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세상에 세상에나..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 그런 생각을 하셨다구요. 허 참. 대단하시네요. 초딩이 어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수 있을까요? 떡볶이 먹고 게임이나 하면서 학원 다니면 하루가 다 갈 텐데요... 호호호.”
저녁 식사하는 자리에 나온 고민정 팀장이 깜짝 놀란 투로 말했다. 안대표와 여러 팀장들이 저녁을 먹는 중에 나온 대화였다. 최근에 계속적으로 호조를 보인 상품개발과 매출액 증가에 따른 팀장급 이상 회식자리였다. 맛있고 건강한 밥상을 구현하는 사장 내외의 음식 철학이 내오는 반찬마다 스며들어 있었다. 안대표는 쑥스럽게 웃으며 얼굴이 붉어졌다. 더듬거리며 몇 마디를 던졌다.
“그게.... 그니까.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자꾸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생각을 만들어 팔면 어떨까? 생각을 팔기 위해서는 무엇을 팔아야 할까? 무언가를 만들어 팔기 위해서는 회사 같은 것도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 할까? 음... 그때 아버지 어머니를 많이 귀찮게 해 드렸죠. 이것저것 질문하느라.... 허허허.”
그랬다. 지금의 생각나무 주식회사는 초등학생이었던 단태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비록 당시 친구들은 어처구니없다고 비웃었지만, 생각을 만들어 팔고자 했던...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생각의 씨앗을 만들어 팔고자 했던 어린 단태의 생각에서 이미 이십여 년 전에 만들어져 있었다. 처음으로 생각을 만든다는 제품을 팔았던 그날 초등학생 단태에게 아빠가 물었다.
“오호라. 우리 단태는 어떻게 이런 걸 팔 생각을 했니?”
“음... 그니까. 아빠, 저는 인간에게 가장 큰 능력은 사고능력이라 생각해요. 근데 이 생각하는 능력은 배부른 사람들한테는 잘 없거든요. 요새 보면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나 비판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 책도 거의 안 보고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이 옛날보다 더 멈춰있는 거 같아서...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려면 생각을 팔고 사는 그런 시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히히히.”
마른 빨랫감을 정리하며 옆에서 부자간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엄마가 방긋 웃으며 단태를 치켜세운다.
“아이고, 우리 단태가 생각이 다 컸네. 생각을 만들어 팔 생각도 하고. 어른들이 걱정해야 할 고민거리를 벌써 초등학생이 다하고 있고. 지금 엄마가 봐도 공부하는 책 말고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도 않는데... 그러다 보니 생각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더더욱 없어지는 것은 사실이지. 엄마 병원 상담심리 선생님들도 다들 그런 얘기를 많이 해. 생각을 못하거나 안 하니까 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아마도 다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도 개인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지 않을까!”
아빠는 단태의 생각노트를 찬찬히 읽어보면서 엄마에게 지긋한 미소를 보냈다. 엄마 또한 니채를 무릎에 앉히면서 씽긋 웃음을 보였다. 니채의 손에는 형 단태가 보았던 컴퓨터 언어에 관한 책 하나가 들려있었다. 니채는 형 따라 하기 대장이었다.
단태는 자신의 생각노트를 통해 자신의 꿈과 실현과정을 기록했다. 단태의 노트는 초등학생의 일기체 같은 문장부터 뇌과학과 컴퓨터공학 박사과정의 난해한 문장까지 기록되어 있다.
인간의 생각은 만들어지는가. 생각은 어디에 만들어지고 저장되는가. 생각의 씨앗은 존재할까. 생각의 씨앗을 만들 수 있을까. 그 씨앗은 무엇으로 만들어야 할까. 그 씨앗을 어떻게 사람의 머릿속에 집어넣을까. AI의 어떤 기능을 활성화해야 생각을 전달할 수 있을까. AI가 처리해야 할 데이터는 어디서 어떻게 축적하고 더 빨리 처리할 수 있을까. 뇌과학의 과학적 결론을 어떻게 AI가 구현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연구를 위해 어떤 공부를 하여야 할까....
