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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Sep 09. 2024

4. 생각나무 주식회사(2)

   여기까지 얘기하자 저녁 식사가 끝났다. 모두들 안대표의 얘기에 취해 더 조용하고 편안한 자리를 원했다. 최지민 팀장은 자신이 아는 아늑한 칵테일 바가 있다며 그쪽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상호는 <시간을 찾아서>. 프루스트 팬으로 소문난 30년 경력의 노년의 바텐더가 운영하는 바였다.

  

   이면도로 안쪽의 2층 건물에 있는 바였지만 조명과 테이블, 여러 소품과 칵테일 관련 기구들이 멋진 그림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안쪽의 단체석 테이블에 자리에 앉아 각자 선호하는 칵테일을 주문했다. 배즙에 보드카 베이스로 맛을 낸 칵테일을 응시하던 최지민 팀장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여기 분위기 괜찮죠. 저쪽 바텐더님이 이 업계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분이에요. 이분한테 칵테일을 배워서 카페를 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고 해요. 우리가 생각나무에 모인 것은 뭔가 대단한 인연이 있긴 한가 봐요. 한분 한분 보시면 다들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분들이라 어디에서도 빛날 분들인데도...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잖아요. 호호호. 저만 빼고요... 쉽지 않은 전문가들의 초대였을 텐데... 안대표님은 어떤 인맥과 능력으로 이분들을 이 자리에 모셨는지....”


   “하하하. 그 과정은 최팀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제가 생긴 거와는 달리 사람 보는 눈은 까다로운 거. 그렇다고 처음부터 대규모 공채로 누구를 뽑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업무가 업무이니만큼 한 사람의 전문가가 처리하는 영역이 다른 업체들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주위의 잘 아는 전문가들로부터 추천도 받고 저도 여기저기 귀동냥을 많이 했죠.”


   생긴 거와는 달리.라는 표현에서 여러 사람이 피식하며 웃었다. 누군가의 손에 쥔 칵테일 잔이 흘러넘치기도 했다. 박수까지 치고 있는 고민정 팀장은 까르르까르르 하며 웃었다.


   회사의 규모가 작을 때에는 최지민 팀장과 지원팀 몇 명이서 모든 걸 처리했으나, 이제는 상품기획부터 개발, 마케팅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단태의 회사는 기존의 대박 성공으로 회사 설립에 충분한 자산이 축적되어 있어서 결국 유능한 인재가 관건이었다.


   안대표는 작은 회사에도 전문성을 위해서는 5개 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획팀과 개발팀, 마케팅팀과 행정지원팀, 별도로 법무팀까지. 각 팀장과 팀원으로 구성하되 특별한 직급은 두지 않았다. 서로 간의 호칭도 자유롭게 부를 수 있게 했다. 자신의 일에 맞는 직급을 스스로 정하게 했고, 이를 회사에서 디지털 명함에 반영시켜 주었다.


   회사의 생각카페 외에 별도의 오프라인 매장이나 상품이 없다 보니 일반 공산품 같은 유통 관련 부서가 필요 없었다. 기획팀과 개발팀에는 인공지능과 AI엔지니어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인공지능과 컴퓨터 공학,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하고 심리분야와 문학, 음악 분야에 소질이 있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그 초기 멤버들이 컴퓨터 공학도였던 한상훈 개발팀장, 컴퓨터공학자이자 기술고시 수석 합격자인 김도윤 기획팀장, 광고회사에 이름을 날린 민수경 마케팅 팀장이었다. 굴지의 로펌 변호사였던 고민정은 법무팀장으로 가장 늦게 합류했다. 최지민은 당연히 행정지원팀장으로 회사설립부터 인재채용 등 모든 업무를 총괄했다. 안대표는 각 팀장들을 선발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들의 역량이 생각나무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에 최고의 조건을 제시했다.


