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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Sep 02. 2024

1. 프롤로그-생각을 팝니다

직감과 직관, 사고 내부에서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심상이 먼저 나타난다. 말과 숫자는 이것의 표현 수단에 불과하다.”

- 아인슈타인     


   “생각을 팝니다. 생각을 사세요....”


   앳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2000년 5월. 한빛초등학교.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라는 가사의 어린이날 노래가 학교 안을 가득 메웠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생일을 빼고는 어린이날을 가장 반겼다. 이런 연유로 오월은 그냥 기분 좋은 달이였다. 더욱이 오월은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 아니던가. 늦봄의 전령들이 앞 다퉈 꽃을 피웠고 아이들은 함박웃음을 달고 다녔다.


   학교에서 아나바다 시장이 열렸다. 아이들이 소풍 다음으로 기다리는 행사였다. 서로 사고팔지만 대부분 물물교환의 형식으로 서로 갖고 싶은 물건들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아끼는 물건이거나 사용하지 않은 장난감을 들고 나왔다. 어떤 아이들은 내놓을 것이 없어 사 오기도 한다. 어쩌다가 엄마나 아빠가 아끼는 소품을 들고 나와서 한바탕 난리가 나는 친구들도 있었다. 운동장 한쪽에 펼쳐진 장터에는 아이들과 선생님, 엄마들이 물건을 고르고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다. 그 옆쪽에는 엄마들이 손수 만들어 파는 분식장터도 열려있다.


   “이거는 얼마야? 100원이면 너무 비싼 거 아닌가. 히히히. 내 로봇피규어랑 바꿀까?.”

   “이거 그냥 주면 안 돼요? 이거는 내가 아끼던 곰 인형인데, 동생이 필요 없다고 해서...”

   저기 6학년 누나, 잔돈이 없어서 그런데 50원에 주면 안 될까요?”

   “아씨! 저거는 내가 찜해놨는데 벌써 누가 가져가버렸네... 아까비.”

   “저 빨간 국물 떡볶이 맛있겠다. 어묵 국물은 주시려나?”  


   온갖 대화가 오가는 사이를 안단태가 걷고 있었다. 그 옆에는 동생인 안니채가 종알거리며 따라다녔다. 이들은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형제들이다. 학교에서는 둘 다 월반을 계속해야 하기를 요구하지만, 이들의 부모가 거부하고 있었다. 이미 몇 개 외국어에 능통했고, 수학은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을 뛰어넘었다. 유명한 여러 영재교육센터에서 이들의 교육을 희망했으나, 역시 부모가 거절했다. 아이들을 평범하게 키우는 게 꿈이라나.


   생각해 보면, 이즈음의 영재센터는 영재를 보통의 아이들로 만드는데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창의성을 공식으로 배우게 하는 한국적 교육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는 그나마 있던 창의성마저 사라지고 잘 외우고 반복하는 능력만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를 잘 아는 단태의 부모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기 스스로 성장하기를 바랐다. 홀로 빛나는 존재가 되기보다는 따뜻한 가슴의 영재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단태가 무엇을 내놓을 것인가로 갑론을박이 있었다. 자신들과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해서인지 늘 단태의 태도는 아이들의 대화 속 주제였다. 호기심 많은 한 친구가 종이 백을 들고 지나가는 단태에게 물었다.


   “괴짜 단태, 오늘은 무엇을 파시나? 저번처럼 아빠의 철학책인가 뭔가는 아니겠지.”


   작년에 단태는 아빠가 보다가 구석에 놓아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벼룩시장에 내놓았던 적이 있었다. 물론 아무도 사가지 않았다. 아이들 사이에 저 책은 라면냄비 받침이나 캠핑 때 불쏘시개용으로 적합하다는 말은 있었다.


   친구의 물음에 근처의 다른 친구들이 귀를 쫑긋했다. 단태는 자신들이 동화책에 빠져있을 시기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들고 다니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영어원서로. 처음에 친구들은 무슨 벽돌을 들고 다니나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책이었다나.


