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잔소리가 그리워질 때

by 지성파파

#1.

일요일 저녁 늦은 저녁밥을 먹고 있던 차에 핸드폰이 울린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분께서 친히 전화를 거신 것으로 보여 최대한 상냥하게 전화를 받았다.(이렇게 받지 않으면 밥상에서 애들한테 욕먹는다)


"예, 엄마"(속으로는 "또 무슨 일로 또 전화 거셨어요?")

"지성이 아빠야, 저녁은 먹었지?"


"예, 엄마"(지금 먹고 있는데요. 그렇게 말하면 늦게 먹는다고 한마디 더 하시기 때문에 무조건 "YES"가 답이다.)

"방금 KBS 1 뉴스에서 날마다 술 마시는 사람들은 심장이 약해진다고 하더라. 술 좀 적당히 마셔라"


"예, 엄마"(또 그 말씀. 천만번은 들었을법한 스토리라. 일단 수긍해야 말씀이 안 길어진다.)

"애들도 어리고 그러니까. 몸 생각해서 잘~~~ 해라....."


"예, 엄마"(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하지만 엄마 눈에는 오십이 넘은 아들도 그냥 철없는 아들일 뿐)

"알았다. 푹 쉬어라"


"예, 엄마"(이제는 전화 안 하시겠지. 이번에는 짧아서 안도의 한숨)

"뚜 ~~ 욱..........................."


다시 밥상으로 복귀해서 마저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아직 미역국이 식지 않았다. 짧아서 그나마 정말 다행이다. 냉장고에서 캔맥주 하나를 꺼내어 올 생각이었다가 쏙 들어가 버렸다. 일요일 저녁의 즐거움 하나가 엄마의 한마디 때문에 날아가서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분 전에도 분명히 집전화로 엄마와 아이들(손주들)의 대화를 한참 동안이나 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한데. 이번 전화는 특별히 대상자를 아들로 특정해서 특정인의 기호와 건강에 대해서만 얘기하시고 일방적으로 끊어버리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수천번 비슷한 얘기를 듣고 살아왔다. 어릴 때는 엄마가 말씀하시면 그 소리가 듣기 싫다고 귀를 막고 들었다가 밥그릇이 날아왔던 슬픈 기억도 있다.(그때 이후로는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속으로만 귀를 막는 습관이 생겼다. 이런 습관은 직장생활에도 큰 도움이 된다.) 언제부턴가 깨달은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기" 신공도 잔소리 방어에 큰 도움이 된다.


아무튼, 이날 저녁 어머니로부터 한번 더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은 김치냉장고에 배추김치나 다른 김치가 떨어졌는지에 대해 관한 것이었고. 이번에는 며느리와 직접 통화를 요청하신 거라, 나머지 가족들은 아주 편하게 TV를 봤다.




#2.

엄마의 잔소리에 약 오십 년, 아내의 잔소리에 25년 동안 단련된 역전의 용사도 이렇듯 잔소리가 듣기 싫은데. 이력이 나지 않은 애들은 오죽할까 싶다. 엄마의 잔소리에 아빠의 잔소리까지 더해지면 밥상은 십자포화를 맞은 전쟁터 같은 분위기가 된다. 밥을 먹다가 퇴장하는 아이도 있고, 끝까지 밥상을 지키는 아이도 있다. 아마도 후자는 피하기 신공이나 요령을 체득하지 않았을까 의심을 해본다.


부모의 마음은 늘 아이들의 행복과 성공을 바란다. 부모가 감정을 절제하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해해보고 아이의 말을 듣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얘기일 뿐, 실생활에서는 감정이 많은 것에 앞선다. 여러 번 말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전달이 되지 않을까 싶어 부모의 입장에서 결국 또 말하게 되고, 이것들은 모조리 "잔소리"의 불명예를 얻게 된다.


요새는 밥상에서 아빠가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이상 하게 되면, 중학교 1학년인 큰아들이 바로 하는 말.

"아저씨야, 꼰대야.. 아빠는...."

".................., 무슨............"

"아빠, 교훈적인 얘기 좀 안 하면 안 돼... 나도 알만큼 아는데...."

"아니, 아빠 생각에는 니 나이 때 이런 걸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인데...."

"그럼 아빠는, 내 나이 때 그렇게 생각했었어.... 할머니한테 물어볼까?"

"................, 뭐하려고............"


