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성파파 Sep 04. 2024

2. 생각나무 카페 - 진로고민 테라피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지라도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

- 오노레 드 발자크


    대학 캠퍼스에 벚꽃이 피고 졌다. 이제 라일락이 꽃피울 때다. 교정에는 새내기들이 갓 피어난 꽃무리마냥 몰려다녔다. 12년 이상의 고생길에서 해방감을 느껴서인지 그들의 대화는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대화의 주제는 십여 년 전이나 이십여 년 전의 새내기들과 사뭇 달랐다. 거두절미하고 취업, 취업, 취업.


   대학 3학년이 된 명주는 점심을 먹고 난 후 도서관에서 멍한 상태로 졸고 있었다. 최근의 무기력증과 식곤증이 합심해서 몰려오는 중이었다. 부르르, 부르르. 책상 위에서 격한 진동음이 들렸다. 무거워진 눈을 떠서 재빨리 폰을 집어 들었다. 카카오 톡 알림이었다. 얼마 전 구입한 최신형 스마트폰을 양쪽으로 펼쳐서 바라보니...     


   생각나무 카페 예약신청 당첨! 귀하의 코드는 TT 2023011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안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어! 어라... 도서관이라 크게 소리 지르지는 못하고 속으로 ‘야호’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졸음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명주는 치열한 경쟁률 때문에 솔직히 큰 기대를 안 하고 있었다. 신청자가 너무 많아 생각나무 측에서 신청사유를 보고 선정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민주는 며칠 전 제법 간절한 사연과 함께 체험신청을 했다. 설레는 손길로 다급하게 카톡 화면에서 안내를 클릭했다.   

  

   민명주 고객님 축하드립니다. 고객님은 저희 생각나무 카페 체험 대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상세 예약을 위해 저희 회사 홈페이지의 예약 프로그램에서 부여받은 코드를 입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약일자와 체험프로그램을 입력하시면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 다시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 핫하다는 생각나무 카페 이용 관련 톡이었다. 며칠 전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호기심이 발동했다. 최근 이용했다는 다른 친구의 권유도 한몫했다. 이 카페는 생각나무라는 회사가 직영하는 곳이었다. 당분간은 무료로 시범적으로 운영한다고 했다. 이 카페는 차나 음료를 파는 카페테리아는 아니었다. 대신 ‘생각’이라는 특별한 제품을 판다고 했다.


   생각카페는 체험프로그램 특성상 고객이 원한다고 모두가 이용할 수 없었다. 신청자의 개인정보와 신청사유 등을 판단해서 회사에서 대상자를 선정했다. 체험이 무료라 다양한 연령대에서 신청자가 폭주했다. 신청할 때 제출하는 질문지에는 특정 뇌질환이나 발광성 알레르기 등 예민한 이들에게는 이용할 수 없음을 밝히고 있었다. 또한 특이체질인 경우 전혀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주의사항도 있었다. 무슨 약물인가! 소문에 듣기에는 신청자가 많아 선정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얘기도 들려왔다.

     


   한참 전에는 사주카페와 명상카페가 유행했다가 사라졌다. 유흥가는 물론이고 대학가나 일반 주택가 인근에도 하나씩은 있었다. 불안한 일상과 알 수 없는 미래의 불안감이 수많은 청춘들을 카페로 이끌었다. 위안도 위로도 잠시. 풍선에 바람 빠지듯이 대부분 사라지고. 일부 명리학이나 전문성을 확보한 곳만 남았다. 사실 이런 유형의 카페는 재미로 한 번씩 가볼 뿐이고 계속적인 유인은 없었다. 결국 일부 남아있는 곳은 타로카페나 사주팔자를 봐주는 업소 정도였다.  