   나중에 선생님이 그랬다. 저책은 아주 유명한 천체물리학자인 칼 머시긴가 하는 분이 쓴 책이라고. 모르는 얘기는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게 건강에 좋았다. 올림픽 최초 100미터 2연패 금메달리스트인 칼 루이스도 아니고 칼 세이건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단태는 태연하게 종이 백을 열어 프린트한 인쇄물을 몇 장 꺼냈다.


   “응, 너희들한테 생각을 팔라고. 내가 가만히 고민해 보니까. 지금 너희들한테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필요하더라고. 그런데 너희들은 맨날 게임이나 문방구 장난감에 관심이 많잖아. 그래서 너희들이 했으면 하는 생각을 만들어봤어. 한번 볼래?”


   아이들 다섯 명이 ‘생각’을 판다고 의아해하면서 단태의 손에 놓인 종이를 쳐다봤다. 거기에는 빨간색 글씨로 “창의적인 초딩 생활”이라고 적혀있었다. 둥근 원과 우주선, 몇 개의 기하학적인 도형이 그려져 있었다. 그 밑에는 알 수 없는 수학공식이 영어와 함께 설명처럼 쓰여 있었다.


  이게 뭐람, 무슨 낙서? 아이들은 서로 마주 보다가. 뭐 이런 게 생각이라고. 하는 표정으로 단태를 바라봤다. 저게 무엇인가에 대한 창작자의 보충설명이 필요했다. 아이들의 의혹이 당연하다는 듯 단태는 다음 종이를 의문이 가득한 눈길들 앞에 내밀었다.


   녹색 크레파스로 두껍게 쓰인 제목은 “꿈이 이루어지는 독서법”이었다.


   “이건 말이지...(친구들을 좌우로 둘러보며) 우리가 꿈꾸는 것들이 꿈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생각세트야.”


   지나가는 다른 반 친구들 몇몇도 이들의 대화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한 아이의 눈에서 ‘아하! 또 저 친구네, 그러면 그렇지’ 하는 호기심이 감돌았다. 전교생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특별한 형제. 선생님들이 저 형제의 질문에 쩔쩔맨다는 소문이 들리는.


   단태는 왁자지껄한 아이들 틈바구니 속에서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꿈에 관한 자신의 얘기를 이어나갔다. 저쪽에서 원하는 장난감을 손에 넣었다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웃음이 넘어오고 있었다. 부드러운 바람 사이로 무슨 꽃인지 모르지만 꽃잎 몇 개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아이들의 땀 냄새와 꽃향기가 섞여서 풍겨났다.


   “니들 생각해 봐. 꿈을 꾼다고 이루어지는 건지. (친구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아니잖아! 우리가 요리사나 과학자를 원한다고 해서 십오 년 후에 요리사나 과학자가 되어있을까? 아마도 대부분 전혀 다른 직업을 갖고 있을 확률이 크거든. 우리 부모님들이랑 선생님들 보면 그렇잖아... 이분들도 자신의 꿈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잖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아이들이 “슛, 골~인” 하며 환호를 내질렀다. 시장이 설치된 옆쪽에는 엄마들이 떡볶이와 어묵과 떡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단태는 동생 니채가 어디 있는지를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어릴 적 가졌던 꿈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그 씨앗이 계속 자랄 수 있도록 생각을 키워주는 무언가를 만들어 판다는 거지.”


   자신이 얘기해 놓고도 대견했든지 어깨를 으쓱했다. 같은 반 아이 하나가 불쑥 단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니 말은 꿈을 만들어주는 생각 같은... 뭐 이런 걸 만들어 팔겠다는 건데. 도대체 어떻게 그런 걸 만들어. 무슨 조립식 장난감도 아니고. 어떻게 사람들 머릿속에 생각을 집어넣을 수 있을까.... 우리가 무슨 깡통로봇도 아니고. 하하하.”


   단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질문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지금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 최근 유행하고 있는 무선 전화도 신기하게 생각하는 시대니까... 머릿속에 생각을 집어넣는다는 것은 꿈같은 일일 테니까. 잠시 저쪽에서 어묵을 먹고 있는 동생과 그 친구들을 쳐다보며 친구들에게 다시 얘기했다.


   “그렇지. 영빈이 말이 맞아. 지금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불가능에 가까워. 그러니까... 내가 한 얘기들은 그런 걸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을 때를 전제로 한 거야. 그리고... 지금은 가정이지만, 내가 공부해서 그런 과학기술을 만들어낼 거야! 꼭 하고 말 거야. 하하하.”


