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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은 뇌질환이 아니다?

파킨슨병에 대한 관점이 바뀌고 있다.


우연히 파트타임 기회를 얻어 재택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육아와 돌밥돌밥 살림을 재택근무와 병행하기 위해서 첫 번째로 요구되는 것은 인내심이더군요. Zoom 회의를 할 때마다 방문을 활짝 열고 무단 침입하는 둘째 아이에게 손짓만으로(회의하는 얼굴 표정은 온화하게) 협박하여 내쫓는 것도 기술이 필요했고요. 짜장을 볶으면서 세탁기에서 다 된 빨래를 꺼내면서 동시에, 업무 메일을 어떻게 회신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멀티태스킹에 워낙 취약하고 일을 중요도 순서로 배열하는 것도 어려운 인간인지라 하루하루가 도전입니다. 근무시간은 형식적으로 나인 투 파이브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일하며 중간중간에 육아와 돌밥 살림을 끼워 넣는 스케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암튼 각설하고, 최근 유병율이 증가하고 있는 파킨슨병과 우리가 매일 겪는 위장 문제를 엮어서 얘기를 풀어보겠습니다. 




파킨슨 질환은 뇌에 퇴행성 변화가 축적된 결과이고 신경과 질환이라는 것이 전통적인 시각입니다. 하지만 최근 수년 전부터 파킨슨병을 뇌에 국한해서 생각하지 않고 전신 질환(Multisystem disorder)으로 보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뇌질환이 아니라는 주장이 아니고, 뇌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된다(그래도 메인은 신경과죠!)는 입장입니다. 유사한 경우가 당뇨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당뇨를 췌장 내분비의 문제로만 보지 않습니다. 눈, 심장, 콩팥, 전신 혈관, 말초 신경의 문제를 모두 아우르는 전신질환으로 보고 있지요. 그래서 당뇨환자는 내분비내과 외에도 안과, 신장내과, 심장내과, 신경과 등 여러 과에서 진료를 받습니다(모든 부문에서 전문가의 진료를 받으려면 좀 피곤한 일정이지만요) 파킨슨병에서 뇌 이외 가장 주목을 받는 부위는, 위장과 자율신경입니다. 쉽게 말하면, 파킨슨병의 원인 병리 단백질이 위장과 말초 자율신경에서 확인되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럼 임상적으로 왜 위장 증상이 중요할까요? 여기서 위장 증상은 단순히 속이 쓰리고, 소화가 안되고, 변비 정도로 말하지 않습니다. 훨씬 더 다양합니다. 영양 부족(영양소 흡수 문제), 구내 및 치과 문제, 식욕 감퇴(후각 감퇴), 침을 과다하게 흘리거나, 삼킴 곤란, 복부 팽만감, 불편하거나 원활하지 않은 배변 등 입부터 항문까지 전 소화기관의 문제를 의미합니다. 


위장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파킨슨 병 중증도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위장 마비(Gastroparesis) 증상은 거의 모든 파킨슨 환자에서 동반됩니다. 오심, 속 쓰림, 구토, 조기 포만감, 복부 팽만감 등이 반복되면 영양 부족, 탈수, 체중 감소를 유발하겠죠. 따라서 같은 파킨슨병 환자라도 증상의 중증도와 예후가 더 불량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학 연구에 의하면 하루에 한 번 미만으로 장운동이 떨어져 있는 집단은 두 번 이상인 그룹에 비해 파킨슨병 위험도가 4배로 보고되기도 하고, 파킨슨병 발병 12년 전 많게는 20년 전부터 변비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파킨슨 질환 초기부터 원인인 독성 단백질(alpha synuclein, 알파 시누클레인)은 위장을 침범하여 상기 증상을 일으킵니다. 환자들의 삶의 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무엇보다 일차적으로 치료 약물의 흡수에 영향을 미치니 중요하죠. 이 위장 문제 때문에 제대로 약을 먹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약을 복용했다 할지라도 효과가 없거나 늦게 나타나는 결과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후각 감퇴, 렘수면 행동 장애, 자율신경계 이상, 위장 장애는 파킨슨 질환 발병 수년 전부터 선행합니다. 렘수면 행동 장애에 대해서는 예전 제 글에서 언급을 했고요. 

https://brunch.co.kr/@gn20sep/78


수년 전부터 후각이 많이 떨어지고, 자다가 꿈 내용처럼 격렬히 움직이거나, 만성 변비 같은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파킨슨병이 발현될 위험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파킨슨 질환 환자의 증상을 거꾸로 역추적하는 것보다 어려운 문제이지요. 