   생각나무의 채용은 각 팀장들이 자신의 팀원을 선발하는 독특한 시스템이다. 각종 필기시험이나 토익 등 형식적인 전형 없이 실제 능력을 보고 팀원을 선발하도록 했다. 업무 경력이 없더라도 가능성을 최대한 살펴보고 학벌 학과에 관계없이 뽑도록 했다.


   최초의 멤버였다가 지금은 아닌, 한상훈 개발팀장은 안대표의 동생인 니채의 카이스트 동창으로 전형적인 강남키즈였다. 상훈은 과학고와 카이스트를 나온 수재였다. 한편 어린 시절부터 이름을 날리던 악동 해커이기도 했다. 가족들이 법조계에 많아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도 아무런 처벌 없이 커왔다. 안대표는 한팀장에게 생각의 원천을 위한 보안망의 설계를 맡겼다. 동생의 친구이기도 했고, 그의 이력은 충분히 신뢰할 만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뚫을 수 없다는 생각의 원천 보안망은 여러 전·현직 해커들의 도움을 받아 한팀장 팀에서 설계되고 만들어졌다. 안대표는 처음 면접 때 한팀장에게 던진 질문에 대해서 얘기했다.


   “제가 처음에 AI시스템 보안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뭐냐고 물었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가 어떤 대답을 했을까요? 완벽한 이중 삼중 보안설계라고 말하더군요. 완벽한... 제가 다시 물었죠. 그렇다면 당신이 해커라면 그 완벽한 보안시스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다시 그 친구가 명쾌하게 얘기했었죠. 자기 생각에 뚫지 못할 보안시스템은 없다...라고 했죠. 전형적인 자기모순적 발언이지만, 특별한 자신감이 없으면 말할 수 없는 발언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그렇다면 자신이 만들고 자신이 뚫을 수 없게도 만들 수 있지 않느냐고요. 그러니까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밝게 웃더라고요. 그래서 동생의 추천도 있고 해서 제가 오케이 사인을 했죠. 일단 만들어 봐라. 생각해 보면 완벽한 시스템도 완벽한 해커도 없는 게 진실이잖아요. 영화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완벽성이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어찌 되었든 그 친구는 보안망을 만들고 우리 회사에서 나갔죠. 제 발로요.... 허허허.”


   멍 때리기 대회 우승자인 김도윤 기획팀장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출신이면서 기술고시 최연소이자 수석 합격자이다. 누군가 말을 걸지 않으면 하루 종일 침묵 속에서 살았다. 함께 사무실에 있어도 존재 여부를 모를 정도로 일과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산다. 그렇다고 일만 아는 워커홀릭이 아니라 단지 말수가 적었다. 학부 시절에 학교캠퍼스 커플로 이름을 날려 학생시절에 결혼한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다. 안대표와 마찬가지로 동서양의 고전에 능하며 예술적인 재능도 뛰어나 서예로 국선 입상의 경력도 있다. 명상을 즐겨하고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아이디어 뱅크다. 안대표는 면접 때 김팀장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김도윤 팀장에게는 처음에 왜 멍 때리는 거를 중시하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한참을 멍하게 바라보더라고요. 그런데 그 눈빛이 누군가를 우습게 보거나 비웃거나 하는 그런 게 아니었어요. 아주 깊은 눈동자에서 나오는... 평범하지 않은 그런 멍~한 표정이었어요. 하하하.”


   뭔가 다른 표현을 기대했던 이들은 안대표의 갑작스러운 유머에 다들 깔깔대며 웃었다. 김팀장도 자신의 배를 부여잡으며 폭소했다. 분위기 좋은 무드음악이 채우던 공간에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저쪽 건너편에 앉아있는 남녀 손님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두 사람은 썸을 타는 사이인 건지 서로 말이 없었다.


