다. 서로에 대한 신뢰는 사랑의 발화점을 넘고, 우정과 더불어 인간세상의 오만가지 속정을 아우르는 것이 부부의 내면성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상황이고,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신혼이혼과 황혼이혼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범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부부가 과연 얼마나 될지 진정 궁금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던 터라 등을 돌리기도 쉽고, 이미 가둔 물고기 같아 세심한 정성이 필요 없을 수도 있는 관계가 부부다. 생업을 위한 외부 관계처럼 깍듯한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되고, 사랑의 열정이 식어도 당연시되는 이상한 관계도 부부다. 사랑이 아니라 정(情)으로 산다는 유행가 가사 같은 공식이 지배하는 관계도 부부다. 조용필의 노래 <정이란 무엇일까>를 들으면서도 그 정이 무엇인지 진심 궁금하다.

가정에서 아이들은 부모들을 보고 듣고 자란다. 생물학적 유전뿐만 아니라 부모로부터 비롯되는 사회학적 형질까지도 닮는다고 할 수 있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부모의 삶의 궤적에서 자식들이 삶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피로한 삶으로 인해 거칠어진 부모에게서 결이 고운 아이들의 성장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의 가정을 둘러싼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유롭고 공감하는 사랑을 꿈꾸고 실천하고픈 부부들도 막상 세태의 어려움이 녹아든 공간에서는 속박된 사랑조차도 어렵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가정은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교향악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현악 4중주 정도의 화음은 울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정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화음의 이면에는 사랑, 웃음, 행복, 눈물, 갈등이 숨어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화음의 중심에 엄마, 아빠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3.

부부라면 잊지 말아야 할 숙제가 있다. 가정생활을 통해 반드시 함께 해야 할 숙제. 그것도 세 가지.


부부 자신들만의 스토리를 만들자


우리 부부는 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대화를 한다. 아이들의 건강, 학교생활, 공부, 저녁식단 문제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서도 부족하지만 부부만이 나눌 수 있는 주제도 가끔씩 이야기하곤 한다. 애들 문제나 가정 외부의 문제에 파묻혀 정작 소중한 부부 자신의 문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늦은 밤 라디오를 켜놓은 거실에서 각각 책을 읽거나 빨래건조대에서 옷가지를 거두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은 쏠쏠한 재미다.

주위의 친구나 선후배, 직장동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드라마에서 보는듯한 사이좋은 부부는 실제로 보기 드물다. 거칠고 힘든 세상이 주는 어려움으로 인해 서로를 살갑게 살피지 못하는 까닭일 것이다. 부부 서로의 얘기를 떠나서 아이들 교육문제, 빈약한 가정경제, 암울한 미래문제까지 겹쳐지면 부부 자신의 이야기는 사막의 모래알처럼 메마르기 십상이다.


남녀의 사랑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수렴되지만, 곧 가정이라는 틀 속에서 정(情)이라는 변주곡으로 연주되고, 결국에는 식구라는 연대감으로 변해간다. 그 과정 속에서 잔잔하게 진행되는 부부의 스토리가 빠진다면 알맹이가 빠진 밤송이와 같을 것이다.


결국 부부의 스토리는 사랑했던 지난날의 추억과 부부간의 진지한 대화를 통해 새로이 써 나가야 할 것이다. 부부가 서로 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나이 들어감을 공감해주고, 상대방의 자존심과 품격을 서로가 지켜줄 때 함께 쓸 얘깃거리가 많아질 것이다. 갈등의 순간도 행복의 순간도 모두 포용하는 그런 인간의 감정이 녹아있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우리 부부의 스토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정의 중심을 부부에 두자


가장 훌륭한 부모는 자식을 소년 등과시킨 부모가 아니라 자식으로부터 존경받는 부모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돈독한 가정은 부부간의 관계도 좋을 확률이 크다. 가정의 중심을 부부에 두고 있는 가정이라면 부부관계의 중요성은 더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가정에서는 그 중심을 부모보다는 아이들에게 두고 있을 것이다. 우리보다는 자식들이 더 잘 돼야지 하는 그런 마음에서. 그러다 보니 의사결정 과정에서 부모보다는 자식의 입장이 중요하게 고려되고 우선시된다. 이러한 가정 풍토에서는 부모가 소외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는 부부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부부관계의 결핍은 가정 내에서의 부모의 역할에도 문제를 일으켜 결국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인구에 회자되는 '노년의 불행'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들이나 58년 개띠 부모님들의 불편한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부모의 현재가 아이의 미래에 저당 잡히는 한국적 현실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가정의 무게중심을 부부에 두고 부모와 아이들 문제, 경제적인 문제를 다차원으로 설계해야만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사이좋고 대화가 잘되는 부모 밑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존경할만한 자신의 부모를 마주할 확률이 크다.



부부의 애정전선을 업그레이드할 때다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를 보면 부부의 날 같은 특정일을 제외하고는 부부나 부부의 애정이라는 단어들이 검색어 순위에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너무 기본적으로 세팅이 된 거라서 그런 건지. 아예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져서 그런 건지.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물어보고 들어 봐도 "애정"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부부간에 애정이 없다면 그 무엇으로 살아갈까?


뜨거웠던 모든 것은 식는다. 사랑도 발화되어 일정 시기가 지나면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해서 말들은 많지만, 통상 1년에서 3년 정도라는 연구가 많다. 그래서 신혼을 3년이라고 했던 적도 있다. 최근에는 신혼이 3개월이라는 말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연애기간에 샘솟던 열정이 결혼하면서 식어버린 커플도 많다는 거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갈수록 단축되는 세상에서 그것마저도 사라진다면 뭐가 남을까? 사랑을 대체할만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는 도파민이나 옥시토신으로 충만하다. 도파민은 사람을 흥분시키고 격렬한 에너지와 행복감을 주는 호르몬이고, 옥시토신은 사랑의 감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다. 이러한 호르몬이 우리의 뇌에 더 이상의 의미 있는 자극을 주지 않을 때 사랑이라는 감정도 익숙한 감정이 되어 식어간다는 것이다. 호르몬의 자극이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을 때 사랑의 유효기간도 끝난다는 얘기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끝나고 식어버린 부부는 무엇으로 살아갈까?

사랑이 식어버리면 정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그 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사랑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사랑이 변환된 다른 형태이거나 사랑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부부가 서로 각방을 쓰고, 한방에 자더라도 침대와 바닥에 따로 눕고, 대화가 별로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부부들에게 사랑이란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여, 이제는 부부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때다. 새로운 사랑의 호르몬을 분비케 하고 상대방을 설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어느 하나 쉽지 않겠지만. 어찌 되었건 부부가 같이 고민하고 노력해볼 일이다. 익숙했던 사랑의 감정을 다시 찾아와야 할 때다.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진 부부, 사랑에 중독된 부부의 모습을 그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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