   재수 끝에 정시로 대학에 들어온 명주는 절친이 된 민선이나 다혜와 대학생활에 관한 대화를 많이 했다. 부모님이 말하는 대학생활의 낭만은 찾아보기 힘든 캠퍼스환경이었다. 우선 학과내의 자잘한 소모임이 거의 없었다. 새내기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아리도 활발치 않았고, 대부분 중앙도서관이나 강의실 주변에서만 동급생들을 볼 수 있었다. 나름 고민했던 생각들을 들어줄 선배들과의 만남도 제한적이었다. 모두가 취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물소 떼 같았다. 학교 주변의 상가들도 소소한 식사거리를 제공하는 분식점은 사라지고 분위기 좋은 카페나 브런치 위주의 식사를 제공하는 스타일로 변해있었다. 부모로부터 들었던 목로주점이나 막걸리 집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초중고 12년 동안을 대학 입시에 시달린 이들에게 ‘자신만의 생각 키우기’라는 이슈는 신박한 문제였다. 대학입시를 위해 순수문학이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지지 못했던 까닭에 이들에게 “생각”이란 30여 년 전 대학생들이 관심을 가졌던 ‘유물론’보다 훨씬 파격적이었다. 때문에 대학생이 된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각 갖기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보다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최근 들어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가지라고 말하지 않는 세대가 등장했다. 이들의 십 대는 수많은 학원에서 반복되는 학습과 성적표에 의해 평가되었다. 대입 수능과 관련이 없으면 애당초 관심의 대상에 두지 않았다. 어쩌다 자기만의 주장과 의견을 가진 이들은 “이단아 혹은 예비 루저”라 폄하되었다. 교육부가 만들고 사교육 시장이 키운 아이들은 오로지 IN 서울 대학과 취업 가능한 전공을 위해 맹렬하게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좌우를 돌아보거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사치였다. 부모들도 선생님들도 자신들도 원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대입수능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환경은 철저히 배격되었다. 사회적 관심이나 배려와 연대라는 단어는 이들의 사전에 없었다.


   그뿐인가. 험난한 대학생활을 취업준비로 끝낸 새내기 직장인들은 조직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도구들을 최대한 빨리 습득하도록 재교육되었다. 그 교육과정은 일체의 사회적 관심을 조직화라는 이유로 배제하고 인공지능에 의해 설계된 업무프로그램을 익혀야 했다. 기업을 위한 산업의 역군 프로그램은 계속되고 있었다.


   언론에서는 연일 저출산 문제와 빠른 고령화 문제를 보도했다. 더하여 국민 1인당 독서량이 5권도 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그나마도 일부 다독하는 성인들이 있어서 5권을 턱걸이로 유지하고 있었다. 순수하게 10대와 20대의 독서량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한국사회 특유의 먹고사는 문제에 빠져 살다 보니 서로가 서로의 문제를 몰랐다. 이들이 얻는 대부분의 지식은 유튜버들이 갈무리해서 제공했고, 포털의 웹툰이나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책자들 아니면 팔리지도 않았다. 덕분에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관련 책자를 만들어내는 출판사들은 연쇄도산을 피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얇은 자기계발서나 말랑말랑한 에세이 위주의 출판으로 변신해야만 했다. 읽지도 팔리지도 않은 책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최근의 베스트셀러 순위는 “한 페이지로 끝내는 인문학”과 “생각 없는 세상 속에서 감정 달래기”가 1, 2위를 차지했다. 나머지 순위들도 정신상담 경험이나 위로와 위안을 파는 책들과 부자 되기 위한 방법론이 우열을 다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SNS 매체에 “당신의 생각을 만들어드립니다. 당신만의 생각을 키우세요!”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뜬금없이 ‘선영아 사랑해’ 같은 홍보문구처럼 사람들의 귓가에 맴돌았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그 캐치프레이즈가 통했던지. 각종 SNS에서는 이곳에 가본 사람들이 얻은 경험이 의미 있고 특별했다는 자랑이 떠돌았다. 자신의 의식과 행동이 변화하고 있다는 믿지 못할 경험담도 있었다. 하기야 별별 거짓말과 가짜뉴스가 떠도는 세상 아니던가!    

 


   명주도 소문으로만 듣던 그 문구에 이끌렸다. 의식과 행동이 변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할까를 생각했다. 2학년이 지나고 3학년이 되어서도 대학생활에 큰 변화는 없었다. 생각 없이 무기력하게 집과 강의실, 카페와 도서관을 오가고 있었다. 커피와 햄버거, 맥주와 수다가 가끔씩 활력을 주었지만 그뿐이었다. 뭔가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저절로 바뀌는 것은 없다는 진실만 증명되었다.


