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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Sep 24. 2019

생각을 진화시키는 대화의 비밀

말이 생각을 바꾼다는데.

#1.

말은 그 사람의 무엇을 보여줄까?


길에서나 시장에서 친구를 만나거든.
그대 안의 영혼으로 하여금
그대의 입술과 혀를 움직이게 하라.
그대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그의 귓속에 대고 말하라.

왜냐하면 포도주 맛을 기억하는 것처럼
그의 영혼이 그대 가슴의 진리를 간직할 것이기에

칼릴 지브란, <예언자>, 대화에 대하여 중에서.


  다른 이들과 얘기하다 보면 사람마다 쓰는 클리세(cliché)가 꼭 있다. 아마 습관적으로 큰 의미 없이 사용하겠지만 반복적으로 듣는 입장에서는 여러 생각이 든다. 왜 굳이 그런 말을, 단어와 문장을 얘기할까? 다른 좋은 표현도 많은데. 패러프레이즈(paraphrase)까지는 아니어도 좀 더 긍정적인 표현도 많은데.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듣는 단어 중 "망했어, 저 사람은 천재야, 난 못해" 같은 부정적인 문장 또는 자신을 비하하는 단어를 자주 듣는다. 물론 대화의 주제를 상세히 설명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일 테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요즘 아이들은 부정적인 단어 선택이 많은 것 같다. 사는 게 힘들어서 그럴까?


  반대로 만트라 주문 같은 경우에는 근거 없는 낙관적 기대에 근거해서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거나 행동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스스로를 위한 주문은 기독신앙의 주기도문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런 만트라 주문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하나 정도는 권장할만하다. 이런 유형의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이의 경향은 대개는 낙관적이다. 이들은 함께 대화할 때도 최소한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다.


  표현되는 내용이나 문장의 톤에 관해서도 그렇지만, 그 말의 형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말의 형식은 직설적이거나 우회적(또는 간접적)인 것이다. 이는 단정적 문장이나 유보적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문장의 품격이나 감정은 배제하고서라도 그 형식은 어떠해야 할까?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나 문장은 표현하는 당사자의 무엇을 보여줄까? 듣는 이에게 어떤 불필요한 부담을 주거나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주고 있을까?




#2.


우리가 즐겨 쓰는 문장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단정적인 문장이고 다른 하나는 조건부 또는 유보적인 문장이다. 단정적인 문장은 "A는 B이다" 혹은 "A는 반드시 C일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조건부 또는 유보적인 문장은 "A가 B가 될 수도, C가 될 수도 있다", "A는 B라는 조건하에서는 C 또는 D가 될 수도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단정적인 문장은 장점이 많다. 일단 의도가 명확하고 말하는 이의 확신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듣는 이도 그 말의 의미를 다양한 해석 없이도 쉽게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장점은 곧 단점이 된다. 즉 말하는 이의 단정적인 표현은 듣는 이에게 다른 고민의 가능성을 유보하지 않는다. 청자가 다르게 생각해야 할 가능성을 막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설적인 문장과 단정적인 표현이 불편하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에 의하면.

"독자의 사유를 자극하는 글은 직선으로 내달리는 글이 아니라 갈지라도 흘러가는 글이고 평론이 드물게도 울림을 갖는 경우는 평론가가 고뇌하고 유보할 때가 아닌가."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즐기는 자만 못하다 중에서.


  유보적 표현을 주로 사용하는 이들은 듣는 이에게 확신을 주기 힘들다는 큰 단점이 있다. 그래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으니까, 판단이나 선택을 네가 해라" 식의 문장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말하는 이의 태도가 우유부단하게 보일 여지도 있다.


  유보적 문장의 장점은 단정적인 문장보다는 다른 생각의 여지, 즉 해석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가 아닌 서로 다른 가능성을 지닌 문장 표현이 듣고 보는 이의 사고와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는데 있다.


하버드 대학의 앨런 랭어 교수의 심리실험에 의하면.