    민수경 마케팅 팀장은 국내 굴지의 광고회사에서 제일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로 제작팀장 출신이다.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는 소비자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권의 에세이를 펴낸 작가이기도 했다. 생각나무의 광고 문구와 홍보 전략은 민팀장의 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광고와 마케팅을 고민하던 안대표는 체계적인 전략을 만들 수 있는 능력자를 원했다. 역시나 우연히 광고 카피와 책 속에서 적임자를 찾았다. 알고 보면 마케팅은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때마침 회사생활에 지쳐 쉬고 싶은 민팀장의 생애전환 시기와도 들어맞았다. 안대표의 연락을 통해 두 사람은 명동성당 앞카페에서 만나 첫 대화를 했다. 도회적 분위기의 당찬 인상의 민수경 팀장은 자신의 주장이 분명했다.


   “첫 번째 만남에서 민팀장님은 자신은 광고업계에서 떠나고 싶다고 그랬거든요. 너무 지쳤다고. 무한경쟁과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삶이 이제는 재미없다고. 조용한 북카페를 하나 차려서 쉬면서 놀면서 일하고 싶다고요... 그래가 제가 말했죠. 저희 회사에서 오셔서 쉬시라고요. 우리 회사에 카페를 근사하게 차릴 건데. 협조도 해주시고 이제는 광고카피를 위한 을의 입장이 아니라 그 마케팅을 위한 갑의 입장이 돼보시라고.... 그랬더니. 한 이삼일 정도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그러셨죠. 저도 오케이 했구요.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 무렵에 전화가 왔죠. 함께 하시겠다고... 허허허.”


   안대표의 말이 끝나자 민수경 팀장은 다른 팀장들을 둘러보며 똑 부러지게 말했다.


   “하하하. 그랬었죠. 저는 그때 대표님 말씀대로 많이 지쳐있었거든요. 일을 그만두기보다는 뭔가 새로운 활력소가 필요했던 거 같아요. 시간에 쫓기고 경쟁에 피 말리는 광고업계 일에 영혼까지 털리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제가 쓴 책에도 저의 그런 심정을 담아두었죠. 돈이 아니라 열정과 시간을 줄 수 있는 그런 일이 필요했던 거죠. 대표님이 책에서 그런 내용을 보셨나 봐요. 대표님하고 만나고 돌아가면서 안대표님 관련해서 이것저것 검색해 보면서 문득 깨달음이 생겼죠. 이 회사라면 새로운 분야의 열정이 솟아날 수 있겠다고요. 그래서 바로 전화를 드렸죠. 생각해 보면, 자신에게 진짜 맞는 일은 피곤은 해도 지치지는 않는 거 같아요.... 비어 가는 느낌보다는 채워가는 부분도 많이 있으니깐요.”


    고민정 법무팀장은 국내의 첫 손꼽히는 로펌의 변호사 출신이다. 직장을 다니다 뒤늦게 들어간 대학생활에서 로스쿨 변호사로 꿈을 키웠다. 문학소녀로서 시집을 펴낸 시인이기도 하다. 로펌에서는 논리에 밝은 싸움닭으로 유명해져 최연소 파트너 변호사가 되었으나, 틀에 박힌 법률시장에 회의를 느끼고 생각나무에 법무팀장으로 합류했다. 팀장급은 주로 스카우트나 특별채용절차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법무팀장만큼은 공채출신이다.


   생각나무 주식회사 초창기에는 법률적으로 대응할 사안이나 업무가 별로 없었지만, 회사의 규모가 성장할수록 법률적 사항을 검토하고 대응할 별도의 조직이 필요했다. 때문에 다른 팀 팀원의 공채 공고 시에 법무팀장 선발을 끼워 넣었다. 이때 변호사 경력은 물론 인문학적 지식까지 평가한다는 공고를 했다. 파격적인 대우와 조건 때문에 여러 로펌에서 변호사들이 수십 여 명이 지원했지만, 결국 고민정 변호사만 살아남았다. 법률이라는 좁은 지식에 국한되지 않는 넓은 인문학적 지식과 문학적 감성이 안대표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뛰어난 감수성과 현실감각 때문에 기획팀에서도 별도의 보직을 받고 있다. 안대표가 서류전형을 통과한 7명의 변호사들에게 면접 때 공통적으로 물었던 질문이 있다.


