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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Apr 01. 2020

법은 사람의 얼굴을 닮지 않았다

일명 <구하라법>의 입법청원을 보고서...

살아가면서 가장 억울한 일은 상식이 나를 배신하고 법이 나를 외면할 때다.


이때상식은 누구나 인정하는 합리적인 기준을 가진 사회상규여야 하고, 이때의 법은 이상적인 입법자가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만든 법률을 말한다. 가만히 우리의 주위를 돌아보면... 적용되고 있는 상식이 다수가 납득할 정도의 진정성을 가졌는지... 법이 이해관계에 사로잡히지 않고 섬세하게 억울한 이의 입장을 들어주는지.... 법의 적용과 판단이 편견을 갖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집행되는지를... 생각해보면 깊은 회의가 든다.(물론 우리가 이상적인 입법자를 가지지 못했다는 태생적 한계는 있다.)


우리는 법의 테두리 내에서 살아가지만 현실에서 법을 마주할 순간은 거의 없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민법 규정이나 형법 규정도 스스로가 소송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법들의 각종 특별법에 대해서는 더 대할일이 없는 이다. 결국 우리가 법과 부딪치는 경우는 아주 뜻밖의 순간이 될 수밖에 없다.


법치주의가 지배하는 문명사회에서 법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자유나 권리를 억압하기 위해서도 존재한다. 헌법이나 노동관계법이 전자의 주된 경우라면 국가보안법이나 각종의 형사 특별법 등은 후자의 경우다. 후자의 경우처럼 특정 정권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만든 도구적 법률이라면 이는 국민의 자유뿐만 아니라 신체를 구속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매우 위험하다. 우리의 과거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때로는 하나의 법률 안에 이들 양면성을 가진 규정이 존재하기도 하고, 특정 법률 규정이 권리규정이기도 하고 권리제한규정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성격의 규정은 사법인 민법에 여러 규정이 있다. 예를 들어, 상속인이 아닌 자로부터 상속재산을 보호하는 것도 민법의 규정이고, 형식적인 법률 규정상 상속인이지만 정당하지 못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이를 배제하지 못하는 것도 민법 규정이다.  법률이 가진 딜레마다.




최근 구하라 사망 후 상속과정에 있어 친모의 상속분 청구에 대해 공분이 일고 있다.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 친모가 20년이 지난 이후에 나타나 자신이 상속인임을 주장할 때 현행 민법의 규정상 이를 막을 방도는 없다. 민법 제1000조에서는 상속순위에 대해 무색투명하게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이라고만 되어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속 결격사유(민법 제1004조)에는 선순위나 동순위의 상속인을 살해나 상해 치사한 자 등만 규정되어있어, 자녀의 보호나 부양의무를 외면한 부모의 상속을 막을 길은 없다. 설사 망인이 민법 제1012조에 의해 상속 배제 또는 제한에 관한 유언을 하였을지라도 친모의 상속권을 완전히 박탈할 수는 없다. 친모는 유류분(민법 제1112조) 청구에 의해 최소한 상속재산의 1/6(자신의 상속분 1/2 × 유류분 1/3)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모의 배신행위와 사후 상속에 대해 분노가 일더라도 현행법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천안함 사건 때와 세월호 참사 때 보상금을 상속받는 상황에서도 있었다. 그렇다고 인륜을 저버린 인간의 재물에 대한 욕망에 대해서 이해 관계없는 타인이 무작정 돌을 던질 수는 없다. 어찌 되었건 상식 속의 분노는 법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현행 우리 민법의 상속(결격)에 관한 태도는 정당한가? 일반인의 법감정에 따르면 이 사건은, 이 사건을 둘러싼 민법의 규정은 용납하기 힘들다. 쉽게 말해서 인륜을 저버린 친모에게 한 푼도 줘서는 안 되는 상황인 거다. 망인의 (추정된) 반대의사에도 불구하고 친모가 유류분 청구에 의해서 일정한 상속 지분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현행 민법은 과연 정의로운가? 무엇이 문제일까.... 민법의 취지를 공감하지 못하는 일반인의 상식이 문제일까.... 아니면 이러한 흠결을 보완하지 못하는 민법의 태도가 문제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민법의 상속 관련 규정은 상식을 대변하지 못하고 정의와 인륜에 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민법 상속규정의 문제점을 알고서도 개정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게으름 탓일까?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든 법에 흠결이 없을 수가 없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부족함을 보완하고 억울한 이들이 없게 하는 것도 입법자가 할 일이다. 몇 번의 사례가 축적되어 분노가 상식이 되었을 때 법은 그에 맞게끔 개정되었어마땅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힘없는 개인들의 고통과 슬픔은 지나가면 그만인 것으로 취급되었다. 분노로 촉발된 개정 시도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법 개정의 어려움이나 그런 입법례가 없음을 이유로 무위로 끝나거나 탁상공론에 그쳤다. 이는 입법자가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내려놓는 것이다.


자식을 버린 부모의 재산 상속을 막을 방법이 없는지에 대한 고민이 특정인의 사건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우리의 상식이 그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 요구가 법에 무지한 이들의 외침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근거하고 법의 전제인 도덕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식을 도외시하는 현행 민법의 흠결을 그냥 두고 볼 것인가?


일명 <구하라법> 입법청원의 핵심은 이런 것이다. 1) 적어도 인륜을 저버린 부모나 상속인인 가족의 행위는 민법상  상속결격사유로 해달라는 것과, 2) 기여분 제도를 실질화시켜 사례와 같은 경우 친모의 상속권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과연 이 요구가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에서 벗어난 것인가? 이러한 법령 개정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인가?


물론 민법의 상속 관련 규정에 위 청원과 같은 입법이 이루어지더라도 상속인들 간의 갈등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착한 상속인"을 준별하는 것과 이에 대한 사회경제적 비용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입법과정에서의 사회적 합의와 입법자의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법은 인간사회에서 어떤 존재 이유를 갖는가?.... 최소한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져 있는가?

법은 사람의 얼굴을 사람의 가슴을 가졌는가?.... 최소한 닮으려 노력하고 있는가?


노자의 도덕경 제73장 임위(任爲)에 이런 문구가 있다.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失)" 


이 문장은 "하늘의 그물은 크고도 넓어 엉성해 보이지만, 무엇 하나 놓치는 법이 없다"라고 해석된다. 법이 사람의 가슴을 닮지 못한다면 그 법은 엉성하기 짝이 없는 그물이 될 것이다. 세상도 엉성하고 법마저도 엉성해서 놓치는 게 많다면 우리는 무엇에 의존할 것인가?


우리 사회가, 우리의 현행법이 겉으로는 엉성해 보이지만, 무엇하나 놓치는 법이 없는 그런 섬세한 얼굴과 가슴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입법자인 국회의원들, 법령 제정과 개정을 담당하는 법무부와 전문가 집단의 진심 어린 고뇌와 성찰을 촉구한다. 


사람의 얼굴을 닮고 사람의 가슴을 가진 법을 보고 싶은 것은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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