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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den Mar 24. 2022

생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 변화

생일 안 챙김 선언문

매년 돌아오는 하루지만, 어쩌면 1년에 단 한 번뿐인 날

그 외에도 여러 방식으로 설명을 하자면,


1. 게임 경험치 마냥 차곡차곡 쌓아 올린 나의 자랑스러운 인간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날
2. 매년 몇백 단위로 나간 경조사비의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는 날
3. 열심히 한 해를 돌아온 내가, 격려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날
4. 부모님께 조금은 덜 부끄러워하면서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날


그렇기에 조금은 티 내고 싶고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날, 바로 생일이다.


지난 10년 동안 생일은 나에게 1번 항목으로서 가장 큰 의미를 가졌다. 나는 사회적 동물로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고, 생일에 받는 축하 혹은 '인생 잘 살았다' 같은 식의 칭찬이 좋았다. 이런 메시지들은 3월의 봄기운과 더불어 내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긍정적인 기억이기에 스무 살 이후 매 생일이 기억난다. 특히 대학교 2학년 생일날에 많은 축하를 받으며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내내 들떠 있던 22살의 내 모습은 신기할 만큼 아직도 생생하다.


이렇듯 생일은 나의 인간관계 성취를 증명해주었으며, 여러 가지 긍정의 감정을 선물했다. 그래서 나는 늘 나의 생일을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했고, 받은 축하를 과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생일에 대한 나의 태도를 올해부터 조금 바꾸어보려고 한다. 나는 내 생일을 조금 숨기고 싶어졌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나는 더 이상 대학생 시절만큼 인싸가 아니다.

대학생 시절, 학교 근처에 자취하면서 월화수목금토일 점심/저녁이 늘 약속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모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원이 되며 자연스럽게 약속이 줄었고, 평일에는 저녁 약속 1번 나가는 것도 상당히 귀찮게 느껴진다. 사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님에도 그냥 에너지가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만나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게 되고, 자주 연락하는 친구의 수도 많이 줄어들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스타 팔로워 수는 늘었지만, 실제 나의 인간관계는 더 좁고 깊어졌다. 이렇게 인간관계의 넓이와 깊이 모두 변화가 생겼음에도 관성적인 축하와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조금은 버겁게 느껴진다. (이런 상호작용을 감당할 에너지 레벨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난 이제 정말 인싸가 아닌 것 같다.)


두 번째. 월급은 높아졌지만, 가계부를 쓰는 마음이 무겁다.

근로장학생을 하던 시절에 비하면 나의 급여는 몇 배로 증가했다. 하지만 가계부를 쓰면서 나의 경조사비 지출이 더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물론 가족들에게 쓰는 돈과 결혼/장례식으로 비용의 비중이 크지만, 이를 제외한 생일 선물 비용만 해도 굉장히 큰 금액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덜 받고 덜 주기로 결정했다. 내 성격상 선물을 받으면 반드시 답례를 할 테니 아예 받지 않는 편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최근 카카오톡에서 내 생일이 뜨지 않도록 바꾸었다. 아마도 생일 알림에 뜬 내 이름을 보고 보낼까 말까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예 그 고민을 하지 않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생일 알림 기능을 통해서 지인들 생일을 확인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해주고 싶은 사람도 많겠지만, 망설이는 누군가의 고민을 덜어주는 방법으로는 알림을 끄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좀 덜 받았으니 나 역시 불편한 의무감으로 선물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는 어마어마한 경조사비가 감당이 안 돼서, 받은 선물을 환불받으며 10% 수수료를 카카오에 기부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 감정적으로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 (혹은 되려 한다.)

예전의 나는 생일날마다 상대방의 메시지와 선물을 은근히 기대했던 것 같다. (아닌 척하지만, 사람이기에 사실 지금도 기대할 수도 있다.) 친한 친구의 연락이 없으면 '뻔히 내 생일이 카카오톡에 떠 있는데 연락 한 통 없어?' 하면서 내심 서운해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챙기는 행동'이 도의보다는 호의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 외에 아래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얼굴 본 지도 오래되어 어쩌면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편한 인간관계가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는 생일 선물에 쓰는 돈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바쁜 일상 속에 지인들의 생일조차 챙기기 어려운 상황이 있다는 것을

왜냐면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생일을 드러내지 않고 조금 적은 축하를 받더라도, 행여나 가까운 나의 친구가 내 생일을 잊더라도 서운하지 않으려고 한다. 


거창한 이유를 들어서, 생일을 친구들에게 떠벌리지 않고 조용하게 지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이것이 생일날도 야근-헬스-김밥으로 끼니 때우기 따위를 하며 보내겠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내 생일을 먼저 기억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을 것이고,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드릴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할 것이고,

이런 소소한 이벤트 속에서 삶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평소 고마웠던 사람들에게는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늘 감사와 선물을 전할 것이다.


다만 그 방식이, (내가 생각하는 한) 더 어른스러워졌을 뿐이다.


내 이야기가 에너지 레벨이 딸리는 인간의 '생일 안 챙김 선언문'으로 읽힌다면, 그것도 좋다. 


그래도 혹시나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이 이 글을 본다면, 나만의 방식으로 어른스러운 척을 해보려는 나를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3/4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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