   “우리 생각나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신가요? 변호사님.”


   다른 6명의 변호사들은 하나같이 계약서 검토나 법률분쟁 해결 같은 전형적인 사내 법무팀의 업무를 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고민정 변호사는 전혀 다른 대답을 했다.


   “저는 생각을 만들어 파는 것에 대한 저만의 감성을 보태고 싶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떡집을 하시거든요. 떡집의 가장 핵심은 맛있고 건강에 좋은 떡을 만드는 거잖아요. 주문을 받고 불량품과 클레임을 처리하는 것은 그다음 일이거든요. 역시 생각나무 주식회사의 핵심은 생각의 본질이 가진 그 무엇을 잘 만들어 파는 것일 수밖에 없거든요. 결국 생각나무에서는 변호사도 단지 법률적 쟁점만 처리하는 능력만 가질게 아니라 생각의 그 무엇을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습니다. 그 본질적인 업무가 원활할 때 부수적으로 발생할 법무팀의 업무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로펌을 그만두고 생각나무에 지원한 이유도 그것입니다.”


   안대표는 고민정 변호사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였고, 고변호사의 긴 생머리도 동시에 출렁거렸다. 그들은 몰랐지만 또 다른 파동이 일었다. 이런 유형의 파동은 친밀도를 높여주는 호감에 관한 것으로서 주로 첫인상이 좋았네, 어디서 본 것 갔네, 기시감이 어떻네 하는 느낌으로 구성된다. 야무지고 똑 부러진 답변 때문에 천하에 기억력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안대표도 고민정이 떡집 딸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지 못했다.



   고팀장을 마지막으로 4개 팀의 팀장급 선발을 마무리 지었다.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핵심 두뇌들의 조건은 어떠했을까. 외부에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국내 대기업의 임원급에 상당하는 급여와 대우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4개 팀 30여 명 정도로 시작된 생각나무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독특한 이력을 가진 뛰어난 인재들로 인해 다양한 상품기획과 개발 아이디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솟아 나왔다. 안대표가 가진 명상과 수면 프로그램을 더 발전시켜 스포츠센터나 명상단체, 종교단체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상품도 만들어졌다. 불면을 해결하는 수면 프로그램은 고도로 체계화되어 개인과 의료기관용으로 보급되어 전 세계인의 불면해소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상품의 매출은 잘 나가는 게임개발업체의 매출액에 육박했다.


   어떤 회사나 생각나무나 큰 문제는 역시나 사람이었다. 능력이 좋은 만큼 공감능력 부족으로 화합이 잘 안 되는 이들도 있었다. 한상훈 팀장은 지능과 재능 모두 뛰어났지만 돈과 명예에 대한 욕망이 컸다. 자신의 능력만 믿고 주위 팀원들과 화합하지 못한 까닭에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결국 석연찮은 이유로 생각나무에서 자진 퇴사하고 말았다.


   새로운 개발팀장은 13살 때 미국 국방부와 한국의 국방부를 해킹한 전력이 있는 카이스트 출신의 까칠남 배지형이 들어왔다. 배지형은 일찌감치 해커를 그만두고 자신의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인공지능의 세계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그의 능력을 살릴만한 기관이나 기업이 없어서 고민하던 중 안니채의 권유로 생각나무로 입사를 결정했다. 니채는 천재형 해커이지만 올바른 가치관의 소유자 배지형을 일찌감치 형의 팀원으로 점찍어두고 있었다. 물론 고민정 팀장이 입사하기 전의 사정이었다.