다독가로 유명한 민수경 팀장이 초등학생이었던 안대표의 얘기를 들으며 말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어릴 때부터 책 많이 읽는다고 학교에서 소문나고 그랬는데... 대표님 책 이야기 들으니 할 말이 없네요... 우리 어릴 적에는 세계문학전집이 집마다 있었지만 그걸 제대로 읽는 아이들은 별로 없었잖아요. 근데 저는 몽땅 다 읽었거든요. 꼬박꼬박... 생각해 보니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무슨 숙제하는 느낌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러다가 고등학교 가서는 문학이나 교양서는 거의 읽지 않고 공부만 했던 거 같아요. 다들 그러지 않았나요?”
옆자리에 있는 김도윤 팀장도 부지런히 고개를 끄덕이며 낄낄대며 웃었다. 안대표도 숙제라는 얘기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도 한참 그랬던 거 같아요. 일단 친구들하고 노는 게 좋잖아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어느 순간 다시 책 속에 빠져들었던 거 같아요. 아까 만들어 팔고 회사 만드는 맥락과 같이 갑자기 읽고 싶은 책들이 엄청 많아졌어요. 부모님들이 소장하는 책을 먼저 손댔죠. 그러다가 그 책을 읽고 나니까 어떤 허기 같은 것이 밀려왔어요. 다시 부모님을 졸라서 분야를 선택해서 어려운 책들을 골라 읽기 시작했죠. 허허허.”
어릴 적부터 넓고 깊은 독서가 가능했던 단태는 초등학교 수준에서 벌써 대학원 과정의 전문가들이나 읽을 만한 책을 가까이했다. 그때부터 아빠의 조언과 영향을 받아서 개론 수준의 철학서부터 동서양의 고전에 대해 두루두루 섭렵했다. 아마도 같은 책을 두 번 이상 보지 않아도 되는 특별한 기억력을 가진 단태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진기억력은 통상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이들에게서 가끔 나타났지만, 단태처럼 평범해 보이면서 사회성이 좋은 사람들에게는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초등학생 때에는 러시아 대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대해 만연체 문장이라 비판했고,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의 작품들에 대해서 암호문 같다며 투덜거렸다. 전공자들도 어려워할만한 난해한 문장들도 잘 소화해내곤 했다. 특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며 대단한 책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그의 말년의 비참함에 대해서는 가슴 아파했다. 중학교 시절에서는 노장 사상에 심취해 각종 동서양의 연구서적까지 찾아서 읽어보곤 했다. 철학자이자 다독가로 유명한 단태의 아빠조차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 정도였다.
“제 부모님은 특별하면서도 상식적인 교육방식을 선택하셨거든요. 학교에서 월반 제도가 있으니까 얘들을 조기에 졸업시켜서 상급학교에 보내라는 걸 부득불 반대하셨죠. 저도 어린 마음에 안된다고 했었거든요. 동년배 친구들과 놀고 생활하는 게 좋았거든요. 공부 하나만 가지고 성장이나 성취를 평가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저랑 동생이랑 그냥 일반 초등학교 중고등학교까지 과정을 편하게 마쳤죠. 친구들도 그때 만난 얘들이 지금도 가장 친밀하게 지내고 있죠.”
단태는 초등학교 때부터 월반을 할 수 있었으나, 본인과 부모의 반대로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마쳤다. 중고등학교 또한 단태의 비범함을 감추고자 외고나 과학고 진학을 거부하고 일반 고등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단태의 부모는 평생 갈 수 있는 친구들과 평범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천재들의 좁은 세계를 살아가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단태의 특이함은 곳곳에서 돌출될 수밖에 없었다. 특출한 수학적 재능은 그로 하여금 자신만의 문제집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주었고, 친구들이 범접할 수 없는 독서경험은 수능 국어시험에 필요한 문학 자료에 대해 시중에서 볼 수 없는 요약본을 제공케 했다. 사교성이 좋으면서도 운동까지 잘하는 단태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았다. 결과적으로는 대입 수능 만점과 미국식 수능 SAT에서 최고점을 기록했다.
