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현자(賢者)가 집에 있네요.

막내의 현명한 한마디!

by 지성파파

일요일 저녁식단은 엄마에게는 상당히 수고로운 일입니다. 주중에는 각기 점심은 따로 해결하고 저녁에만 함께 모이지만, 주말에는 삼시 세 끼를 모조리 같이 먹다 보니 벌어지는 해프닝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가족들은 일요일 저녁만큼은 외식으로 해결하곤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혜로운 선택으로 생각됩니다.

주말이 끝나고 새로운 일주일이 시작되기 전 일요일 저녁은 엄마 아빠나 아이들이나 월요일로 인해 이유 없는 스트레스가 쌓이는 시간들입니다. 그런 이유로 좋았던 주말 분위기가 한꺼번에 싸해지는 경우도 많지요. 아무리 집밥이라도 “이건 아니지” 하는 순간이 바로 일요일 저녁입니다.

우리 집도 가끔씩 외식을 하지만 고3 수험생이 있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큰딸이 있는 관계로 그 외식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해서 엄마의 손길이 다시 한번 필요한 시간이 되고 맙니다. 주말에 느끼한 식단과 면류에 관련된 식단이 여러 번이어서 고등어와 신 김치가 잘 어우러진 고등어 김치 조림이 먹고 싶어 지는 저녁입니다. 잘 발리어진 고등어살에 신김치를 쭈욱 찢어서 엊은 한 숟가락은 천하무적입니다. 누구나 좋아하는 최애 메뉴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고등어 김치 조림을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생고등어와 저장된 열무를 사서 직접 조리면서 김장김치를 더해서 만들면 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고 맛을 보장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반찬가게에서 고등어 무조림을 한팩 사서 거기에 잘 익은 김장김치 한 포기를 턱 하니 엊어서 자작하게 조려주는 방법으로 시간 절약과 예상 가능한 맛이 보장되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오늘도 두 번째 방식으로 고등어 김치 조림을 하기 위해 반찬가게로 향합니다. 엄마, 아빠와 막내아들이 아파트 단지 내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자주 가는 반찬가게로 가는 길에 서로 얘기를 나눕니다. 자주 가는 단골집이 폐업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 업종도 경쟁이 심화되면서 살아남기 만만치 않은 모양입니다.



다른 반찬가게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 막내가 작심한 듯 말을 시작합니다.

“엄마, 아빠가 형아한테 화를 자주 내면 안된다고.”

“어차피 자기 스스로 하지 않으면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할 것이고.”

“그 모든 것은 자기 책임이다.”라고 말하면서,


정글을 예로 들었습니다.(어디서 봤는지 모르지만.)

“정글에서 혼자서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굶어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귀를 쫑긋 기울입니다. 신통방통합니다. 오늘따라 달도 보름달입니다.


이어서 아이가 또 다른 얘기를 합니다.


"형이 어떻게 하든지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아직은 중학교 1학년 시작이라 여유도 있어서 괜찮다고."

"알아서 할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이니 간섭하지(말을 많이 하지) 말고 지켜보라고."

평소에 아빠가 이런 류의 얘기를 하면서도 순간순간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장면에 우리 막내가 답답했던 모양입니다. 얘기를 듣는 순간 저녁놀이 검붉게 물들어가고 있었고, 마음속에서는 약간의 부끄러움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 초등학교 2학년도 아는 얘기를. 왜 부모는 말로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저녁노을만큼 얼굴도 함께 붉어졌습니다.


깨달음의 순간이 있다면 바로 이런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소하지만 아주 중요한.

아빠는 어린 막내아들을 “현자”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현자 지성으로. 부모들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터인데. 어린 마음이 보고 느낀 것을 또박또박 말하는 것을 보니 벌써 철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아무튼 오늘따라 가는 반찬가게마다 고등어 무조림은 품절입니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집이 많은가 봅니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지만 별이 떠오른 하늘을 보니 마음만큼은 맑고 투명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닐까요. 부모에게 깨달음을 주는 아이의 한마디를 듣는 순간.

고등어 김치 조림을 못 먹는 대신 엄마는 고추장찌개와 호박전을 선택했습니다. 막내의 현명한 한 마디와 맛있는 메뉴 때문에 행복한 일요일 저녁입니다. 여전히 식탁에서 말들은 많지만.

keyword
이전 06화<부부 십계명>은 신들의 농담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