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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중력지대 성북 Sep 29. 2021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 : 이소

#PEOPLE

무소식은ㅡ

무중력지대 성북을 기점으로 사람·커뮤니티·장소 등 주체적 청년 생태계 소식을 담아냅니다.

인지하지 못했던 당연한 것들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무소식 4호 : PEOPLE


이소(이상미)는 글과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프리랜서 작가입니다. 동시에 16년째 '수련하는 삶'을 지속하는 생활검도인이기도 합니다.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시작한 취미가 직업이 되기까지, 묵묵히 자신만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성공한 덕후' 이소를 소개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동네에서 일하는 이야기 자영업자, 이소입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프리랜서입니다. 더불어 에세이나 그림 작업을 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용하고 있는 별명은 어떻게 정하게 되었나요?

중국 고사 중에 "비단에 적은 편지를 잉어 배 속에 넣어 전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이소'(鯉素)가 잉어를 뜻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관용구처럼 '편지'를 의미해요. 제가 항상 어떤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는 일을 했던 사람이니까, 그런 정체성을 나타내는 별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근황이 궁금해요.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마감을 앞둔 일이 조금 있는데요.(웃음) 일단 에세이 작업의 삽화와 원고가 막바지 단계이고요. 또 외주를 받아 진행하는 정기적인 인터뷰 작업이 있어요. 인터뷰를 통해 지역의 스토리텔링을 하는 일도 곧 시작하게 될 거 같아요. 나머지 시간에는 검도 수련을 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그동안 어떤 일을 해오셨고, 현재는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이전에 제가 가졌던 직함이 에디터, 홍보 매니저, 취재기자 같은 것들이었어요. 보통 기관들이 브랜드나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콘텐츠가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그런 걸 주로 '글'을 기반으로 생산하는 일을 했어요. 그중에서도 인터뷰의 비중이 높았고요. 그런 식으로 오랜 시간 조직 생활을 해오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항상 인터뷰어 역할을 하셨는데, 반대로 질문을 받는 입장이 되니 어떤가요?

그동안 내가 남들에게 몹쓸 짓을 하며 밥벌이를 했구나.(웃음) 굉장히 민망하네요.


회사를 다니다 프리랜서로 전향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기질이 조직에 그렇게 적합한 사람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매번 반복해서 어떤 조직에 저를 맞추는 시도를 하는 게 많이 어렵더라고요. 직전 회사를 퇴사한 후에는 얼마 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그러면 그 기간 동안 그동안 해왔던 '인스타 툰' 작업을 어떻게든 해보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막연하지만 하고 싶은 것이 눈앞에 있고, 현실적으로 당장 굶지 않을 여건이 되니까, 그렇게 좀 마음을 놓고 시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소의 인스타 툰 중


프리랜서로서 자신만의 리듬을 만드는 일이 중요할 것 같아요. 이소만의 루틴을 어떻게 구축했나요?

퇴사하고 나서 한 달 정도는 헤맸어요, 뭘 해야 할지를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시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엄청 고통스러웠어요. 그래서 뭘 해야 할지 상상하고, 직접 떠올린 것들을 실행해보는 방법으로 루틴을 잡아나갔어요. 루틴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커뮤니티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여성 작업자들이 자기 일상을 공유하는 '슬랙' 채널이 있어요. 그곳에 오늘 해야 하는 업무나 의견을 나누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 루틴으로 생활하는지도 참고했어요. 생각보다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서로 봐주고 목소리를 더해줄 다른 사람을 필요하더라고요. 내가 뭘 하는지 내보여야만 외부의 피드백도 돌아오고, 그만큼 동기부여가 되니까요.


보통 7시 반쯤 일어나서 아침을 먹어요. 뉴스레터를 읽으면서 산책하고 방을 청소할 때도 있어요. 9시~10시 사이에는 회사 다닐 때처럼 일을 시작해요. 그렇게 오전에 두어 시간 집에서 일하다가 오후 1시에는 아버지와 함께 작업실로 출근을 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일정이에요. 그리고 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청소를 하는데요, 꼭 청결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어떤 의식 같은 거예요. 제 몸한테 "이제 곧 일을 할 거야." 하고 신호를 주는 식으로요. 혼자 일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게 더 필요하더라고요. 이 리듬에 익숙해지는 데 8개월 정도 걸렸어요.


프리랜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장단점이 있다면?

최근에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다가 느낀 건데요, 내가 하는 일에 나의 언어로만 설명하는 고유의 맥락을 부여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 느꼈어요. 물론 조직에서 일한다고 해서 이걸 못 한다는 건 아니고, 프리랜서로 하는 일들의 종류가 다양해서 그 일들이 다 파편처럼 흩어져 보이기는 해요. 그런데 내가 왜 이 일을 왜 선택해왔는지 고민해보고 정리해보면, 나만의 대체 불가능한 어떤 부분이 생기는 거 같아요.