미국 신문에도 단태의 부모는 ‘독특한 부모’로 소개되었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아이를 평범하게 키우려는 부모. 철학교수인 아빠와 의사인 엄마 사이에서 특출함을 거부하는 아이들. 다른 한국의 부모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독특한 부모 역할이라고 치켜세웠다. 아이들의 평범한 삶을 응원하고 아이들의 선택에 자신의 삶을 맡기는 현명한 태도는 본받을만하다고까지 했다. 입시지옥과 무한 경쟁에 빠진 한국의 교육실정에 비추어보면 이상하지만....
사려 깊은 김도윤 팀장이 물었다. 공부라면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커리어를 가진 그였다. 기술고시 최연소 수석합격에 카이스트 컴퓨터 공학박사. 대기업 임원을 해도 납득이 가는 이력이었다.
“대표님 그런데, 미국에서 공부할 때 엄청 많은 성취를 이뤘잖아요. 컴퓨터공학에 심리학에 뇌과학까지 전문가 수준에 이르잖아요. 사실 그런 학문적 배경이 없었다면 지금의 생각나무의 기초나 성장도 없었겠죠. 훨씬 크고 좋은 회사에서 일하자는 제안이 많았을 텐데... 지금의 선택을 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김팀장의 질문은 다른 사람들도 묻고 싶은 거였다. 흥미로운 질문이 나오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대표를 쳐다봤다. 안대표는 고개를 약간 쳐들고 눈을 지그시 감으며 무언가를 생각했다.
안단태는 컴퓨터 공학자이자 심리학과 뇌과학 분야의 박사다.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뇌과학에 관한 여러 개의 탁월한 국제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다. 공과대학에서 독보적인 MIT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했고, 석박사과정은 컴퓨터공학과 심리학을 복수 전공했다. 뇌과학은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공부했다. 부족한 의학 분야는 엄마와 친구들 네트워크를 통해서 해결했다.
미국의 구글에서 일하면서 인공지능과 대화형 챗봇 등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훗날 구글은 단태의 제안으로 인해 이 분야에서 대박 상품을 만들어낸다. 특이한 이력으로 프랑스 향수회사에서 일하면서 인간의 오감과 심리적 상호영향에 관한 문제를 제안해서 코와 머릿속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입체적인 향수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 향수회사에서는 부사장직을 제안하면서까지 단태를 잡고자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독일의 철학과 뇌과학에서부터 동서양의 인문고전까지 두루두루 섭렵했다. 이 모든 지식과 경험은 단태의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있던 하나의 아이디어를 향해가고 있었다.
“생각을 만드는 방법”
단태도 처음부터 생각의 씨앗을 구체화시키지는 못했다. 단태의 머릿속에서조차 자신의 아이디어가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사람의 뇌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때가지도 인간의 뇌 속에 무언가를 심는다는 것은 현재의 과학 수준에서는 전기 자극이나 최면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좀 더 획기적인 방법과 과학적 연구가 필요했다.
단태는 특히 프루스트 현상에 주목했다. 이는 마들렌 효과라고도 불리며,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마들렌을 홍차에 적셔 먹으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린다는 내용에서 유래한다. 단태는 과거에 맡았던 특정한 향이나 냄새 등의 자극이 과거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작용이 있다면, 다른 여러 유형의 자극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를 생각했다.
단태가 미국에서 프랑스와 스위스로, 독일에서 스웨덴으로 저명한 과학자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고 익힌 이유가 그러했다. 현재의 과학 수준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미래과학으로 해결 가능한 분야에 대해서는 괴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을 스승으로 모셨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대부분의 정보화기술도 몇십 년 전에는 손가락질받는 아이디어였기 때문이다.