   무언가 극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명주는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수다 떨던 중, 호기심 삼아 에 ‘나랑 생각나무 카페에 가볼 사람 손 들어봐.’, ‘선착순 1명.’ 호기심의 코드가 맞았던지 공기업을 준비하는 민선이 ‘내가 먼저 손’이라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두 사람은 명주가 예약신청을 하고 만약 선정이 되면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명주는 안내받은 대로 생각나무 홈페이지에서 코드를 입력하고, ‘예약 신청하기’를 눌렀더니 바로 통합 예약시스템 화면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예약시스템 첫 화면에는 “자신만의 생각 키우기. 여러분이 가진 가능성의 씨앗을 심으세요.”라는 문장이 천천히 흘러갔다. 글씨와 함께 머릿속에 클래식 음악이 들리는 듯했다. 뭐야! 환청인가? 어, 진짜... 이거는 어떤 기술이지! 명주는 신기해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화면은 직관적인 툴바 위주로 구성되어서 별다른 설명 없이도 예약을 할 수 있었다. 다양한 상품이 많아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명주는 ‘진로 고민하기’라는 테라피 상품을 선택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연애상대 선택 전략’이나 ‘인문학 교양지식 기초 쌓기’, ‘결정 장애 극복하기’ 같은 상품들이 인기였다. 상품을 선택하고 이용자와 이용일자까지 입력하고 예약하기를 누르자, 즉시 예약확정 문자가 날아왔다.


   민명주 고객님 외 1인의 예약은 2023. 4. 15. 오후 4시, 좌석은 F4. 예약상품은 ‘진로 고민하기’입니다. 예약시간 입장 시 보내드린 바코드로 확인 부탁드립니다. 생각카페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선정릉로 136 생각나무 주식회사 건물의 1층에 있습니다. 고객님의 프라이버시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필요하신 음료나 다과는 비치된 자판기나 모니터를 통해서 무료 이용 가능합니다. 첫 번째 이용에 감사드립니다. 자세한 이용안내는 입장 시에 QR 코드와 음성안내를 통해 확인하십시오. 이용 후에 솔직한 후기를 남겨주시면 상품개발과 서비스에 반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명주 세대는 어릴 때부터 IT기술을 많이 접하고 자유롭게 사용하는 까닭에 Z세대라 불렸지만 세상살이는 더 불편해졌다. 명주 또한 답답한 고등학교를 벗어나 대학생이 된 지 3년이 되었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늘 진로고민에 목이 말랐다.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서로가 비슷한 처지라 어느 누구도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상황이었다. 지지부진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일깨울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다.


   도서관 휴게실에는 커피를 마시거나 수다를 떠는 학생들이 많았다. 명주는 자판기에서 캔 커피 하나를 뽑아 의자에 앉았다. 예약확정 문자를 받은 명주의 가슴은 콩콩 뛰었다. 근래 경험하지 못했던 기분 좋은 설렘이었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설렘. 그 기대감 속에서 아까 화면에서 봤던 ‘자신만의 생각 키우기’라는 글씨가 다시 흘러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다가 깜짝 놀라 눈을 비볐다. 아니, 지금 이게 환상이 아니고 실제 머릿속에서 이런 문장이 흘러 다니네! 이 클래식 음악의 제목은... 헐.   