우리 아이들은 언제나 엄마 아빠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게 되는 날이 올까?

걱정 많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서 스스로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

이런 쓸데없는 걱정과 노파심에 또 같은 얘기를 반복하게 되고, 아빠는 그 유명한 "회피형 꼰대"가 되고 만다.


부모들 입장에서 보면 사랑의 외피로 포장된 얘기들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듣기 싫은 잔소리일 수 있다. 상호 간에 그런 대화가 반복되면, 결국 아이들은 부모와 대화를 꺼려하게 될 것이다. 안 그러면 한 귀로 듣고 흘리는 신공을 발휘하거나.


혹여나 아이들이 듣기 좋아하는 잔소리도 있을까?

아이들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말들. 아이들에게 부모가 자신의 문제를 공감하고 이해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얘기들. 아이들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하는 얘기가 바로 거기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진짜로 힘들게 하는 잔소리의 기준은 무엇일까?

부모가 감정의 절제 없이 막무가내로 쏟아붓는 말들. 아이의 말을 듣지 않고 부모가 일방적으로 명령하듯이 하는 말들. 부모가 아이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의 말들. 부모가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편견에서 비롯된 얘기들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손자들이 많은 칠순의 할머니는 손자들보다는 장성한 자식들에게 이런저런 말씀을 하신다. 사실 잔소리라고 말은 하지만 결국은 자식들의 건강과 안녕에 관한 얘기여서 하나도 버릴 게 없다.(언제부터인가 그렇다)


"나이 생각해서 술 적게 마셔라. 애들한테 잔소리하지 말아라"

"밤길에 차조심해라. 집에 늦게 들어가지 말고 빨리 들어가라"


엄마의 지나간 말씀 중에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몇 마디가 있다. 포항 해병 제1훈련소에 입소하던 날 시골집 앞과 목포 버스터미널에서 들었던 엄마의 당부의 말씀.


"군대 가서도 배곯지 마라. 밥맛 없으면 물에라도 말아 묵어라"(반찬 투정하지 말고 대충 먹으라는 말씀)

"성질부리지 말고 적당히 모른 체 해라. 사람이 너무 강하면 부러지니까"(잘난 체 하면 얻어맞는다는 말씀)


그 당시 무심한 듯 웃으며 하시는 말씀이었는데... 그때에는 그냥 흘려듣고 말았는데. 왜 이리 오래도록 촉촉하게 남아있는지 모를 일이다.


애를 넷이나 둔 장성한 아들에게 엄마의 존재와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 설마 50대의 아들이 한없이 어려 보이거나 철이 없음을 걱정하시는 것은 아니리라. 어쩌면 훌쩍 커 독립해 살고 있는 아들 딸들에 대해서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서 그러지 않으셨을까. 어머니의 미련과 아쉬움을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자식이 네 살 때나 스무 살 무렵이나 40~50대가 되어도 엄마는 엄마다. 자식들이 엄마의 건강을 걱정하는 연세가 되셨음에도 여전히 엄마는 젊은 엄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어머니의 30~40대의 모습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직계 가족수가 늘어나고 흰머리가 머리 전체를 덮고(외가 쪽이 원래 흰머리가 유전되는 집안이다), 주름이 조금 늘어난 정도의 변화밖에 없다. 반면 잔소리의 빈도는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엄마가 하시지 않는 말씀을 이제는 아내와 딸들에게 듣는다. 이것은 남자들의 숙명인가?


어린아이들이 많이 보는 동화책에 <잔소리 없는 엄마를 찾아주세요>가 있다. 제목 그대로 아이의 눈과 마음을 통해 엄마의 모습이나 가정의 모습을 그린 내용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이들은 역시나 엄마의 잔소리가 싫은가 보다.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은 나에게는 <잔소리하시는 엄마를 찾아주세요> 같은 어른 동화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 아이 넷 중 셋을 아무런 불평 없이 키워주신 어머니(보고 싶은 할머니, 아버지).... 아무렴 어머니라고 어찌 불평불만이 없으셨을까. 고단해 보이는 아들 며느리의 마음을 헤아려서 말씀을 안 하신 거지.


엄마의 잔소리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니.... 이렇게 아들도 나이를 먹는가 보다. 아니 벌써, 엄마의 그런 말씀을 간절히 원할 때가 되었을까?


세월은 가도 잔소리는 남는다더니... 맞는 말인가 보다.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가슴으로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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