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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den Mar 30. 2022

술이요? 싫어해요.
술자리 분위기요? 그것도 싫어요.

당신이 아니라 술이 싫습니다

아마 글의 제목처럼 말을 하고 다니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오해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놀랍게도 제목은 내가 현실에서 내뱉는 대사이다. 하지만 나도 나름 술자리를 즐긴다. 다만 내가 술자리를 즐기기 위해서는 수많은 전제조건이 붙는다.


와인이나 맥주 1~2잔 정도의 술을 내가 원하는 만큼만 즐길 수 있으며,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서 강제로 권하거나, 취해서 추태 부리는 사람이 없으며,

술자리 다음날 일정이 없어서 하루를 온전히 회복에 사용할 수 있는


이 경우에 나는 걱정 없이 술자리를 즐길 수 있다. 물론 회사에서 거래처와 마시는 경우 어쩔 수 없이 마신다. 그 술자리를 즐기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회사 밖에서 약속을 잡는 경우, 가급적 위 조건이 만족되는 경우에만 술을 마시려고 한다. 조건의 만족은 생각보다 어렵다. 술자리는 모임으로 잡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술버릇이 안 좋은 사람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사회분위기가 바뀌며 강권하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나의 체질 때문에 걸어둔 3번 조건의 만족이 꽤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술을 못한다. 맥주 몇 모금만 마셔도 얼굴이 폭발하기 직전이며, 소주 1병을 마시기 전에 구역질이 나서 술을 삼킬 수가 없다. 과음 후(대충 소주 1병 마신 상태) 집에 오면 팔다리가 너무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가끔 '술을 마시면 팔다리가 아파서 잠을 못 잔다'라고 고백하면 안 믿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키가 1년에 10cm씩 자라던 초중딩때보다 술 마신 지금의 팔다리가 더 아프다. 어렸을 때는 눈물이 찔끔 났는데, 지금은 잠 못 이루는 새벽에 침대에 누워서 욕을 한다. 잠을 못 자니 다음날 아침은 피곤하다. 어떤 숙취해소제를 먹어도 숙취는 디폴트이며, 하루 종일 화장실 신세를 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증상들 때문에 술을 마실 때도 즐겁지가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 찾아올 고통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만 가중된다.


내가 이 정도로 '술찌'이기 때문에 나는 다음 날 푹 쉴 수 있는 경우여야 '소주 한잔'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욕심이 많은 나에게 푹 쉴 수 있는 날 자체가 별로 없다. 적게 마시면 되지 않냐고? 정도가 약할 뿐 숙취 및 팔다리 통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마셔서 몸을 망가뜨리고, 소중한 휴일을 숙취해소에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더라도 굳이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글의 제목처럼 말을 하고 다닌다. 흔히 술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술은 잘못하는데, 그래도 술자리의 그 분위기는 좋아해요~" 사실 나도 그렇다.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좋은 사람들 간의 모임에는 참석하고 싶다. 하지만 '술자리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가는, 결국 원치 않는 술자리까지 참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편한 거절을 위해서, 그냥 술자리의 분위기마저도 싫은 사람이 되었다.


술을 마셨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일까? 나는 그들이 부럽다. 그래서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아름답게 술을 즐기는 사람을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즐길 수가 없기에, 소주 한잔 하자는 말이 돈을 빌려달라는 말만큼 부담스럽다. 다행히 나 같은 '술찌'를 배려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면, 사회생활이 불편한 대한민국이다. 뿌리가 너무 깊어서 어디서부터 파내야 할지 알 수 없는 문제이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앞으로도 더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술 약속에는 언제나 도망치듯 거절하는 나인데, 그래도 배려해주는 주변 사람이 많아서 다행이다. 혹시나 내가 당신의 술 약속을 거절했다면, 그것은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라 아마 술이 싫어서 일 것이다.  


끝으로 술을 못하는 사람으로서,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

당신이 술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을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아도 좋다. 
나는 술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다만 아플 뿐이니, 헤아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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