   단태의 동생 니채는 뛰어난 수학능력으로 카이스트에서 데이터 사이언스를 전공한 후 국가 정보기관에서 정보분석가로 일하고 있다. 사이버 보안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사이버보안부대인 ‘유닛 8200’에 한국인 최초의 파견자이기도 하다. 활달한 성격의 니채는 카이스트 내에서도 해킹과 보안망 설계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해커출신의 수재 친구들과 두루두루 교류하였다. 형은 AI와 뇌과학, 동생은 정보과학과 사이버보안 파트에서 각각 두각을 나타내면서 서로 보완작용을 해주었다. 형이 회사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니채는 능력 있는 친구들을 소개해주며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한 가지. 삼성동의 이 사옥을 어떻게 건축했을까? 에 대한 질문은 고민정 팀장의 입에서 나왔다. 고팀장은 은은하게 빨간색이 퍼져있는 칵테일을 마시는 중이었다.


   “그런데, 대표님. 지금 우리가 일하는 이 공간은 어떻게 설계하셨나요? 건축비용이나 설비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아, 우리 생각나무 건물이요... 땅도 다 인연이 있어야 되는걸 처음 알았죠.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삼성동 근처에 발길이 닿았죠. 가끔씩 가족들과 오는 식당이 몇 군데 있어서 그때는 몰랐는데 다시 건물을 세울 생각을 가지고 주변을 보니 그때 눈에 들어왔죠.”


   단태는 생각나무 주식회사의 공간을 위해 서울 시내의 여기저기를 물색했다. 정보산업이라 전산망 구축환경과 전력 사용 환경이 최우선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삼성동의 이면도로에서 낡지만 대지가 큰 2층 건물과 그 뒤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앞쪽에는 선정릉이 위치해 있었다. 왕릉 부근에 있던 곳이라 재개발 수요도 없었고 발전의 기미가 없었다. 가까이에 한전 본사도 있었다.


   생각나무는 최신 정보화시스템 때문에 처음부터 최첨단 인텔리젼스 빌딩이어야 했다. 건물주에게 다소간의 시간 동안 공을 들여 시가보다 살짝 비싼 가격에 사들였다. 그동안 벌어들인 돈을 대부분을 건축비에 쏟아부었다. 국내 최고의 설계회사에 자신의 노하우와 바람이 설계과정에 반영되도록 전달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물이 지금의 생각나무 빌딩이다. 이 건물은 지하 2층을 제외하고도 총 10층으로 슈퍼컴퓨터 시설과 각종 보안방재시설, 지진이나 정전을 대비한 3단계 전기시설, 직원들의 복지를 위한 카페와 식당, 생각나무 체험카페, 휴게시설 및 운동시설 등을 구비하였다. 그중 핵심시설은 생각의 원천시스템과 이미지 재생실이다. 이 두 시스템에서 생각나무의 모든 결과물이 나온다. 두 곳 모두 회사의 비공개장소로 절대적 보안공간이다. 미리 승인받은 내부인을 제외하고는 출입이 불가능했다.


   회사 청사 보안팀은 규모는 작지만 국내최고의 시큐리티 전문가들로 구성했다. 보안팀은 공사조직의 최고 전문가들을 스카우트해서 1일 3교대로 근무조를 편성했다. 동생 니채가 국정원 엘리트 에이전트 요원이었다가 정권이 바뀐 뒤 퇴출된 손정의를 팀장으로 추천했다. 니채는 당시 추천 이유를 분명하게 말했다. ‘형은 국가적 인재라서 국가가 직접 보호해야 하지만 사정상 여의치 않기 때문에 국가요인에 준하는 경호가 필요하다.’ 손정의 팀장은 필요시 안대표를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경호하는 역할까지 겸한다. 안대표는 손팀장에게 가끔씩 비밀 업무를 맡긴다. 물론 안대표의 경호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필요 없었다. 그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대략 30년 가까이 택견을 수련하고 있는 고수이기 때문이다.