   드디어 고대하던 4. 15. 조선시대의 왕릉인 선정릉 옆생각나무 주식회사 빌딩. 단정하지만 스마트해 보이는 건물, 1층 로비 우측에 생각카페가 있었다. 로비 중앙의 회사 출입구는 무슨 정보기관처럼 검색대와 스피드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정복을 입은 보안요원들이 출입자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안내받은 대로 명주가 카페출입구에 QR코드를 찍자 우주선의 출입문처럼 생긴 문이 열렸다. 첫인상은 최신 PC게임방이었다. 아니 우주공간 속의 우주선이었다. 안쪽 어디선가 SF영화의 외계인들이 나올 것 같았다. 민선이 가만히 서있는 명주의 등을 떠밀었다. F4라 그랬지... 명주와 민선은 예약된 좌석에 앉아 주위를 돌아봤다. 적당한 밝기의 간접조명과 몽환적 분위기의 실내 인테리어. 비행기의 퍼스트클래스 같은 공간. 안락한 의자와 대형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명주와 민선은 자신의 모니터에서 달달한 망고스무디를 주문하고, 자신의 스마트폰의 예약확정 QR코드를 인식하게 했다. 핸드폰에서 <생각나무>라는 앱이 다운로드되어 저절로 실행되기 시작했다. 연한 녹색과 파란색이 절묘하게 섞인 색상의 나무 모양의 앱이었다. 두 번의 개인정보 입력과 승인절차 이후에 ‘비치된 헤드폰을 착용하라’는 문구가 모니터에 떠올랐다. 어라, 디게 신기한데!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며 헤드폰을 머리에 끼우고 주위를 둘러봤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좌석이 만석이었다. 예약제로 운영되다 보니 돌아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고는 명주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익숙한 클래식 음악이 잠시 흐르더니 귀뚜라미 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마치 수면음악을 틀어놓은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전혀 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음에 집중할수록 의식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눈을 떠보니 화면에는 ‘다음 안내가 있을 때까지 헤드폰을 분리하지 마라’는 문구가 떠있었다. 명주의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차가운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점차 그 소리마저 아득해지며 무의식이 무언가를 향해 흘러갔다. 아! 저기가 어딜까? 잠시 소용돌이 같은 격정이 있었지만, 다시 잔잔한 강물로 변했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무슨 영상 같은 게 흘렀다. 문장과 글자가 보이는 듯했다. 손에 잡힐 듯했지만 그대로 지나갔다. 이게 꿈일까 환상일까! 15분은 노래 몇 곡을 들을 정도의 시간이었다.


   헤드폰을 내려놓으라는 안내가 있을 때, 명주는 오랜 꿈에서 깨어난 듯했다. 머릿속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무엇을 보고 들은 거 같은데 분명치 않았다. 하지만 심연을 가리고 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힌다는 느낌이 강했다. 멀리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이 차츰차츰 커지고 있었다. 생각을 떠올려보니 어떤 메시지가 자신의 머릿속에 도착하고 있었다.


   눈을 다시 떴을 때 서빙로봇이 음료를 그들의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중이었다. 서빙로봇은 녹색 나무 모양으로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최신형 로봇이었다. 고개를 움직이고 팔도 자유롭게 움직였다. 최근 식당이나 카페에서 보던 서빙로봇보다 훨씬 더 발달된 버전으로 보였다.


   명주는 망고 스무디가 평소에 비해 더 차갑게 느껴졌다. 이게 무슨 영문이지. 얼음 창고에서 바로 나와서 그런가. 민선도 스무디를 한 모금 빨고는 신기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 왜 그러지! 이삼십 분 전과 달리 신경이 훨씬 더 예민해져 있었다. 감각세포가 깨어나서 그런가. 둘은 마주 보며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웃었다. 한 좌석에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허용되었다. 바로 옆 좌석에서 누군가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참 신기하지 않아!


   체험이 끝나고 난 뒤에는 1층 좌측의 고객 서비스룸에서 생각나무 주식회사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었다. 홍보 담당 직원은 이 빌딩은 작지만 국가기간전산망 서버보다 더 큰 컴퓨팅 능력을 갖춘 최첨단 인텔리젼스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명주와 민선은 이 작은 회사에서 그런 용량의 정보처리능력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해킹은 물론 지진이나 정전에도 끄떡없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또한 생각나무에서 만들어낸 모든 제품들은 생각의 원천이라는 최신 AI가 만들어낸다고 했다. 명주는 민선에게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헐, AI가 이걸 만들었다고, 어떻게 무슨 일을 하길래! 생각나무로부터 간단한 방문선물까지 받고는 두 사람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햇빛 속으로 나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푸르른 하늘이 그들을 반겼다. 눈을 뜨기 힘들었다.

 


   명주가 잠시 뒤돌아 생각나무 건물을 바라보니 최첨단 인텔리젼스 빌딩의 위용이 돋보였다. 처음 봤을 때보다 소개를 받고 보니 그 건물이 다시 보였다. 선정릉 앞쪽에 있는 조용한 카페에서 두 사람은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했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잠깐 동안의 두뇌 활동에 에너지 소비가 많았기 때문이다.


   “민선아, 이게 무슨 느낌이지. 이상하게 차분해지고 감각이 뚜렷해지는... 너는 어때?”


   “그러게, 나도 아까 전에 스무디 마실 때 이가 시릴 정도라 깜짝 놀랐거든. 아직 이가 시릴 나이도 아닌데... 하하하. 뭐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명상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멍하지만... 집중력은 엄청 높아지는 그런 순간 같기는 한데... 잘 모르겠네.”


