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친아가 뭐야?

by 지성파파
바보들의 봄이란?


봄인 줄 알았는데, 아직 겨울이고

봄인 줄 알았는데, 어이없이 여름인 경우를 말한다.

이런 된장....

남서향의 아파트 거실에서 바라보면, 3월 말 일요일 오후 3시 햇빛은 그렇게 따사롭기 그지없는 봄날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바깥 날씨는 영상 5도 체감온도는 영상 2도. 아마도 이 날씨를 봄날이라고 하기엔 우리의 인내심이 허락지 않는다.


봄날 입기 위해 멋스러운 긴팔 셔츠를 새로 사 입고 나선 4월 말 토요일 오후. 전날 밤 일기예보는 따뜻한 봄날이 계속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주었다. 하지만 아파트 현관을 나선 오후 3시의 햇볕은 봄날의 그것은 아니었고 한여름의 한낮을 말하고 있었다. 일기예보상 27도, 체감온도는 30도. 다시 옷을 바꿔 입을 수밖에.

빗나가고 엇나간 일기예보처럼 우리의 미래는 늘 뜻밖의 상황에 직면한다. 우리 집 큰아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준비(선행도 예습도) 없이 중학생이 되어버린 우리 집 큰아들이 뜬금없이 묻는다. 그것도 점심으로 라면을 먹고 난 후 나른해진 엄마에게...

“엄마, 엄친아가 뭐야”


엄마는 늘 하던 것처럼 한낮의 태양을 즐기며 거부할 수 없는 식곤증의 유혹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어느 집의 살진 고양이처럼. 졸음의 매력은 첫사랑의 달콤함 이상이었을 것이고, 이를 거부한다는 것은 로또 1등 당첨의 현실을 발로 걷어차는 것과 같았다.

하여, 아들이 모처럼만에 던진 질문은 공허함이란 블랙홀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서(아무튼) 뚱해진 아들은 침묵 속에서 느닷없이 인도의 현자 같은 지혜를 얻고, 자문자답(自問自答) 할 수밖에...

“아, 그렇지. 엄친아는 ‘엄마랑 친한 아들’이란 뜻이 아닐까?”


옆에서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읽고 있던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웃기만 할 수밖에... 웃음을 유발하는 하하하.... 그래, 엄친아는 엄마랑 친한 아들일 거야. 적어도 스트레스를 폭풍 유발하는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잘 생기기까지 한 엄마 친구 아들'은 아닐 거야.


엄친아는 '엄마 친구의 아들' 또는 '엄마 친구 아들'의 줄임말로 대한민국에서 유행하는 용어이다. 고정된 의미는 없으나 주로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춘 완벽한 남자의 은유로 사용된다. 사용 빈도가 늘어나면서 점차 일반 명사화되었다. 여성형은 엄친딸이다. '어머니들이 생각하는, 무엇이든지 잘하고 완벽한 조건을 갖춘 이상형의 남자'를 뜻하거나 '모든 것이 나보다 뛰어난 자', '아무리 노력해도 이길 수 없는 존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유명 연예인들 중 외모에 덤으로 학벌을 겸한 경우를 엄친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엄마 친구 아들'이라는 용어는 네이버 웹툰 '골방환상곡 8화 〈우월한 자〉(2005/12/12)'에서 사용되면서 유행하게 되었다. 대다수의 어머니들이 자녀의 상대적인 단점을 으레 친구 자녀의 상대적 장점과 비교하는 것을 풍자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작중에서는 많은 장점을 가진 '우월한 자'를 지칭한다. 이 용어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면서 축약형인 '엄친아'가 생겨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참조(시사상식사전도 비슷함)


‘그렇지, 엄친아는 원래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엄마 친구의 아들은... 개뿔’

'그럼, 엄친딸은.... 말 그대로 엄마랑 친한 딸이겠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엄친아, 엄친딸의 의미는 잘못된 것일 거야’

‘부조리(?)한 사교육 시장이 만들어낸 허상이었지’

그러면, '돼지엄마'는 뭘까?

그냥 새끼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밥벌이하는 엄마...

그런데, 돼지아빠는 왜 없을까?



우리의 비교 강박증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유행어인 '엄친아, 엄친딸'. 우리 사회의 획일화된 성취 욕망과 그 기준을 보여주는 이 단어들은 우리 내면에 잠재된 열등감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언제까지 비교의 강박과 열등의 굴레에 쌓여 있어야 할까. 이제는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우리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희망이 들어있는 호칭(혹은 애칭)을 불러줘야 하지 않을까.

문득 깨달음은 누군가 졸고 있는 그 시간에 예고 없이 나타나 졸고 있지 않은 이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사라졌다.


그 순간 갑자기 드는 의문 몇 가지


왜, 부모와 아이들에게 애정과 친근함이 담긴 단어는 새로이 만들어지지 않는 걸까?

왜, 교육이나 공부하는 영역에서는 늘 비교하고 비교당하며 살아가는 걸까?

왜, 개인의 삶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삶' 자체가 아니고 그 나머지 것들인 걸까?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누구랑 무슨 비교를 하고, 부질없는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있을까. 내 인생이 제일 중요한데, 무슨 이유로.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도 두 명의 엄친딸과 두 명의 엄친아가 있었네.


어찌 되었건 바보들의 봄은 계속될 것이지만, 가끔은 바보들도 깨달음을 얻는다.


그런데, 갑자기 깨어난 엄마께서 한마디 거드신다.


"부친남이 뭔지 알랑가 몰라!"


'부친남'은 또 머시란 말인가!

'부인과 친한 남자' ᆢ그래도, 이건 아니지. 무슨 3류 아침드라마도 아니고.

'역시 부인과 친한 남편이겠지'

에라, 모르겠다. 내편 할 대로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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