   친구들도 따라 웃었지만 서로의 웃음코드와 내용이 달랐다. 단태는 자신의 지금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자신감이 충만해서 웃었지만, 어떤 친구들은 뭐라고 답하기도 뭐해서 그냥 멋쩍어서 웃었고 다른 친구들은 친구들이 웃으니까 분위기에 따라 웃었을 뿐이었다. 이 나이 때의 아이들은 이유 불문 그냥 웃는 게 그들의 일상 아니었던가!


   운동장 쪽에서 갑자기 축구공이 휙 날아왔다. 잘못 날린 똥볼이었다. 야! 피해.... 어이쿠. 후다닥. 친구들이 여러 방향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단태는 그 자리에서 못이 박힌 듯 자신이 했던 얘기를 다시 곱씹어보기 시작했다. 축구공이 얼굴을 스치듯이 지나갔지만, 단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자신이 만들어 낸 공식을 다시 쳐다봤다. 놀라운 집중력이었다. 자신이 팔겠다고 가져온 종이, 아니 상품의 맨 밑에는 '안단태'라는 사인이 또박또박 적혀있었다.


   친구들 중 일부는 유행하던 폴더형식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단태의 허리춤에는 삐삐가 하나 달려있었다. 부모가 최신 휴대폰을 사주려 했지만, 단태는 단호하게 이를 거부했다. 연락할 일이 별로 없을 거라는 이유로. 그래서 부모와 타협 끝에 선택한 것이 삐삐였다. 삐삐의 공식명칭은 무선호출기다. 영어로는 페이저(Pager)지만 수신할 때 삐삐 소리가 난다고 해서 비퍼(Beeper)로 쓰였고, 한글로는 삐삐로 불렸다. 서로에게 할 말을 전하고 연락처를 남겨 놓을 수 있다니. 한때는 엄청난 통신기술의 혁명이었다. 그 당시 학교 안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 앞에는 늘 아이들이 줄을 이었다. 엄마로부터 학원이나 간식에 관한 얘기를 듣고 전하는. 하지만 삐삐의 유행도 잠시, 휴대폰이란 더 편한 통신수단이 생겨나자마자 거의 사라졌다. 일일이 공중전화를 통해 내용을 확인해야 하는 불편함 때문이었다. 친구들은 수시로 휴대폰을 가지고 서로에게 혹은 부모들과 통화하고 있었다. 휴대폰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의 천국이기도 했다.


   호기심 많은 친구들에게 상품 몇 개를 팔고 나자, 단태의 삐삐가 울렸다. 아빠의 전화번호였다. 아빠는 K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는 교수다. 독일의 어느 대학에선가 현대철학의 계보를 잇는 유명한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단태의 아빠는 어릴 적부터 철학적인 사고가 두뇌활동을 더 활발히 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덕분에 단태와 니채 형제는 세계 철학사와 사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철학자들의 주요 이론을 그림을 그려가며 듣고 또 들었다. 현재 아빠는 한국식 철학의 새로운 문을 열겠다고 연구 중이었다. 아빠는 철학 이야기를 독일어로 얘기하다가 흥분하면 영어로 말하기도 했다. 철학을 이해하는데 수학이 필요하다며 정신과 의사인 엄마를 재촉해서 일찌감치 고등수학의 문을 열었다. 이들 형제는 일찍이 대포와 포물선에서 미분을 이해했고, 건축물과 피라미드에서 적분을 깨달았다. 단태가 보기에는 생각할수록 철학과 수학은 닮아있다. 아빠와 엄마처럼.


   아빠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살폈다. 하루에 한두 번 단태와의 연락을 통해 형제의 동태를 파악하곤 했다. 급식을 실시하는 학교였기 때문에 통화는 무슨 반찬에 얼마나 먹었는지 정도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부모들을 고민하게 하는 사교육은 전혀 필요치 않았다. 오히려 혹시나 형제가 동년배에 비해 너무 앞서가지는 않는지,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가 엄마 아빠의 최대 관심사였다.


