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때인가 극장에서 영화 <십계>를 보았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지정좌석이 있던 때도 아니고 선착순으로 입장해서 자리를 선점하지 않으면 서서 영화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여고생 단체 관람객과 더불어 세 시간 넘게 서서 영화를 보면서도 지루하지 않았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명작이었다. 특히 홍해 바다가 갈라지던 장면과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십계를 받는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명장면이었다. 모세 역할은 찰톤 헤스톤이, 이집트 파라오 역할은 잘생긴 대머리형인 율 브린너가 맡았었다.
모세가 자기 민족을 구출해서 가나안 땅으로 가던 중 타락한 백성을 목격하게 되고, 신이 모세를 시나이산 정상으로 불러 엄격한 율법인 십계명을 내려주었다. 십계명은 인간들이 스스로 규범을 만든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들에게 지켜야 할 규율을 신이 제공한 것이다. 십계명은 유일신 숭배라는 종교적 의미와 도덕적 규범의 체계화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십계명을 살짝 뒤집어보면, 그 하나하나가 인간의 본능상 잘 지킬 수 없는 규범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죽하면 신이 인간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기준을 정해주었을까 싶은. "야, 너희 인간들. 이 정도는 지킬 줄 알아야 이성이 있는 만물의 영장이라 할 수 있지 않겠어" 하며 신이 농담처럼 내던져버린. 여전히 주위를 돌아보면, 신의 예상과 같이 십계명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떠돌고 있는 현실을 본다.
"신이 존재한다면 신(신들)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불경스럽고 쓸데없는 생각도 해본다.
오래전 시골집 부엌에서 <부부 십계명>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때는 슬쩍 보고 웃어넘겼다.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규범이 저런 게 다 있구나 하면서. 별 어렵지도 않아 보이는 열개의 문장들. 결혼생활이 20여 년이 넘어가던 어느 날, 저녁을 먹던 식당에서 우연히 부부 십계명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저 열개의 계명은 어떤 의미일까. 누가 만들었을까.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세히 살펴봤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1. 두 사람이 동시에 화를 내지 않는다 → 화내고 살되, 그 상황을 지혜롭게 이용하자
두 사람의 분노가 충돌하면 핵폭발의 위력을 가진다. 한 사람이 자제하거나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면 다른 일방도 평정심을 찾기가 쉽다. 하지만 부부간의 갈등에서 한 사람의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빈도보다는 특정 상황에서의 견해 차이나 쌓인 감정의 폭발인 경우가 많아 서로 동시에 화를 내거나 양보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서로 가지고 있는 분노를 분출함으로 해서 얻는 이점도 있다. 불편하거나 서운했던 점을 상대방이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갈등 상황을 통해서나마 의사전달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화를 낼 수는 있지만, 그 분노가 필요 이상으로 지속되거나 해소되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화가 나는데 어떻게 참고 있을 것인가? 참다가 자칫하면 화병 날 수도 있다. 싸우지 않는다는 커플이 오히려 문제 많을 수도 있다. 갈등의 순간이 오면 적당히 화를 내되, 잘 풀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
2. 불이 나기 전에는 고함을 안 지른다 → 가능하면 자제하되, 필요시에는 한 번만
화가 치밀면 목소가 커질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밀어는 조용히 속삭여도 다 들리지만, 화난 이들에게는 큰 목소리가 분노의 크기를 말해준다. 싸우기 전에 이미 서로의 마음이 멀어져 있다 보니 조용조용한 목소리로는 상대방에게 전달이 되지 않을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큰 목소리의 단점은 분노만을 전달해서 상대방의 감정을 다시 자극한다는 점이다. 양쪽이 크게 말하다 보면 이성보다는 감정적인 면에 치우쳐 서로의 감정이 격앙될 수밖에 없다.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해결방법을 말할 수 있다.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먼저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문제 자체를 직시하여야 한다고. 문제를 조곤조곤 얘기하다 보면 오히려 더 차분해지고 작은 목소리가 의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다들 알겠지만, 이렇게 하기가 잘 안된다.
