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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Feb 27. 2020

문장 하나에 세상을 담을 수 있을까?

복잡다단한 세상을 한 문장에 담을 수 있을까.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을 하나의 문장에 담아낼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세상은 스스로 보고 싶고 느끼는 만큼만 보인다.


하지만 세상사가 복잡하다고 그 이야기를 반드시 여러 문장에 그려낼 필요는 없다. 때로는 아주 짧은 하나의 문장으로도 세상과 우주를 담을 수도 있는 법이니까.




"그동안 가난했으나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널 보내니 가난만 남았구나."


이 문장은 세월호 참사 때 자식을 잃은 단원고의 어느 학부모가 팽목항에 내걸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한 문장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어느 한 가정과 이 사회의 비극과 절망을 공감하는데 그칠까. 그 가족들이 견뎌내야 할 이후의 비통함에 어떤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


국가나 위정자들이 반성하고 재발 방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웃들이 슬픔을 나눠가지더라도 저 문장에서 오는 참담함을 혹시나 잊을까 두렵다. 우리는 지금, 그때 느꼈던 감정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을까. 혹여라도 세상의 오락거리와 웃음에 가려진 타인의 고통을 망각의 강에 하염없이 떠나보내고 있지는 않을까. 그것 또한 심히 두려운 일이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한 번도 신지 않은 아기 신발을 팝니다.")


이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로 알려진 문장이다. 이 글은 헤밍웨이가 썼다고 회자되고 있으며, 한 문장으로 이뤄진 소설이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문장이 소설이 될 수 있을까. 이 문장을 처음 접한 누군가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저 문장에서 사람의 가슴을 울리고 감정을 공명 시키는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다.


작가가 의도보다는 읽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이야기가 마음속에서 좀 더 긴 문장의 소설을 창작하는 것이다. 보이는 만큼, 느끼는 만큼. 아마도.. 눈가가 촉촉해지는 이들에게 이 문장은 젖먹이를 잃어버린 가여운 부모의 비통한 심정이 감정 이입되었을 것이다. 첫아기를 위해 준비해둔 신발을 신겨보지도 못하고 아기를 떠나보낸 부모의 서글픈 심정이 그려지지 않았을까.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이 문장은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의 두 문장 중 전문이다. 섬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육지다. 바다를 항해하는 이들에게 섬은 휴식과 마음의 안정을 준다. 현종 시인은 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했을까. 어쩌면 우리 인간사회를 거친 바다로 비유하지는 않았을까. 생텍쥐베리가 도시를 사막으로 비유한 것처럼. 잔잔한 바다는 우리에게 많은 먹거리와 치유를 주기도 하지만, 거센 풍랑과 파도는 우리를 극도의 위험으로 빠뜨리기도 한다.


그때 주위에 섬이 있다면 그것은 구원이며 생명의 안식이 될 수 있다. 이때 섬은 거친 세상사에서 오는 각종 위험이나 재난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나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다. 섬의 역할은 인간과 인간을 연결해주고 공동체를 구성해주고 서로를 공감하게 해주는 것이다. 시인은 인간이라는 개체의 외로움과 서로 연대하고자 하는 본능을 투영시켜 자신의 열망을 이 문장에 심어놓지 않았을까. 이 시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 섬에 가고 싶다."




하나의 문장은 오히려 짧아서 울림이 강렬하고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들은 정작 설명이 필요 없지 않을까. 우리의 생체지문에 기록된 본능으로 그 문장 속에 숨겨진 비의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느낌과 해석만 남아있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들을 전하는 데는 그리 긴 문장은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세상과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긴 문장이 필요 없을 것이다. 간결하게 압축된 하나의 진실된 문장. 그것만이 필요하고 나머지는 읽고 듣는 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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