단태의 첫 번째 사업아이템은 명상과 음악을 이용한 불면증 치료였다. 명상분야를 택한 이유는 문화지체현상과 경제적 빈부격차 전쟁과 지구멸망의 공포 등에서 현대인들이 끊임없이 불안을 느끼고 있어서였다. 단태의 생각에는 인류라는 종족은 리듬감에 취약한 개체로 보였다. 그런 까닭에 원시시대부터 계속 노래와 춤과 리듬에 몸과 마음을 맡기면서 살아왔다. 불안과 리듬을 조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하는 게 그 당시 단태의 고민거리였다.
단태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고민할 당시 전 세계적으로 컴퓨터 보급과 인터넷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닷컴 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업플랫폼의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인터넷을 통한 상호 접근이 가능한 시대로 변했다. 특히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인터넷 보급에 나서 전 세계에서 가장 확충된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다.
단태는 그 시점에 주목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을까. 1998년도에 설립되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던 구글의 검색기능과 다양한 여론조사기관의 데이터를 수집해서 분석했다. 그 결과가 명상과 명상음악, 수면음악과 불면증 해소였다. 먹을 것은 풍부해지고 지식은 더 다양하게 축적되고 있었지만, 막상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병들어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일반적인 명상음악과 수면음악은 단태가 고민할 당시에도 단순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단태는 형식만 명상과 수면이 아닌 실질적으로 뇌 속에 일정한 자극과 형상화될 수 있는 차원의 프로그램을 원했다. 약물치료나 수면제가 아닌 스스로 잠들 수 있는 메커니즘을 고민했다. 단순한 마인드 컨트롤을 넘어서서 음악과 파동이 불안을 해소하고 최적의 수면환경을 가져오게 했다. 엄마의 태내에 들어있는 아기와 같은 느낌과 가장 안정적인 뇌파가 분출될 수 있는 공감각적 이미지를 제공했다.
단태의 고민과 예상은 적중했다. 단태가 만들어낸 명상프로그램과 수면프로그램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상품개발 초기에 맛보기로 내보낸 시험용 영상들이 유튜브 인터넷 조회수는 세계적인 스타 가수의 공연영상을 뛰어넘었다. 때마침 구글은 특유의 알고리즘을 활용한 검색엔진을 제공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원하는 정보와 영상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불안과 불면은 미해결의 영역이어서 단태의 프로그램은 누구에게나 환영받았다. 유튜브 홈 화면에는 늘 수면음악이 명상 프로그램이 자극적인 채널과 함께 단골로 떠있다.
단태는 초기 상품들을 계속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면서 사업영역을 확장시켰다. 누구나 시청할 수 있는 일반적인 오픈 영상부터 자신이 심혈을 기울인 시판용 프리미엄 상품까지 넓혀갔다. 단태의 상품이 나올 때가 때마침 개인의 휴대폰 사양이 고도화되는 시기와 맞물렸다. 삼성폰과 아이폰이 경쟁하듯이 고사양 핸드폰을 하루가 다르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단태는 그런 빠른 시대의 흐름을 절호의 기회로 이용했다.
이때 1인 기업 ‘단태스 파크(Dantae’s Park)’를 설립했다. 핸드폰에 앱을 다운받아서 사용가능한 프로그램으로 단순히 시청각적 요소에 한정하지 않고 보다 입체적이고 공감각적인 효과를 가미한 명상 프로그램과 수면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영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로 구현된 제품까지 출시했다. 구글에서 접속자수와 조회 수는 계속 신기록을 갱신했다. 구글에서 다시 손을 내밀었다. 하나의 개발사업부서 전체 대표 자리를 제안했다. 유익한 콘텐츠 중에서 단태의 프로그램처럼 충성도 높은 고객을 불러 모으는 상품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아이템으로 대기업 대표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던 단태는 부드럽게 제안을 거절했다.
이를 이용한 사용자들은 시각적 피로감 없이도 머릿속에서 음악과 리듬이 구현되고 마음이 안정되고 고요해졌다. 굳이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앱을 통해 프로그램을 구동시키면 음향을 듣는 자체로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불면증으로 시달렸다던 어느 중년 여성이 채널에 댓글을 남겼다. 이런 내용의 댓글은 수천수만 개에 이른다.