최근까지 많은 연구에서, 파킨슨병 환자들의 위장 증상(운동성과 배출 능력의 감소)의 원인을 장내 미생물 환경의 변화(gut microbiata dysbiosis)에서 찾고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의 분변과 비교해 봤을 때 장내 미생물의 분포가 많이 바뀌어 있었고, 이에 과도한 염증반응과 산화 스트레스로 독성 단백질인 알파 시누클레인이 축적되며, 축적되는 과정이 장내 신경에서 중간 경로인 미주신경을 거쳐 뇌(Substantia nigra, 흑색질)로 퍼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내 신경(enteric nervous system)과 뇌가 미주신경(뇌간에서 나오는 Vagal nerve)을 통해 소통을 잘해보라고 연결해놨더니(아래 그림 참고), 장내 문제를 뇌까지 끌어 붙인 꼴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헬리코박터균 감염, 혹은 장내 정상 세균총의 변화가 파킨슨병의 증상이나 중증도와 연관이 있다는 얘기지요. 


문헌상에서는 위장증상을 해결할 수 있는 여러 약제를 복용하거나, 보톡스 치료, 재활, 수술적 방법을 제시하지만 아직 연구 중입니다. 또한 헬리코박터균 감염을 해결하고 장내 세균총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도 방법입니다. 고지방, 고탄수화물 식이도 장내 비정상적 세균총을 번식시킬 수 있는 원인이라 식이 조절도 중요합니다. 



뇌와 장내 신경이 미주신경(Vagal nerve)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Frontier in Neurology, 2018)




강조하고 싶은 점은, 우리의 위장이 파킨슨병의 병리기전이 진행되어 퍼지는 통로로 이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킨슨 병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biomarker)로서 주목해왔습니다. 원래 파킨슨병을 병리학적으로 최종 확진하려면 뇌를 부검해야 하는데, 위장을 조직 검사해서 미리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었던 거죠. 병리 단백질 덩어리를 뇌가 아닌, 뇌 밖의 말초신경에서 조기에 찾아내는 방법 참 매력적입니다. 최근엔 위장 내부보다 더 접근이 쉬운 피부 속 자율신경 조직 검사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연구들마다 특이도와 민감도가 차이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원인 단백질로 알려진 알파 시누클레인의 의미도 아직 불확실하고, 병리기전 상에서 이 녀석이 충분조건을 만족하지도 않습니다. 


치매와 마찬가지로 파킨슨병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가 중요합니다. 파킨슨병을 진단하는 도구가 예전에 비해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뇌 MRI로 파킨슨병을 확진하는 것이 아니고 여전히 증상이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도파민 수용체 핵의학검사를 시행하지만 이 역시 진단이 애매한 경우를 배제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예전보다 사회적 인식과 교육 수준이 높아져 질병을 조기에 치료하고자 파킨슨병 초기에 내원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퇴행성 변화가 뇌에 똬리를 틀기 전에 더 빨리 진단할 수 있는 도구에 대한 needs(unmet needs, 미충족 수요)는 여전히 간절하고 진행 중에 있습니다.


# 주요 참고 논문

1. a-Synuclein oligomers in skin biopsy of idiopathic and monozygotic twin patients with Parkinson’s disease, Brain 2020

2. Gut dysfunction in Parkinson's disease, WJG 2016

3. Association of small intestinal bacterial overgrowth with Parkinson’s disease: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Gut Pathogens 2021

4. Detection of alpha-synuclein conformational variants from gastro-intestinal biopsy tissue as a potential biomarker for Parkinson's disease, Neuropathol Appl Neurobiol. 2018

5. Management of Dyspepsia and Gastroparesis in Patients with Diabetes. A Clinical Point of View in the Year 2021

6. Unraveling the Role of Neuroinflammation in the Progression of Parkinson’s Disease, Frontier in Neurology, 2018

7. Frequency of bowel movements and the future risk of Parkinson’s disease. Neurology,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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