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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Oct 22. 2019

탁구는 어떻게 행복을 주고받을까?

옛날 얘기지만 오락매체가 적었던 시절 무협지는 만화와 더불어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무협지에는 늘 무림 정파와 무림 사파의 대결이 있었고, 정파의 고수가 온갖 시련 끝에 승리하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무림 정파 고수의 간난한 삶과 사연의 우여곡절에 가슴 졸이며 밤을 지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80년대의 어두운 밤을 무협지 주인공의 승리에서 위안을 받고 그의 성장에서 희망을 얻었다. 그렇다고 소설 같은 현실이 더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꿈속에서나마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무림고수가 되기를 바랐으나, 어디까지나 꿈이었을 뿐. 그래도 무협지를 읽는 동안 주인공의 삶과 무술 실력에 감정 이입되어 잠시나마 행복했었다. 그런 시간을 경험해보신 분들만 아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정파와 사파의 구분도 없을뿐더러, 있다 치더라도 반드시 정파의 승리로 끝나지도 않는다. 그냥 냉정하거나 메마른 현실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 이러한 현실에서 스포츠의 세계는 공정한 게임의 룰과 재미가 있어 많은 이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한다. 그 과정에서 흘리는 땀과 활력이 주는 즐거움은 건강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어떤 운동이든지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그 경기의 룰과 특색을 알아야 한다. 운동경기를 눈으로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 조금 복잡한 룰이 있는 운동도 있지만, 대부분의 운동은 단순한 규칙과 장비의 사용법만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래서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을 익힐 수 있는 "레슨"이라는 배움의 과정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운동은 레슨 없이 가능하나 공의 크기가 작을수록 레슨이 절실하다. 특히 탁구와 골프가 그렇다. 두 종목을 레슨 없이 하게 되면 기본기도 갖추기 어렵고, 실력도 잘 늘지 않는다. 그래서 두 종목 모두 레슨으로 밥벌이를 하는 분들이 많다. 공이 가벼울수록 컨트롤도 어렵고, 배운다 하더라도 실력이 잘 늘지 않는다.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컨트롤하기도 어렵고, 실력도 잘 쌓이지 않는....




탁구는 장점이 아주 많은 운동이다. 일단 골프에 비해 접근성이나 편의성이 좋다. 별다른 장비도 필요 없이 라켓과 공만 있으면 된다. 실내에서 부상 위험도 거의 없으면서도 운동량이 상당한 전신운동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일정한 기본기만 익히면 신체적 차이에 관계없이 서로 게임이 가능하다. 심지어 탁구를 오래 하면 시력이 좋아진다는 얘기도 있다.


무게가 가벼운 공을 라켓으로 상대방에게 넘기는 작업은 보기보다는 쉽지 않다. 원래가 공이 작고 가벼울수록 다루기 힘든 법이다.(사람도 어린아이일수록 다루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탁구는 기본자세와 기본적인 기술을 연마하는데만 최소 6개월 이상 소요된다. 몇 년을 레슨 받고도 초급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일부 생활체육인들은 끊임없이 레슨과 게임을 번갈아가며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킨다.


탁구에 관한 기본자세와 기술을 배우더라도 바로 실전경기를 잘 할수는 없다. 실전은 레슨과 달리 상대방이 리시브할 수 있는 좋은 구질의 공을 넘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슨 초짜들은 거의 백전백패다. 가벼운 탁구공은 기술적으로 쳐내기도 어렵지만 기술이 들어간 공을 상대방이 받아내는데도 상당한 테크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탁구는 고수가 될수록 공을 가볍게 느리게 쉽게 처리한다. 물론 필요할 때 고수의 스피드와 공의 공격 각도는 물리학적인 한계를 초월한다.


탁구를 시작한 지 거의 이년이 다 되어간다. 그것도 레슨 없이 게임만 하면서. 레슨을 계속 받으면서 게임을 하는 이들을 보고 우리는 "정파"라 부른다. 반면 레슨 없이 게임만 즐기는 나 같은 이들을 보고 우리는 "사파"라 부른다. 사파를 흔히 "막걸리파"라고도 부르는데 그 이유는 짐작하는대로다. 아마도 그 속에는 "대충 아무나 아무렇게나" 이런 뜻이 담기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서민의 애환이 담긴 막걸리를 모욕하지는 말자.


정파와 사파의 게임은 어느 편이 이길까? 정답은 잘하는 쪽이 이긴다는 거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것처럼 레슨 시간과 실력은 비례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실제 많은 사파들이 경기 기술과 성적에 욕심을 부려 정파로 전향하기도 한다. 게임에 지고도 기분 좋은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돈과 시간과 땀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레슨을 오랫동안 받으면서 본인의 자세가 확고한 경우 경기에도 최적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레슨을 받을 때에는 자세가 안정되어 있지만, 막상 경기에서는 자세가 흐트러지는 경우도 많다. 결국 정파든 사파든 간에 실전에서 자신만의 타구 자세를 확립하는 쪽이 경기를 안정적으로 진행하게 되고 결과도 좋다.



하나 더 게임을 이기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공이 가볍다 보니 어깨의 힘과 라켓 각도의 조절 때문에 고수들도 실수가 잦다. 자칫하면 홈런성 타구를 날리거나 자신의 네트에 코를 박는 경우가 다반사다. 실전에서는 자신이 한 공격의 절반만 포인트를 얻어도 그 경기를 이길 수 있다. 그래서 게임 중 늘 하는 말.


"욕심부리지 말고, 어깨에 힘 빼고 치자"(이 말은 우리 삶의 많은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탁구는 포핸드와 백핸드, 커트와 드라이브, 서비스 정도의 기술만 익히면 게임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다른 섬세한 기술들은 기량에 따라서 익히면 된다. 보통 경기에서는 포핸드와 백핸드, 커트 정도만 정확하게 구사해도 이기는데 문제없다. 그래서 사파들이 레슨 없이도 눈대중으로 익혀서 실전에서 정파와 싸울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 경기를 하다 보면 오히려 사파가 정파를 이길 때가 많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이것을 운동감각이나 운동능력의 차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정통 사파인 나는 씩 웃으며 말한다.


"바보야,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실전이야. 실전이 전부지"(그렇다고 반드시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게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해하지 말자)


모든 운동은 즐거움과 행복을 주고받는다. 가장 가벼운 공을 주고받는 탁구는 어떻게 행복을 주고받을까?

강력한 포핸드 스매싱의 통쾌함이나 백핸드나 플립 같은 뜻밖의 타격, 고도의 기술이 가미된 드라이브에서 올까. 아니면 실전에서의 연전연승이라는 승패에서 올까. 물론 연습하고 게임하는 과정과 결과 모두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것이다.


생각해보면, 탁구에서 주고받는 즐거움은 경기 성적이나 승패가 전부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경기하면서 흘리는 땀방울과 파트너나 상대팀과의 교감,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생생한 긴장감이 진정한 행복의 주요인이 아닐까.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여 한점 한점 포인트를 올릴 때 우리의 웃음 조각은 늘어난다. 우리네 삶 또한 그렇게 한순간 한순간이 모여 건강과 즐거움을 쌓아갈 때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가능한 한 빨리 고수가 되고 싶다.(아니, 되어야 한다)


공을 느리게, 쉽게, 가볍게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탁구의 고수.

내 삶에 있어서도 어려운 순간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인생의 고수.

함께 살아가는 타인들이 안정적으로 삶을 리시브할 수 있게 해 주는 배려의 고수.


어찌 되었건, 사파가 정파를 자주 이긴다는 냉혹한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아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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