   “나는 아까 체험하는 게 무슨 명상프로그램인가 했더니... 어떤 이미지들이 흘러가면서 머릿속에 어떤 사진 같은 것이 형상화되는 느낌이었어. 마치 오래된 기억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말이야! 기분 좋게 떠오르는 잔잔한 동영상 화면이었어. 그 속에 내가 들어선 느낌이...”


   “어, 너도 그랬어. 나두, 이게 뭐지 뭘까 하면서 계속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깜짝 놀랐거든. 아주 밝은 이미지의 동영상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는 느낌이었어. 마치 내 밝은 미래를 보는 느낌이랄까. 굉장히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느낌. 참 신통하네. 근데, 이게 과학적으로 설명이 될까?”


   두 사람은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조금 전의 신기한 체험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서로 잠시 눈을 맞추더니 핸드폰에서 다시 <생각나무> 앱을 활성화시켰다. 최소 이주일 정도를 하루 15분씩 안내에 따르라는 멘트가 나왔다. 가만히 앱을 살펴보니 이용자 편의를 위해 필요한 기능 몇 개로 단순하게 구성되었다. 주된 기능한 상품 선택하기와 실행버튼, 타이머와 추가 예약정보에 관한 기능이었다. 민선이 샌드위치 한 조각을 베어 먹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하루에 15분 정도씩 명상 같은 거를 이 주일 정도만 하면은 우리가 진로고민이란 걸 할 수 있다는 거지. 참 믿기 어려운 설정이네... 혹시 그냥 물소리나 바람소리 틀어놓고 돈 받는 거짓말은 아니겠지? 인터넷에 보면 그런 사람들도 많잖아.”


   “하하하... 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고. 이용후기를 봐도 자기가 생각하는 로뎅 아닌 사람이 되었다나 어쨌다나... 그런 걸 보면 사기성이 있지는 않은 것 같아. 그리도 또 오늘 처음이지만... 나는 느낌이 좋아. 머릿속으로 무언가 맑게 흘러가는 그 느낌말이야!”


   “그렇긴 하지. 뭔가 떠오를 듯 말 듯하는 느낌이었지. 내일부터 더 해보면 뭔지 알게 되겠지. 호호. 그나저나 명주 너는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고 그랬지.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음..... 그렇지... 나는 지금까지 그쪽으로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 집에서 엄마 아빠는 대학생이 돼서도 생각이 없냐고 뭐라 하시지만. 어떡해. 내가 하고 싶은 게 없는 걸.... 히히히.”


   민선은 그런 명주가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샌드위치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아보카도가 씹혀서 그런지 맛이 좋았다. 이 집 커피는 4개 대륙 커피를 블렌딩 한 거라 그런지 산미와 바디가 잘 잡힌 훌륭한 맛이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부지런히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여러 번 먹어본 맛이지만 오늘은 더 특별했다. 기분 탓인가.


   옆자리에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여성 세 사람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샌드위치와 샐러드와 음료를 나눠 먹고 마시며 하하 호호. 혹시나 대학 신입생들이 아닐까? 세상살이에 걱정 없는 얼굴처럼 보였다. 그중 한 명이 친구들에게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 우리 엄마는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공무원 시험 준비하래. 이게 말이 되니. 고등학교 때 맨날 학원에 인강에 시달리다 겨우겨우 대학에 들어왔는데. 다시 시험공부에 목을 매라니. 그것도 한 번도 관심 가진 적 없는 공무원. 진짜 웃기셔!”


   “그러게, 우리 아빠랑 삼촌도 나만 보면 그 얘기하더라. 먹고사는 게 안정되어야 사는 게 편안하다고 하면서. 사실 직업도 우리 소질이나 적성을 생각하고 선택해야 되는데. 무조건 뭐를 해라, 뭐가 좋다, 그러니 답답하기도 하고... 근데 요새 대학은 우리가 들었던 그런 대학생활이 아닌 거 같아? 선배들도 그렇고. 다들 토익공부나 자격증, 고시나 공무원 시험공부 하느라 정신없는 거 보면. 얘들아, 우리가 꿈꿔왔던 상아탑의 낭만은 도대체 어디 간 거니? 하하하.”