   단태는 어젯밤에 아빠랑 아나바다 시장에 무엇을 팔 것인지에 대한 대화를 했다. 니채는 엄마랑 체스를 두고 있었다. 단태의 부모는 이들 형제가 원하는 것은 거의 사줬지만, 그렇다고 불필요하거나 소모적인 것들은 과감히 생략했다. 아빠가 작년 생각이 나는지 웃으면서 넌지시 물었다.


   “우리 단태는 올해는 무엇을 팔려나... 집에 있는 걸 가져갈 건가? 책이나 퍼즐 같은 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한 책을 보던 단태가 페이지에 무언가를 적어 넣으며 아빠를 쳐다봤다. 옆에는 <해커의 보안망 설계>라는 묘한 책이 한 권이 엎어져있었다.


   “올해는요... 물건을 팔게 아니라 생각을 팔려구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생각을 하는 방법이요. 자기 생각이 없을 때 그 생각의 씨앗을 심어놓고 언젠가 싹이 트면... 원하는 생각을 갖게 될 것 같아서요.”


   아빠는 단태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허리를 뒤로하며 천천히 팔을 포개어 팔짱을 꼈다. 무언가 고민하는 아빠 특유의 제스처였다. 음... 생각을 판다고. 단태의 생각이 궁금해서 다시 물었다.


   “오! 단태는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단태는 아빠의 그런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아! 그거는요. 최근에 신문이나 TV뉴스에서 계속 전 국민 독서량이 줄고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계속 보였거든요. 성인 1인당 1년 독서량이 10권도 안 된다는 것은 충격이었거든요. 저도 1주일에 10권도 더 읽는데, 어른들이 책을 그만큼 안 읽는다는 것은.... 책을 읽지 않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너무 단순해지고, 동물의 삶과 크게 다를 게 없을 거 같거든요. 먹고 자고 놀고 대충 그런 식으로 살면 세상에 더 이상 발전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가 며칠 동안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해서 만든 게 생각을 만들어 팔면 어떨까 하는 거였어요.”


   “그건 그렇지. 읽지 않고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거지. 1인당 독서량이 가진 사회적 문제는 복잡하고 다양하지. 우리가 애써 무시하거나 외면하고 있어서 그렇지. 단태 네 생각대로 이런 통계가 지속되면 아마도 큰 사회적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런데 어떻게 생각을 팔건대...”


   “아! 그거는요. 아빠. 몸에 좋은 음식도 신선한 재료와 조리기법에서 나오잖아요. 저는 생각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생각은 인류문화의 유산인 고전과 지혜에서 나와야 하거든요. 지금 생각하기에는 방대한 지식이 필요하겠지만.... 그런 기술이 이런 컴퓨터를 통해서 나올 것 같은데.... TV나 냉장고 발전하는 것처럼 우리가 쓰고 있는 조만간 컴퓨터도 SF영화 속 슈퍼컴퓨터나 인공지능처럼 엄청난 능력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 기술이 만들어지면 제가 고민하는 생각을 파는 것도 가능하게 될 것 같은데... 히히 아닌가...”


   “오, 거기까지 생각했다고. 우리 단태 대단한데... 허허허. 그런데 생각은 물건처럼 팔 수는 없잖아. 다른 판매방식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건 어떻게 생각해?”


   “아 그것도 제가 생각해 봤어요. 우리 인간의 뇌 속 피질 어딘가에 생각을 만드는 영역이 있을 거예요. 지금까지 제가 봤던 책에서도 충분히 설명하고 있고요. 실험도 많이 이뤄져 있던데요. 제가 고민하는 거는 사람의 뇌 속에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이 문제일 거 같아요. 어떤 자극을 통하면 될 것 같은데.... 아직까지 그런 내용이 들어있는 논문이나 책은 보지를 못해서...”


   “허허. 우리 단태 공부 많이 해야 될 것 같은데....”


   아빠의 머릿속에서는 단태가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에 대한 철학적인 논증이 시작됐다. 물론 단태의 의도와는 다른 방식의 사유였지만, 틀림없이 아들의 생각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줄 것이었다.