“세상에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불안장애 때문에 이십 년 넘게 수면제를 복용하면서도 잠을 못하고 그랬는데... 이 채널에서 계속 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다 보니 머릿속에서 마치 엄마의 품 같은 상황이 그려지네요.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꿀잠을 자게 돼서 너무 개운합니다. 집에 있는 수면제 모두 버렸네요. 진짜로 감사드립니다.... 친구들한테도 추천 많이 했습니다...”
안대표의 계속되는 성장과정에 얽힌 에피소드에 다들 웃고 떠들며 앞에 놓인 음식을 먹었다. 누군가의 인생얘기는 훌륭한 안주거리가 된다. 그럼에도 밥상 위의 음식이 떨어지기 무섭게 최지민 팀장은 손을 들어 추가 주문을 했다. 웃음도 많고 정도 많은 최팀장이 술까지 몇 병 더하고 나서는 모두가 궁금해하는 생각나무 회사 성장기를 물었다. 안대표는 된장국에서 게다리 하나를 건져서 빨고 있다가 수더분하게 웃었다.
“허허. 글쎄요, 그렇죠. 처음부터 지금 우리 규모를 생각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니까요. 여기 계신 우리 최팀장님이 최고의 공헌을 하셨거든요. 일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사람이 전부잖아요. 기술이야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변하기 마련이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서.....”
1인 기업이 탄탄하게 성장하는 동안 단태는 자신만의 숙원작업에 집중했다. 자신의 지적능력의 총합체인 정보 집적 시스템인 자기학습형 AI를 만들어 놓았다. 훗날 이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인공지능은 ‘생각의 원천’이라 불린다.
단태는 이때 인공지능의 성장에는 반도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게임용 그래픽 가속기를 만드는 회사에 자신만의 반도체를 제작 주문한다. 단태의 요구로 인해 그 회사는 특별한 연구능력을 갖게 되고 훗날 앤비디아의 열풍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단태가 그 반도체회사의 연구와 제작에도 관심을 가져 상당 금액을 투자해서 의미 있는 지분을 확보했음은 물론이다. 인공지능 전문가인 단태의 투자로 이 회사는 벤처 캐피탈 자금을 유치함으로써 탄탄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AI성장속도로 보아 이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을 제치고 최고의 가치 있는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잘 만들어진 상품은 입소문을 탔고 고객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단태의 사업은 이제는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행정적 처리를 외부의 변호사나 세무사에게 일을 맡겼으나 이제는 자기사람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단태는 1인회사인 자신의 업무를 지원하고 회계 등의 행정업무처리를 해줄 능력 있는 조력자를 고민했다. 단태는 서점에서 책 사이로 다닐 때 큰 행복을 느끼는 독서광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서점을 왔다 갔다 하면서 눈에 띄는 책을 보고 고르는 게 그의 시간 소비 방식이었다. 그때 우연히 종로의 대형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주인공을 발견했다.
최지민은 은행 근무 중 육아문제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심리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마칠 정도로 학구적 열정이 있었다. 특성화고 출신으로 국책은행 근무와 심리상담사, 시민단체 활동과 작가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이었다. 여성의 사회진출과 경력단절에 관한 스토리를 게재하면서 파워블로거로 이름을 날렸고 이와 관련한 책도 두 권을 썼다. 안대표는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 다재다능한 최지민의 책을 눈여겨봤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상에서 그녀의 활동과 열정을 자세히 살펴보고 메일로 연락을 취했다. 최지민은 단태의 제안에 흔쾌히 승낙을 했고, 주 4일 근무와 자유로운 재택근무 선택이 그녀의 첫 번째 조건이었다.