   “말을 말아라. 우리 집은 더 난리 부르스다. 중학교 3학년인 남동생 하나 있잖아. 걔가 공부를 제법 잘하긴 하는데... 엄마는 의대 보낸다고 벌써부터 대치동 과외선생님 알아보고 난리도 아니다! 우리 집안에도 의사 한 명은 나와야 된다나. 그게 웃긴 거는 동생은 웹툰 작가가 꿈인 거 있지. 글도 잘 써서 내가 보기에도 그쪽으로 능력 개발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호호호. 무슨 덤 앤 더머 가족영화 속 한 장면 같아! 아담스 패밀린가!”


   옆자리 얘기를 들으며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웃었다. 우리도 그랬지만, 저 친구들도 더 딱하네.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수업도 못 받고 맨날 비대면 수업에... 그런 투의 웃음이었다. 그러니 불만이 나올 수밖에.


   민선은 처음부터 공기업을 선호했고, 착실하게 이모저모 준비를 잘하고 있었다. 명주는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공부하는 민선이 부럽기도 했다. 사실 민선이도 2학년 초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가, 작년 가을부턴가 마음을 먹은 터였다.


   “우리도 그랬잖아. 고등학생 때는 막연히 대학생이 되면 그럴듯한 생각도 하고 제대로 된 학문에 대한 열정도 마구마구  생기고 그럴 것 같았는데. 막상 대학생이 되고 보니 마치 사막의 신기루를 본 것 같은 착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잖아.”


   “오! 신기루 좋은 표현이네. 맞아 멀리서 보면 오아시스가 보이고 그 속에는 맑은 샘물이 흐르는 작은 마을과 휴식이 있을 거 같은 환상. 딱 그거네. 그런데 막상 그곳에 도착해 보면 아무것도 없고, 모래알 같은 잔소리와 진흙탕 같은 현실만 존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너무 삭막한 거 아닌가?”


   “그러니까 엄마 아빠랑 얘기하다 보면... 그분들 대학생 때는 별세상이었던 것처럼 보이던데. 책도 많이 읽고, 세상에 대한 고민도 나라와 역사에 대한 걱정도 많이 하면서 대학생 시절은 보냈다고 말씀들 하시잖아. 그래서 우리들 보면 도통 생각 없는 세대라고 뭐라고 하면서 말이야.”


   “근데 생각해 보면, 한 삼십 년 전에는 우리나라가 한창 경제 성장기라 취업도 잘되고 그럴 때라서 그랬을 거야. 내가 최근에 읽은 책에 보면 1980~1990년대를 그렇게 평가하는 시각이 많더라고. 사회적으로도 여러 번 정권이 바뀌면서 민주화된 것도 있고. 우리 부모세대들은 혜택도 받았지만, 우리 사회 변혁의 주체세대이기도 해.”


   명주는 민선의 어른스러운 얘기를 들으며 눈과 귀가 쫑긋해졌다. 아니 언제부터 이 친구가 이렇게 세상살이에 분석적인 인물이 되었데? 나랑 같이 수업받고 시시덕거리며 놀고 그런 거 같은데... 허 참. 이상하네.


   “야! 우리 민선이 말하는 걸 보니 대학 졸업해도 되겠네. 우리 엄마한테 열라 환영받는 철든 캐릭터인데... 이거 완전히 엄친딸인데.... 하하하”


   “하핫, 엄친딸... 별거 아니지만, 독서모임에서 추천하는 책을 계속 읽고 대화하고 그랬잖아.  벌써 일 년 정도 되었나. 혼자서는 감당 안 될 것 같은 주제의 책들도 같이 보고 얘기하니까 이해도 빠르고 공감도 쉽게 되는 거 같아서 좋더라고. 한 권을 읽다 보면 다시 비슷한 주제의 책 여러 권을 읽게 돼서 지식이나 교양이 깊어지는 느낌도 있고.”


   명주는 민선이 자신이 읽은 여러 책에 대해서 쫑알거리며 얘기하는 걸 들었다. 마음속으로는... 한 권의 책이 인생을 확 바꿔주지는 않겠지만, 한 사람의 사고능력을 변화시킬 수는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또렷해진 민선의 눈동자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친구의 변화에 꽤나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민선이 똘똘한 한마디를 보탰다.