    칵테일 바 <시간을 찾아서> 실내의 조명과 아늑한 재즈 음악은 조용히 대화하는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다. 칵테일과 싱글몰트 위스키를 몇 잔씩 마신 이들은 안대표의 이야기와 분위기에 취했다. 어린 초등학생의 무모해 보이는 꿈 이야기가 현실화된 시공간에서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흐뭇하게 웃기 시작했다. 안대표의 표정에서도 나른하면서도 기분 좋은 피로가 묻어났다. 고민정 팀장은 그런 안대표의 얼굴에서 어린 단태의 호기심을 슬쩍 엿봤다. 초등학생의 아이디어가 시간이 흘러 이렇게 특별한 회사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짜릿했다. 달디 단 향기가 음악에 실려서 떠돌고 있었다.



단태의 생각노트 2. 생각은 만들어질 수 있을까?(20029)     


루트번스타인의 <Sparks of Genius>를 영어원서로 읽었다. 이 책은 훗날 <생각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두껍지만 역시나 재밌다. 해박하고 독특한 그들의 주장에 공감한다. 다빈치부터 아인슈타인 피카소 등 천재라 불리는 이들에게는 일반인에게 없는 생각하는 방식, 생각의 도구가 있어 그들을 상상력과 창조성의 세계로 이끈 것이다. 한편으로 전인교육과 통합교육을 주장하는 저자의 교육관과 생각에 전격 동의한다.      


루트번스타인이 말하지 않았더라도 결국 생각은 특정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다. 과연 어떻게?     


강의와 저작활동에 늘 바쁜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렇게 추론해 보면 어떨까? 음.... 생각은 과정일까 결과일까 아니면 생각 자체일까... 그것부터 해결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과정이라면 과정에 맞는 생각의 흐름을, 결과라면 과정과의 관계설정이나 결과의 맥락도 살펴봐야겠지. 또 생각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생각 자체의 본질과 생성을... 별개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역시나 아빠다운 답변이다. 히히)     


그래. 생각은 만들어진다. 분명하다.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다들 생각이 다르지 않은가!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들도 친구들도... 니채도.

하지만 진공과 무균상태에서 생명이 태동할 수 없듯이 생각도 생태환경과 씨앗이 필요하다.

민들레 씨앗이나 식물의 씨앗처럼 하늘을 떠돌다가 다른 곳에 정착하는 것이 아니니까!

생각도 식물의 씨앗 같은 물질(혹은 상태)이 있지 않을까?

아! 그래. 그렇게 존재하는 물질이 있다 치고, 생각의 씨앗이라 부르자.

그런데, 생각의 씨앗을 어떻게 만들까?  

   

생각의 씨앗이라 불리는 존재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니면 어디에서 구할까?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거나(혹은 모르고 있는) 인류의 모든 지식과 지혜는 생각과 관찰(혹은 연구)의 성과물이다.


가장 먼저 오래된 지식과 지혜를 알아야 한다. 그 이후의 지식은 그것들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인류의 문화유산인 고전과 철학과 심리학적 접근과 결과물이 필요하다.


동서양의 고전에 대한 분석과 철학과 문학에 대한 분석, 성경부터 각종 종교의 경전에 대한 이해. 지금까지 한국이라 불리는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각종 고전들까지.     


그런데 어떻게 이들을 분석하고 의미 있는 생각의 씨앗을 추출할까?

먼저 공부와 연구가 필요하다. 나 스스로 많이 읽고 기록하고 분석해야 한다.


그렇다고 혼자 다 할 수는 없다. 각종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기계나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은 아니지만, 조금 지나면 SF영화처럼 슈퍼컴퓨터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정보를 분석하고 해답을 주고 마치 인간처럼 사고하는 그런 인공지능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나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심리학, 철학, 컴퓨터공학, 동서양의 고전 연구자들... 혹은 그들의 연구물.

이들 한 군데로 모을 수 있는 회사 역시 필요하다.


나는 그 회사를 생각나무 주식회사로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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