솔직히 말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누가 조곤조곤 이성적으로 얘기하고 싶겠는가? 한번 정도는 샤우팅 창법으로 시원하게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면 스트레스라도 조금 풀리지 않겠는가. 대신 너무 자주 오래 샤우팅 하다 보면 목 건강에 좋지 않다.
3. 하루 한번 이상 칭찬하고 격려한다 → 최소한 비난하지는 말자
밖에서 누군가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약간의 가식과 체면 차림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은 사소한 매너의 영역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으로 뭉쳐진 가족, 특히 부부 사이에서는 왜 어려울까? 남녀가 부부가 되어 같이 생활하다 보면 처음에는 장점이 많이 보이다가 점차 단점이 많이 보이는 시점이 온다. 연애할 때나 결혼 초기에는 콩깍지가 씌워진 만큼 칭찬의 개수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일정 시점 이후부터는 콩깍지는 바람에 날아가고 이제는 초라한 본질뿐. 어디 이쁜 점이 눈에 많이 보이겠는가. 이것도 저것도 미울 때가 온다는 것이 결혼생활을 오래한 분들의 중론이다. 이때 역시 이론상 억지로라도 칭찬하고 격려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좋겠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억지로 무언가를 한다는 게 어렵다는 거다. 그게 쉽다면 굳이 십계명 순위에까지 올라올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방점은 칭찬보다는 비난하지 말자 쪽에 있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면, 칭찬할 수 있으면(칭찬할 게 보인다는 전제 아래) 칭찬하되, 칭찬할 거리가 없다면 최소한 비난하지는 말자는 거다. 상대방 입장도 똑같을 거니까.
4. 다른 부부와 비교하지 않는다 → 비교는 하되, 자극받을 만큼만 하자
모든 불행은 누군가의 비교 때문에 온다고 한다. 상대적 박탈감도 결국 비교의 문제다. 스스로의 행복도 자기만족에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혼한 부부를 보면 서로 화목하게 잘 살아가는 커플도 있고 아웅다웅거리며 불화하는 커플도 있다. 스스로 잘 살아가면 좋으련만, 맘대로 안된다. 이웃이나 친구 부부 중에 모범적인 이들이 있을 때는 저절로 비교할 수밖에 없다. 친구 남편은 어떻고 이웃집 부인은 어떻고 하는 얘기를 하다 보면 다시 부부싸움의 불길이 타오른다. 사실 비교하는 삶과 비교당하지 않은 삶을 피할 수는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내 직업(연봉)과 타인의 직업(연봉), 우리 집과 다른 집, 심지어 아이들까지 비교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만, 현재의 부부의 처지에서 할 수 없거나 부당한 노력이 수반되는 것까지 비교하다 보면 그게 문제라는 거다. 좀 더 나은 부부생활을 위해 자극을 받는 것은 바람직할 수 있으나, 그 선을 넘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비교는 피하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비교하지 않으면 변화나 개선도 없다. 부부생활도 좀 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부부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면 비교하면서 가져와야 한다. 명심할 것은 부부 서로의 자존감의 한계를 지키라는 거다.
5. 아픈 곳을 건드리지 않는다 → 상처는 보살피고 어루만져야 할 것이다
타인의 아픈 곳을 의식적으로 건드리면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거나 변태다. 격투기에서도 상대방의 상처에 더 큰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은 스포츠맨십의 문제다. 부부간에 있어서도 상처는 어루만져 주면서 치유를 돕는 거지 그 상처를 덫나게 하거나 더 커지게 해서는 안된다. 여기까지는 부부 사이가 좋을 때의 상황인 것이고. 부부 사이가 갈등의 상황이 계속되면 철없는 누군가는 상대방에게 '엿 먹어라'라는 식으로 상처에 대한 공격을 가한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자신도 그렇게 비난당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더 가혹한 공격을 감행하기도 한다. 이때 응축되어있던 지난날의 감정이 폭발한다. 이런 식으로 서로 주고받다 보면 부부 사이는 회복불능의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다. 진정 그걸 바라는 부부는 없겠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게 모르는 거다. 그래서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위험한 도발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부지불식간에 나오는 게 상대방의 상처를 향한 나 자신의 감정이다. 사람은 미워해도 상처는 미워하지 말자.