   “오늘 생각카페는 상당히 신선한 경험이야. 전혀 예상치 못한 생각 전달 방식이잖아. 어쩌면 우리에게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끄는 전도자 역할을 할 거 같다는 생각도 들어. 생각하는 것  자체는 개인의 몫이지만, 개인들은 대부분 한없이 게으르고 소극적인 존재잖아. 무언가 옳고 바람직한 일에 대해서도 생각도 주장도 없는 세상이 지금 우리나라 같기도 하고. 특히 정치적으로는 말이야. 아무튼 내 자신의 생각이 똑바로 서야 선동당하지도 휘둘리지도 않는 대학생이 되는 거는 분명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프랑스 대문호인 발자크의 말대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하는 거지.”


   민선은 최근에 흘러가는 정치기류나 언론보도에 꽤나 비판적이었다. 공기업 취업준비를 하면서도 은근히 언론고시나 기자들의 역할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주위의 다른 친구들은 세상의 돌아가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들이 먹고 살아가는 문제에만 관심을 쏟았다. 크게 불편하지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어서 더 그랬다. 세상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민선처럼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대학생이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친구도 소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도 사회적인 역할에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명주는 민선의 긍정적인 변화에 고무되었다. 선배들을 보더라도 자기 생각이나 철학 없이 대충 취업공부하다 졸업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이런 세태를 현재 세대만의 책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은 기성세대의 책임도 절반은 있다. 부모 세대들과 그 위 세대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에만 집착하다 보면 정작 보아야 할 것은 못 보고 만다. 국가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운영되어야 하는지, 세대 간의 교류와 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 모른 척하다 보면 누군가의 말처럼 개돼지의 삶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얼마가 비루한가. 고상한 삶까지는 아니어도 비겁하거나 회피하는 삶은 아니어야 되지 않은가. 명주의 머릿속에 복잡한 무언가가 오가며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아! 발자크.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요 한 권의 책이라 했던...


   퇴근시간대의 지하철 2호선.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 사이에서 명주는 늦둥이자 중2인 동생 지형을 떠올렸다. 가뜩이나 중2병 환자라 자처하고 온갖 사고뭉치로 전락한 동생인지라 부모에게 골칫거리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에 학원을 전전하고 선행을 거듭한 결과 학교에서는 배울 게 없다고 늘 투덜거렸다. 수업태도가 불량하고 툭하면 친구들과 다퉈서 선생님으로부터 요주의 대상이었다.


   다시 앱을 열어 차분하게 구성과 내용을 들여다봤다. 생각나무 앱을 만든 회사는 ‘생각나무’라는 주식회사였다. 터치형 폰에 적합하게 한눈에 들어오는 화면이 간결했다. 검색란에 ‘중2병’이라고 쳤더니... 신기하게도 ‘중2 질풍노도 잠재우기’라는 상품이 검색되었다. 아니! 이런 상품이 있다니. 하하하. 집에 가서 엄마한테 말해봐야지... 사용설명서 부분을 다시 읽어봤다. 다행인 것은 카페처럼 전용헤드폰이 아닌 흔히 사용하는 이어폰으로도 얼마든지 이용가능하다는 거였다. 아싸! 치킨 두 마리 값이면 살 수 있겠네. 이번 기회에 철부지 동생을 정상궤도로 돌려놔볼까. 명주는 어른스러운 동생 모습을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한참 온라인 서점에서 읽을 만한 책 검색을 하고 있을 무렵. 가족들이 함께하는 단톡이 부르르 울렸다. 아빠는 친구들과 저녁약속이 있어 늦는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면 저녁은 엄마랑 둘이 먹어야 하나. 최근 들어 아빠도 부쩍 표정이 좋지 않았다. 회사에서 승진 관련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엄마에게 불편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엄마 아빠는 비슷한 연령대라서 이제 갱년기에 접어들 나인데 집안에 걱정거리가 하나씩 늘고 있었다. 갱년기와 중2병이라...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하는 우스운 생각이 스쳐갔다.


   지하철 속을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나 웹툰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고 있었다. 책 비슷한 것을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갑자기 명주의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후덥지근한 객실이었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뭔지 모를 서늘한 감정이 솟아났다. 정차역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마음속으로 다시 뭔가가 흘러지나 갔다. 이게 뭘까?


   “다음 정차 역은 잠실입니다. 내리실 분은...”     

이전 01화 1. 프롤로그-생각을 팝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