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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Apr 09. 2020

작은 영웅들의 참 이상한 나라

참 이상한 나라의 더 이상한 사람들

이상한 나라에 앨리스만 살지는 않는다. 반대로 앨리스가 사는 곳만이 이상한 나라는 아니다.


참으로 이상한 나라가 있다. 이 나라에는 더 이상한 사람들이 산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생각해주며 안타까워하는 이들과  타인의 어려움을 자신의 처지보다 먼저 살피는 이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국가에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는 누가 부르지 않아도 제일 먼저 달려 나오고, 그  상황이 끝났을 때도 가장 나중에 들어간다. 이들은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장롱 깊숙이 아껴둔 결혼반지와 돌반지를 아낌없이 던져 나라의 곳간을 채우는 사람들이다. 이상한 사람들은 주위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의 작은 영웅들이다.


역병이 창궐할 때도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헌신하는 의료진, 수많은 자원봉사자와 익명의 기부자들이 이 나라에 산다. 불의의 사고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을 위해 몇 달에서 몇 년을 함께 기거하며 상심한 부모의 마음을 달래고, 삼보일배를 하며 저 남녘에서 서울까지 동행하는 이들있었다. 이들은 코벤져스란 이름으로, 이름 없는 자원봉사자로 불리는 우리 시대의 작은 영웅들이다. 그 누가 돈을 주고 등을 떠밀어도 쉽지 않은 일들이다. 덜 이상한 나라들에서는 어지간해서는 보기 힘들 광경이 이상한 나라에서는 흔한 일이 된다.


이상한 사람들의 이런 착한(?) 특성 때문에 자신들"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정치놀음을 하는 이들에게 여러 번 이용당하기도 했다. 그만큼 순수하거나 순진한 면도 있다.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이 그런 너그럽고 부드러운 면만 가진 것은 아니다.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특정인의 욕망에 부역할 때는 들불 같은 기세로 일어나 정의로운 세상을 말하기도 한다. 이들은 비정상으로 향하는 나라를 여러 번 정상으로 돌려놓은 값진 경험이 있다. 그 경험들이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큰 자산이고 명예다. 시민들의 힘으로 나라를 세우지는 못했지만, 거꾸로 가는 나라를 시민들의 의지로 바른 방향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시민혁명이라는 말은 이 나라의 이상한 사람들에게는 결연하면서도 수줍은 단어다. 


덜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이 보기에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은 정말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철저히 개인적이거나 국가주의적인 들에게는 이타성과 집단성양면성을 가진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은 연구의 대상이며 존경의 대상이다. 나라에 큰 역경이 생길 때마다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은 더 잘 뭉치고 더 강해지는 것을 보았다. 하다못해 덜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은 세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축구경기에서 여러 차례 놀라운 광경도 목격했다. 이상한 나라 사람들이 붉은 옷을 입고 귀여운 악마가 되어 밤샘 응원을 하면서도 정열과 질서라는 성숙된 시민의식보여주었던 것을. 염색되지 않은 흰옷을 즐겨 입었던 이 나라의 사람들 속에 그토록 강한 열정이 어디 숨어있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가슴 벅찬 순간이 여러 번이었다. 


한국을 코로나 19 대응 모범사례로 보도하는 외신

어느 시대나 어떤 나라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위기는 피해 갈 수 없다.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고 견디어 가는가는 각각 천차만별이지만... 맥주 이름 비슷한 이 역병도 소리 없이 찾아온 불청객이다. 이를 마주하는 각 나라의 방식은 서로 달랐고 시간이 흐를수록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는 시시각각 전달되는 글로벌 뉴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명선진국이라 불리던 덜 이상한 나라들의 국민들이 휴지와 식료품 사재기에 열중할 때, 이상한 나라의 국민들은 사재기란 말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먹거리가 풍부하고 유통망이 잘 정비된 이유도 있지만, 그것은 지난 시절의 고난을 극복해본 자신감과 성숙해진 시민의식 때문이었다. 사재기 열풍은 정부나 시민사회나 국가경제의 건전성을 믿지 못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정부는 비록 욕을 많이 먹을지라도 솔직해지려고 노력했고, 시민사회는 불안감에 휩싸이지 않았고, 국가경제는 마스크 재고량을 제외하고는 굳건했다.


알고 보면, 참 이상한 나라는 더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다른 덜 이상한 나라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듣는다. 다른 나라들이 가지지 못한 이상한 특성 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문화적 자부심을 뛰어넘는 독특한 무언가가 이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작은 영웅들의 마음에서 일상으로 흘러나와 이웃들에게 전파되고, 이상한 나라의 전체로 퍼진다.


물론 애써 이상한 나라의 자존감을 부정하려는 <덜 이상한 사람들(본인들의 착각이지만)>이 여전히 있기는 하다.  그들에게 우리의 이상한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는 시민사회의 성장은 늘 부담이었고,  위기상황에서 마스크 재고량을 향한 비난 외에는 딱히  역할도 할 말도 없다. 이들은 이상해지지 않으려고 한결같이 자신들만의 복고적인 이상향을 향해서만 달려가는 불나방 같은 존재들이다. 자신들은 극히 정상이라는 과도한 착각에 빠진 이들이다. 자신들의 사익추구를 나라를 위한 마음과 동일하게 보는 이들이다. 이들은 과거라는 기득권과 청산해야 할 못된 유습을 유일무이한 자랑으로 여긴다.


그들은 외부로부터 칭찬받는 투명한 정부를 비난하고, 더 칭찬받아야 할 작은 영웅들을 사분오열시키는 특징을 가진다. 이들의 존재방식은 과거회귀적이며 분열적이다. 이들의 논리는 초등학생 같은 흑백논리와 편 가르기라는 저열한 행위 속에서 더 빛을 발한다. 이들로 인하여 참 이상한 나라는 아직도 과거청산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언제든지 과거의 망령이 되돌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도 가지고 있다. 아무튼 이들의 존재가 끊임없이 부각되는 것을 보면 이상한 나라는 수수께끼 같은 나라임에 틀림없다.


최근 들어, 다시 참 이상한 나라와 더 이상한 사람들이 덜 이상한 나라들의 관심대상이 되고 있다. 문화적 우월주의에 빠졌었던 정상적인 나라들에게 이상한 나라는 큰 충격을 다발로 선물하고 있다. 이상한 나라 사람들의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방식과 특유의 침착함. 그것은 이상한 나라 사람들의 위기극복에 대한 저력이었고, 삶의 지혜가 담긴 자신감 때문이었다.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과거의 값진 경험과 현재와 미래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이 위기를 슬기롭게 견디어 나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참으로 이상한 나라의 더 이상한 사람들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겨울나라의 앨리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동적인 이야기를 가진 작은 영웅들이 살아가는... 그러나 훨씬 더 현실적인 실체를 가진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이다.


우리네 삶의 현장 곳곳에서 이름 없는 작은 영웅들이 이 나라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역사책에는 남지 않을 수도 있는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삶의 스토리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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