 

   그때서야 최근 단태의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단태는 최근에 갑자기 컴퓨터 언어와 프로그래밍 기법을 배운다고 대거 책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바로 전까지는 생물학과 뇌과학이 관심의 대상이었는데. 단태는 한번 어디에 꽂히면 깊이 파고들어 가는 성격이었다. 일반교양서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대학원 전공서적 정도의 수준을 탐독했다. 어디서 정보를 알았는지 논문을 구해달라는 주문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서인지 한번 공부한 분야에 대해서는 대학 교수인 자신이 놀랄 정도로 해박했다.


   아무튼 단태는 물물교환 시장에서 자신의 상품 몇 개를 팔았다. 호기심 많은 친구들 중 몇 명이 장난 삼아 이를 구입했던 것이다. 판매한 돈으로 동생이 사고 싶어 하는 로봇 피규어 장난감 세 개를 사고, 나머지는 ‘엄마의 손맛’이라는 가판대에서 어묵과 떡꼬치를 사 먹었다.


   단태의 하루를 듣고 있던 아빠와 엄마는 서로 어깨를 으쓱하며 둘만의 눈빛을 교환했다. 택견과 검도까지 하고 와서 피곤할 터인데도 형제는 뭔가를 읽고 있었다. 단태는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택견에 호기심을 보여 매일 근처의 택견도장에서 수련 중이었다. 운동신경이 좋은 건지 발차기 기술에 꽤나 능했다. 동생인 니채 또한 검도도장에서 익힌 솜씨가 수준급이었다. 공부만 잘하는 샌님 스타일로 자라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의 바람과도 잘 맞았다.  

  

   단태의 옆에는 <단태의 생각노트>라는 제목으로 노트 한 권이 놓여있었다. 스프링으로 만들어진 30여 페이지 정도 되는 흔한 노트였다. 그 첫 페이지에 ‘생각노트 1’이라고 파란 색연필로 적혀있었다. 인간의 뇌와 심장의 구조를 그린 그림과 몇몇 단어에 대한 단태의 의문이 담겨있었다. 그 옆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한 권이 놓여있었다. 아빠는 다시 팔짱을 끼고 그 첫 페이지를 계속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단태의 생각노트 1.(20005)     


신은 존재할까? 수많은 전쟁과 갈등이 존재하는 걸 보면 아마도 없을 수도...

(그래도 누군가에게 감사하고 기도하는 건 좋다!)   

  

혹시나 신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생각까지 만들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따지면 결국 신은 어리석은 존재일 테니까!     


그렇다면 인간의 생각은 사람에게서 만들어진다.

생각은 인간의 신체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인간의 뇌, 심장, 아니면 발바닥일수도 있겠다.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걸 보면....      


일단은 인간의 뇌를 의심해보자!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가장 적합한 공간이다.

인간의 뇌구조... 음, 어느 부위에 영혼이랑 마음이랑 생각이 들어 있을까?    

  

그런데, 인간의 영혼은 존재할까?

인간은 영혼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몸의 어디에 있는 걸까?

머리에 있을까, 아니면 가슴에 있을까, 아니면 심장이나 발바닥(?)에...     


인간의 생각은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혹여나 생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착각이 아닐까?

있다면... 인간의 생각은 어디서 만들어지고 어디에 저장되는 걸까?

생각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어떤 기초나 씨앗이 있다는 이야긴데... 생각도 자라는 걸까?   

   

생각과 마음이나 감정은 같을까 다를까? 사람들은 이들을 서로 구분할 수 있을까?     


생각은 양분이 필요할까 아니면 스스로 만들어지는 걸까?

양분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어떻게 공급될까?

전생이나 영혼에서 올까 아니면 독서나 대화처럼 개인의 노력에서 올까?      


생각은 선천적일까 후천적일까... 유전이 가능할까... 아빠의 철학적 사고와 엄마의 수학적 두뇌가 나에게 유전되고 있을까? (두 분 모두 서로 잘났다고 싸우긴 하지만, 그래도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커보여서 아직은 다행이다.)    

 

생각은 물리적 작용일까 화학적 작용일까...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하다면 생각은 외부의 자극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로 물리적 법칙과 화학적 작용을 따를 수밖에 없어서 .. 우리가 생각한다는 작용도 어떤 과학적 메커니즘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생각의 메커니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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