최지민 팀장과 몇 사람이 지원업무에 합류하고 나서도 처리해야 할 일거리가 많아졌다. 어느 날 문득 단태는 이제는 사업을 소규모로 할 수 없고 재능과 열정을 갖춘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1인 기업이 아닌 전문가로 구성된 명실상부한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탄생된 것이 생각나무 주식회사다. 초등학생이던 단태가 구상한 회사가 이제 세상에 나올 때가 된 것이다.
단태는 자신과 생각의 DNA가 같은 이들을 원했다. 단순하게 공부만 잘하는 이들이 아니라 인문학적 지식이나 사회 공헌 의지, 공감능력이나 다양한 확장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이들이 필요했다. 이들에게는 파격적인 대우와 근무환경을 제공키로 했다. 생각나무의 조직, 근무조건과 인사정책에 관한 것은 대부분 최지민과의 대화를 통해 만들었다. 첫 번째 합의점은 사람에 대한 가치투자였다.
대기업에 편중된 우리나라의 노동환경은 소규모 기업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고액 연봉과 세끼 식사 제공도 대기업과 잘 나가는 게임회사나 일부 외국계 회사 정도에서만 볼 수 있었다. 단태는 직원들이 가장 바라는 근무환경과 조건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만족할만한 연봉과 즐겁고 쾌적한 사무실, 고효율을 낼 수 있는 근무시간, 각종 네트워크가 정비된 업무환경... 이런 환경을 만들어야 최고의 인재들을 데려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주 4일 24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했다. 유연한 출퇴근 시간제와 연 30일 휴가와 성과휴가를 합쳐 45일 정도 휴가를 갈 수 있도록 인사정책을 만들었다. 출퇴근 근무와 재택근무를 직원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정보시스템 관련 회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정책이었다. 이는 직원이 먼저 행복해야 좋은 제품과 고객서비스가 제공된다는 단태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상호는 ‘생각나무 주식회사’로 이름 지었다. 자신의 특허기술과 현대 첨단 AI정보화 기술이 집약된 시스템을 ‘생각의 원천’이라 부를 생각이었다. 생각을 만드는 나무, 생각을 만들어내서 전파하는 회사, 생각을 씨앗을 퍼뜨리는 회사. 이미 탄탄한 실적을 보여주는 명상과 수면프로그램에서 생각나무로의 변신을 꾀했다. 변호사를 통해 서울중앙법원 등기국에서 법인등기까지 마쳤다.
해커출신으로 생각나무의 꾀돌이인 배지형 팀장은 반찬이 입맛에 맞는지 알타리 김치와 나물을 여러 번 추가로 리필했다. 뜨끈하게 나온 숭늉을 한 숟가락 먹다가 안대표에게 물었다.
“대표님, 처음에 이쪽 분야를 시작하실 때 지금의 상황까지 내다보시고 AI시스템을 만드신 건가요? 저도 AI 개발자이긴 하지만 앞일을 내다보면서 시스템 설계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반도체 칩 설계의 전설이라는 짐 켈러도 AI 관련 반도체가 가진 한계성 때문에 어느 정도 발전하다가 정체될 거라고 예측하고 있었잖아요. 지금 한참 뜨고 있는 엔비디아 시대도 결국 끝난다고 예언하고 있거든요. 예전에 짐 켈러 쪽에서 안대표님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얘기도 있구요. 어떻게 지금의 생각의 원천 시스템을 구상하셨는지... 헤헤헤.”
안대표는 배팀장의 질문에 역시나 AI엔지니어다운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고민의 역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앞자리의 배팀장은 알타리 무 하나를 집어 들고 있었다.
“여기 나오는 밑반찬 훌륭하죠. 허허. 계속 식사하시면서 들으시죠. 회사를 만들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생각나무의 사업은 무엇을 기반으로 할까? 지금까지 상당한 수입을 가져다주었던 수면과 명상프로그램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지금은 현대산업사회의 다양한 병리현상과 개인의 소외를 해결해 줄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한 시대라는 점에서 영감을 얻었다. 읽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세인 세상에서 읽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세상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단태에게는 오픈형 AI인 생각의 원천이 있지 않았던가!
