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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Feb 24. 2023

금요일 오후 5시, 같은 삶은 어디에도 있다

늘 웃고 사는 지인에게 물었다.

"요즘 사는 게 즐거운가요? "

돌아온 대답은.

"마냥 그렇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저는 가능하면 현재를 '금요일 오후 5시'라 생각하고 산답니다."


아니! 이 친구가 언제부터 이런 현자 같은 생각을 가졌지 하면서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마도 그리스 국적의 조르바 씨에게 물었더라도 이와 비슷한 대답을 듣지 않았을까?


금요일 오후 5시라... 구체적으로 부연 설명하지 않더라도 느낌이 확 다가온다. 이틀 연휴인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 더하여 대략 퇴근하기 한 시간 전쯤.... 누군가와의 약속이 기다려지고 번개로 친구를 불러내고픈 시간. 심장박동이 설렘의 광장으로 행진하는 시간. 머릿속 엔도르핀이 가장 활발하게 솟구치는 시간. 오직 이 시간만이 가능한 릴랙스의 시간. 소풍 가기 전날 같은 기다림으로 들뜬 시간.


사람을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시간은 월요일 오전 9시.(물론 아직은 출근할 곳이 있어서 발걸음이 가벼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시간에... 미소가 없다. 커피가 여러 잔 당긴다. 밥맛이 없다. 대화가 사라진다. 이 시간은 남녀노소, 뉴요커도 파리지엔도 어쩔 수 없다. 그 전날인 일요일부터 불면의 고통이 따르는 이들도 많다.


금요일 오후 5시는 어떤가. 절로 웃음이 난다. 커피보다는 저녁메뉴가 떠오른다. 식욕이 왕성해진다. 전에 없던 수다쟁이의 본성이 드러난다. 이 시간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스트레스와 활력이 교대하는 시간이다. 고뇌하는 철학자도, 고3 수험생도, 얼뜨기 정치인도, 평범한 대부분의 시민도 이 순간을 마주하는 느낌은 비숫하다.(물론 경우에 따라서 일주일의 피로로 만사 귀찮아지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바라는 삶의 유형은 어떠할까? 평온과 설렘이 공존하는 삶. 이 느낌은 행복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몸과 마음의 평온은 긴장과 스트레스가 제로로 수렴되어야 한다. 관계의 불편함이 작아지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이 많아져야 한다. 어떠한 구속이나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삶의 질감을 가져야 한다.


결국, 한 개인의 삶은 금요일 오후 5시 같은 설렘이 있어야 하고, 따뜻한 안방과 같은 평온이 있어야 한다. 그러함에도, 불안한 정치경제의 현실에 두려움이 상존하고, 난방비와 생활비가 급등하며, 일가족의 비극이 단골 뉴스가 될 때 우리의 금요일은 쉽게 오지 않는다. 어떤 개인의 일주일은 월화수목에서 다시 월화수목으로 바뀌는 비극적인 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이상적인 국가, 이상적인 사회, 이상적인 가정을 꿈꾸기에 우리는 너무 멀리 와 있다. 이상적인 정치에서 너무 멀어진 현실정치 때문에 더욱 그렇다. 월요일 오전 9시의 삶을 살 것인가? 금요일 오후 5시의 삶을 살 것인가? 이것은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치경제를 포함한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전제 조건의 문제이기도 하다.


금요일의 출근길은 더 가볍다. 지하철에서 보라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한 어떤 여성을 보고는 갑자기 라벤더가 떠올랐다. 보랏빛 수국 혹은 라일락이었나... 아무튼 아로마향의 싱그러움이었다. 나를 위한 나만의 색깔. 자존감을 올려주는 확실한 자기표현. 멋지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금요일이어서 더 돋보였을까. 모두들, 오늘 저녁은 무슨 약속을 하고 5시의 시간을 지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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