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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Dec 27. 2019

관성의 법칙을 아시나요?

어린 현자가 말하는 인간의 행동법칙

아들들은 엄마보다는 아빠와 미용실 가기를 원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자신들이 원하는 것(게임이나 군것질)을 아빠는 거부하지 않고 대부분 해준다는 것. 우리 집 어린 현자인 막내(초등 2학년)와 함께 미용실을 가던 중 막둥이가 무심하게 한마디 묻는다.


막내: 아빠, 관성의 법칙 알아?

아빠: 당연 알지. 그것은 뉴턴의 운동법칙 중 제1법칙이지.

막내: (도전적인 눈길로 쳐다보며) 나한테 그것을 쉽게 설명해봐.

아빠: 음... 관성의 법칙은.... 어떤 물체가 외부  자극 없이 계속 자기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을 말하는 거지. 예를 들어서, 앞으로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라고 하고. 정지되어 있는 물체는 그냥 있으려고 하는 게 관성의 법칙이지.


막내: 어! 아빠... 알고 있네.(아주 의외라는 듯이)

아빠: 그렇지... 아빠가 상식이 풍부하고 아는 게 많아서 문제지....ㅎㅎㅎ

막내: 그럼, 관성의 법칙을 사람의 행동과 관련해서 말해봐..

아빠:(아들의 의도가 뭔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글쎄.... 그런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는데....

막내: (생각하는 체하면서) 음.... 사람의 습관이 그러지 않을까. 공부하는 습관이나 그런 거.....

아빠:(잠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사람의 습관이 관성의 법칙의 일종이라는 거지.


거리에 서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랬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습관은 분명히 그런 본질을 가지고 있었다. 잘 만들어진 습관은 외부의 특별한 자극 없이도 혼자서 잘 굴러가는 법이다. 잘못 배인 습관도 마찬가지다. 아빠는 즉시 스마트폰을 꺼내 에버노트에 막내의 예사롭지 않은 생각을 메모했다. 초등학교 2학년도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왜 여태 몰랐을까 자책하면서.


다시 계속되는 막내와의 대화.


막내: 그러니까... 스스로 하는 습관이 잘 안되어 있으면 자신의 문제지. 너무 뭐라 해서도 안되고.....

아빠:(애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렇긴 한데.....


(집에서 나오기 전. 아빠는 중학교 1학년생인 큰아들에게 비교적 험한 말을 해놓고 나오는 터였다. 왜 공부하는 습관이 안되어 있어서... 맨날 게임만 하냐고 말하면서.)


막내: 그러니까... 형아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마라고. 공부하는 습관도 관성의 법칙의 일종인데, 아직 형아는 그 습관이 안되어 있으니까. 아빠가 기다려야지. 라 하지 말고.

아빠: 음..............(그렇긴 하지, 참고 공부하는 습관이 안되어 있는 사람한테. 왜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냐고 말해봤자. 입만 아픈 거니까)... 인내도 습관의 일종이지...... 음.




중학교 때인가 과학시간에 배웠던 관성의 법칙을 몇십 년 만에 소환한 게 막내의 질문이었다. 뉴턴의 운동의 3법칙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것을 실생활이나 인간의 행동에 적용시켜 생각해보기는 어려웠다. 아니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교과서에서 시험을 대비한 예시 정도만 기억하고 지식의 확장이 되지 않았었고.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다른 분야에 적용시켜 말하지를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의 법칙 중 많은 것들은 그대로 인간의 행동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인데, 그러질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나 앎은 특별한 깨달음의 계기가 없는 한 배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다.


막내가 던진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인간에게 습관의 힘은 중요하다. 노력과 인내도 모두 습관의 문제다. 이러한 습관도 개인의 행동도 관성에서 나온다. 그러한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는 멘털 또한 관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참고 견디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정 시간이 필요하고 그것이 습관처럼 굳어져야 비로소 능력이 된다.


관성의 법칙을 인간의 행동으로. 우리의 습관에서 인내와 노력의 습성으로 연결시키는 초등학교 2학년생도 있는데. 왜 어른인 아빠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까. 정작 삶에서 중요한 원리를 망각하고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위에 어른들에게 적잖은 깨달음을 주는 어린 현자들이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아는 게 한없이 부족하고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까지. 혹은 잘못 알고 있거나.


우리 집의 어린 현자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어린아이들의 시선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틀에 박히지 않는 비정형적인 사고에서 삶의 지혜는 자연스럽게 발견되는 것이다. 많이 배우고도 쓸모없는 언행을 일삼는 어른들이 많은 세상에서 다시 어린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눈과 귀를 주목해야 할 까닭이다.


참고로 우리 집 어린 현자의 머리는 늘 투블럭 댄디컷 6 미리를 고수한다. 시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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