생각의 원천... 심리학자이자 컴퓨터공학자이면서 프로그래머인 괴짜 천재 안단태의 손에서 역사적인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단태는 일찌감치 인간이 컴퓨터와 대화하는 시대가 올 거라 예상했다. 인간의 기억능력과 연산능력은 컴퓨터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보잘것없다. 결국 고도화된 정보시스템이 인간의 이런 욕구와 능력을 대체할 것이다. 단태는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챗GPT로 대표되는 대화형 인공지능이 일반화될 거라는 예측을 했다. 당시에 그런 전망을 믿지 않는 전문가들도 많았다. 자신은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난 학습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심의 시작이었다. 한발 먼저가 아니라 두세 발 먼저 앞서야 한다는 것이 단태의 생각이었다. 후발 주자들이 쫓아올 수 없을 만큼 기술격차를 벌려야 차별화된 시스템으로 인정받는 게 이 업계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원천과 생각의 씨앗을 심는다는 생각은 거의 이십여 년 넘게 단태의 머릿속에서 자라났다. 생각의 씨앗에 대한 메커니즘은 이렇게 시작됐다. 컴퓨터 바이러스에서 힌트를 얻어 머릿속 인식의 회로에 무엇인가를 집어넣을 수 없을까. 향기나 음파를 통해서 지각능력의 변화시키는 메커니즘이 가능할까. 특정한 파동에 필요한 정보를 집어넣고 이 음파를 일정시간 접하게 되면 머릿속 뇌파에 유형의 전환을 가져온다는 발상이었다. 이러한 방법은 최면요법이나 심리학적 연구방법론에서 일부 사용하기는 하지만 제한적이었다.
특허권의 제목은 “대뇌피질에 보내는 전기자극의 심상화(imaging)에 대한 신경학적 연구 특허”다. 단태는 필요한 정보나 신호를 음파나 파동으로 바꾸고 다시 이를 재생했을 때 원래 목적의 결과를 가져오는 기법을 국내 및 국제 특허를 취득한 세계 유일의 저작권자이기도 하다.
심상화는 뇌의 구조나 혈류 등의 변화를 측정하는 신경 생리적 감지기법의 하나로서 그중 일정한 자극에 의한 시각적 이미지화가 핵심이다. 이러한 기술을 활용하면 원하는 정보를 자극이나 파동으로 바꿔서 다시 뇌 속에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생생한 영상이나 화면으로 재생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는 각국의 정보기관 및 연구기관에서 특별한 목적을 위한 도구로서 개발 연구 중이었지만, 세계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인정받은 경우는 단태가 처음이었다.
단태의 특허권 취득 이후 미국의 국가기관과 구글 등 여러 첨단 정보화 기업에서 이에 대한 기술이전과 특허권 매도 요청이 있었으나, 단태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자신의 독보적 기술이 미국의 산업에 이용되는 것도, 필요 이상의 거대한 부의 대가로 팔아넘기는 것도 원치 않았다. 단태 자신이 원하는 최소한의 공익적 목적의 사회적 공헌을 실천하고 싶었다. 더더욱 이러한 신기술이 정치적,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인류의 정신문화 향상이나 개인들을 다양한 고통으로부터 구제하는 데 더 기여하고 싶었다. 특히나 생각의 씨앗을 심는다는 선의가 일부 정치적 목적이나 불법적 행위에 사용되면 아주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생각의 원천에는 단태 자신이 고민하고 공부해 온 지식의 총체가 들어있었다. 스스로 지식을 축적하고 분석하는 인공지능(AI) 기능까지 탑재한 현대 컴퓨터공학의 결정체였다. 자기주도 학습이 가능한 오픈형 AI라 혹시 모를 해킹이나 외부 침입에 대비해 삼중의 보안시스템을 구축했다. 철벽 보안망은 해커출신들과 컴퓨터 공학자들이 합심해서 만들었다. 질적으로는 국가기간전산망을 뛰어넘는 철벽보안체계를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