솔직히 말하면, 부부싸움 중에 화가 밀려오는 상황에서 자신의 뱉고 있는 말이 상대방의 상처를 건드리는지 여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지킬 건 지키자. 제발 상처는 건드리는 것이 아니고 어루만지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6. 분노를 품고 침상에 들지 않는다 → 금슬 좋은 부부의 애정전선에 이상은 없다
각방을 쓴다는 부부의 얘기를 듣는다. 코골이나 잠버릇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경우도 있지만, 자발적인 합의에 의한 각방도 의외로 많다. 부부간의 애정이나 친밀감도 거리의 문제다. 온종일 떨어져 있다가 잠잘 때까지 따로 자게 되면 부부 사이에 뭐가 남을까? 예부터 부부간에 싸워도 한 이불속에서 자야 한다고 들었다. 물론 이런 얘기는 비현실적이거나 시의성이 없을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는 한 침대 한 이불속에서 함께 잠을 자는 부부들이 많다는 거다. 힘들고 스트레스에 노출된 현대인들의 삶이 여느 부부라고 피해 갈 수는 없다. 냉정한 현실이나 부부간의 갈등이 분노를 심어줄 때 그것을 안고 잠자리에 들지는 말자. 불면증에도 시달릴 것이며 함께 자는 사람과의 교감에 문제가 크다. 가능하면 밖에서의 분노는 떨궈버리고 들어올 것이며, 부부간의 화는 대화를 통해서 반드시 해소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아슬아슬한 부부간의 금슬에 금이 간다.
솔직히 말하면, 대화가 없거나 생활에 지친 부부일수록 각방을 쓰거나 애정전선에 이상이 있을 확률이 크다. 심지어 남매처럼 지내는 이들도 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결혼했을 때 그 뒤에 오는 모든 것은 밤에 이루어진다. 따뜻하고 화목한 가정, 사랑하는 아이들까지. 금슬이 좋은 부부의 애정전선에 경보사이렌은 울리지 않는다.
7. 처음 사랑을 잊지 않는다 → 어렵겠지만부부간애정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연애감정 없이 결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유효기간을 말하는 것을 보면 뜨거운 연애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식는 게 분명하다. 대부분 3년 이내로 사랑의 유효기간으로 보고 있다. 그 기간이 지난 부부들은 무엇으로 살아갈까? 서로를 설레게 하고 흥분시키고 기다리게 하는 그런 감정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사실 가정 내에서 부부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가 이런저런 이유로 관심과 존재감에 대해서 둔감해진다. 아이들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 직장생활에서 여러 문제 때문에 부부만의 시간을 갖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애당초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얼마든지 다른 감정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감정의 변용 속에서 처음 사랑했던 그 원초적인 감정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랑의 느낌으로 더 원숙한 형태의 감정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인생의 여정이다.
솔직히 말하면, 사랑의 유효기간이 지나면 아예 없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소 닭 보듯 하는 부부가 많은 걸 보면. 그나마 다른 형태로 남아있는 감정을 잘 관리했을 때 부부간의 애정의 끈이 유지되는 것이다. 문제는 한번 식어버린 사랑의 감정이 다시 뜨거워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민하고 노력해서 부부간의 애정을 업그레이드시킬 필요가 있다.