두 그룹의 학생들에게 한 가지 물체를 주었다. 한 그룹에게는 "이 물건은 강아지들이 가지고 노는 씹는 장난감이다"라고 말하고, 다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 이 물건은 강아지들이 가지고 노는 씹는 장난감으로 쓸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실험 후반에 지우개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자, 후자의 학생들만이 그 고무 '장난감'을 지우개로 사용할 줄 알았다.

켄 베인, <최고의 공부>, 언어가 당신의 생각을 통제한다 중에서.


  이 같은 실험은 무엇을 말할까? 그냥 장난감이라고 단정적으로 말을 듣게 되면, 듣는 이들의 머릿속에서는 다른 용도는 생각할 수 없고 들은 범주 내에 갇히게 된다. 그렇지만 장난감으로 쓸 수도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 다른 용도로의 전환이 머릿속에서도 전개된다는 것이다. 즉 어떤 상황에서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생각하고 고민해서 좀 더 창의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여지를 높이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의 톤만 바꾸더라도 자신의 생각의 색상이 바뀐다. 과장해서 세상의 변화까지는 못 이끌더라도 우리 스스로는 바꿀 수는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와 대화하는 타인의 사고 과정에 융통성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얘기하듯이 꼭 직선으로 내달리는 말이 아닐지라도 타인의 사유를 자극하고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대화의 문장 형식에 따라 최소한  두 명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


그러한 변화로 인해 어떤 상황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길 것이다. 좀 더 나아가면 타인과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질 수도 있다. 우리가 노력한다면.




#3.

우리는 어떤 형식으로 말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표현할 문장이 단정적인지 유보적인지는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직선적이고 날카로운 문장을 주로 사용하는 문학평론가가 아니라면 일반적인 관계에서 특정한 문장 표현으로만 계속 얘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잘 아는 분야나 주제에 대해서는 확신에 찬 단정적인 문장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 없거나(혹은 잘 모르거나) 여러 가능성이 열려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유보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것은 타인을 존중하는 의미와 더불어 실언으로 인해 역공을 받을 가능성도 줄여줄 수 있다.


우리 가족이나 직장동료에게 어떤 문장 형식으로 말하면 좋을까?


  먼저 해서는 안될 것, 반드시 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 얘기하는 경우에는 금지형(단정적) 문장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금지형 문장이 필요한 경우에도 유보적이거나 다른 가능성을 내포한 문장을 사용하는 경우는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이런 표현을 주로 사용하다 보면 "꼰대"가 될 확률이 높다.


"이런 경우에 그렇게 해서는 안돼"

"이럴 경우에는 개인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조직이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서 이렇게 해야 돼"

"미성년일 때에는 절대 해서는 안될 것 중 이러이러한 것이 있으니까, 너는 그것을 해서는 안돼"


  다음으로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황에 대해 얘기할 때에는 권유형(유보적) 문장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권유형 문장의 경우에는 단정적인 표현보다는 상대방에게 가능성이 있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고, 그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다. 앨런 랭어 교수의 실험의 결론이 이런 권유형 문장을 사용했을 때 바로 적용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이 상황은 이런저런 문제가 있고, 그중 대안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네 선택은 어때?"

"네 나이에 이런 행동을 하는 거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 대신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고 해 봐"


이 또한 여러 상황에서 서로 혼용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마주하는 상황이 단순하게 흑백논리나 이분법적 세계로 나뉘지는 않았으므로.


다만 대화의 목적이 지식 전달이나  지시에 있지 않고 상대의 사유를 자극하고 감성의 교류에 있다면 유보적인 문장 형식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떤 형식으로 말하고, 어떤 감정의 톤을 전달하고 있을까?


우리는 어떤 느낌의 단어와 어떤 감정의 문장을 사용하고 있을까? 나의 가족에게 혹은 직장 동료에게.

우리는 어떤 문장의 형식을 그 상황에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을까?

혹여나 문장의 형식을 혼동해서 상대를 불편하게 하거나 부담스럽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


대화하면서 화자와 청자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좋을 텐데, 이 역시 말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하나 더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문장에 자신의 영혼의 소리와 말의 온도가 담겨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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