8.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한다 →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으므로 궁금해하지도 말자
부부간에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서로가 허심탄회하게 안팎의 문제나 감정을 얘기하고 공감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비밀이 없는 것이 바람직할까? 부부간에도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는 없어도 되는 걸까. 부부간에 어떤 문제는 100% 공개해서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도 있고, 어떤 것은 일정 부분 상대방이 알 필요가 없거나 밝히기 곤란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부부간의 감정이나 애정에 관한 문제라면 더 얘기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오히려 지속적으로 대화를 하되, 상대방의 비밀은 존중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솔직하 말하면, 비밀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부부간이나 부모 자식 간,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공유하고 공감하려고 애쓰지 말자. 궁금해하지도 말고, 쿨하게 타인의 비밀과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자.
9. 상대를 고치겠다는 생각을 포기한다 → 애당초 생각조차도 하지 말자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원래 타고난 성정이 있으면 개인의 성격은 대부분 그 범주 내에서 결정된다. 후천적으로 바뀌는 것도 선천적인 것이 나중에 발현된 것일 수도 있다. 성인 간 그것도 부부간에 상대방의 타고난 본성이나 오래된 습관을 고치려 하는 시도만큼 무모한 것은 없다. 예를 들어, 목욕이나 청소를 싫어하는 사람은 깨끗함의 기준이 다른 것이지 더러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부부간에 오랜 시간을 붙어지내다보면 상대방의 단점이나 안 좋은 습관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일방이 타방의 습관 따위를 바꾸려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신념을 바꾸려 하는 것과 같다. 진심으로 그게 가능하겠는가.
솔직히 말하면, 결혼 생활이 오래될수록 상대에게서 고치고 싶은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운 좋게 이를 지적했을 때 상대방이 흔쾌히 동의한 것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포기하자. 그게 두 사람의 안녕을 위해 바람직하다. 애당초 생각조차도 하지 말자.
10. 둘만의 시간을 자주 갖는다 → 어렵더라도 일단 시도라도 해보자
부부간에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가장 이상적이다. 현실에서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부부들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막상 여러 제약이나 방해 요소 때문에 마음은 있어도 안 되는 부부들도 있을 것이다. 맞벌이나 출퇴근 시간, 아이들 양육을 둘러싼 상황이 부부에게 녹록지 않은 제약요건들이다. 그럼에도 가능하면 두 사람만의 공간이나 시간을 갖으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일단 부부가 가정의 중심이고 대화가 잘 되었을 때 가정 내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두 사람만의 시간은 부부의 애정문제에도 중차대한 것이기 때문에 가장 우선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두 사람만 있을 때 어색한 부부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 문제나 경제적인 소재를 빼놓고는 서로 얘기가 안 되는 부부도 많을 것이다. 연애할 때는 살갑고 다정한 얘기를 쏟아놓던 이들도 결혼생활이 지속되면서 그런 닭살 소재는 고갈되고 메마른 모래알 같은 주제만 남는다. 그렇더라도 더 멀어지기 전에 둘만의 시간, 둘만의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 일단 시도라도 해보자.
종교적 의미의 십계명처럼 부부 십계명도 금지에 대한 명령의 의미가 있다. <부부 십계명> 하나하나는 부부관계의 이상향을 밝혀주는 주옥같은 얘기다. 만약 지킬 수만 있다면 더없이 훌륭한 부부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부부 십계명 중 몇 개를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을지(혹은 실천하고 있을지) 자신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열개의 문장을 가볍게 보았던 자신의 경박함을 반성한다. 평범한 인간의 삶 속에서 얼마만큼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며 가정에서 따뜻한 배우자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는 걸을 이제는 알고 있다.
아마도 어느 누구도 지키기 어려운 것이라서 <부부 십계명>이라 했을지도 모르겠다. 성인군자 두 분이 결혼해서 부부로 살면 모를까. 결코 쉽지 않은 열개의 계명에 대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역시나 신이 있다면 "그들은 부부생활을 부부 십계명처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십계명>처럼 <부부 십계명>도 신들의 농담 같은 것이 아닐까? 그냥 한번 던져보고 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