그리고 조직 밖에서 움직일 때는 타인이 붙여주는 직함이 아닌 스스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런 방식의 작업자이다' 하고 설명하면서 관계를 맺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조직에 속해있는 상황에서 하게 되는 일과 '나'라서 들어오는 일의 결이 달라요. 그런 게 동기부여도 되고 일을 더 재밌게 만들어요.


그리고 단점, 외로워요. 보통 클라이언트랑 일해도 메일이나 메신저 몇 번 주고받는 거지, 끈끈하게 대화를 나누는 건 아니잖아요. 만약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일과가 끝날 때도 있어요. 그럴 때 자기 자신을 북돋을 만한 여러 가지 장치가 필요해요. 작업할 때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좀 더 신경을 쓴다든지, 일하는 과정에서 영감이 될만한 콘텐츠를 찾아서 보는 식으로 세밀한 장치 설정을 하곤 해요.

또 하나는 불안정성이죠. 프로젝트가 오늘 있다고 내일도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어요. 내가 움직여야 일이 만들어지고,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만들어지지 않아요. 외부 단체에서 주는 일은 온라인 계정을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나를 알리다가 문의가 오고, 개인 프로젝트에서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하는 지원사업을 찾아 써보고 하는 식으로요. 혹은 특정 커뮤니티나 모임에서 꾸준히 활동하다 보면, 그 활동을 일정 기간 동안 눈여겨온 사람이 일을 주는 경우도 생기고요. 스스로 움직이는 만큼 일을 만드는 방법이 조금씩 보여요. 어떻게 보면 단점이자 장점일 수 있겠네요. 내 활동에 맞는 일이 들어온다는 건 장점,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건 단점.(웃음)


아버지의 공방에서 함께 작업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공간을 공유하게 되었나요?

'동네 공방 온'이라는 이름의 나무공예를 하는 작은 공방이에요. 보통 '서각'이라고 많이 부르는데, 정식 명칭은 '각자'(刻字)라고 해요. '광화문의 현판' 같은 걸 생각하시면 돼요. 옛날에는 나무에 글씨나 그림을 새겼잖아요. 아버지가 그 일을 10년 정도 하셨어요. 회사생활을 하시면서 취미로 시작하셨다가 이렇게 작품 생활까지 하게 되셨죠.

퇴사를 하면서 조직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나를 맞추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장 가까운 사람과 도모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던 거 같아요. 아버지와 같이 뭔가를 해볼 수 있는 시기가 지금뿐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물론 연령과 가치관이 다르다 보니 보니 싸울 때도 많지만요.(웃음) 투덕거리다도 또 잘 통할 때도 있고 그래요. 그래도 가족과 함께하니까 좋더라고요. 함께 작업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측면도 있고요.


아버지와 협업을 하기도 하나요?

작년에 주변 가게들과 함께 '골목 만들기' 공모사업에 참여했어요. 각자의 공간에서 워크숍을 진행하고 결과 공유회까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그때 아버지는 참여자들을 교육하고, 저는 모객과 운영 등의 전반전인 행정처리를 담당했어요. 보통 아버지와 협업하면 그렇게 역할이 나뉘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직장생활을 또 오래 하셔서 문서정리 능력이 엄청나게 뛰어나세요. 공모사업 막바지에 결과 보고를 위한 증빙 작업을 혼자 하고 있는데, 문서를 출력해놓으면 아버지가 그 순서를 귀신같이 정리해놓으시는 거예요. 협업할 때 아버지가 너무 잘하시는 게 뚜렷하게 있어요. 


아버지와 공방 함께 꾸려나가는 건데, 운영에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 있나요? 

아직은 저도 배워가면서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상황이에요. 계속해서 참고자료를 찾아보고 무드 보드를 만들어 본다든지, 그런 식으로 아버지의 기술에 젊은 감각을 덧대 보는 시도를 하는 게 지금 주안점을 두는 부분인 거 같네요.

앞으로 이 '공간'에서 뭘 할지도 고민하고 있는데요, 공방 근처에 있는 동네 젊은 사장님들을 만나고 돌아다니고 있어요.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천천히 알아가고 있어요. 앞으로 이 분들과 같이 어떤 일을 해볼 수 있을지, 어떤 모습으로 어울릴 수 있을지를 꾸준히 궁리하는 단계입니다.


동네 공방 온 내부


소셜미디어에서 본인을 '생활검도인'으로 소개하고 계신데요. 검도를 해 온 기간은 얼마나 되었나요?

검도는 대학교 2학년 때 동아리 활동으로 처음 시작했어요. 햇수로 16년 정도 되었고 단수는 4단입니다. 얼마 전에 생활체육 지도사 자격증을 땄어요. 실업 선수나 전문적으로 검도를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동네 도장에 설렁설렁 가서 '오늘도 운동 좀 했네~' 싶은 생활체육인. 딱 그 정도라서 소셜미디어 계정 이름을 '생활검도인 이소'라고 붙였어요.


검도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고등학생 때, 같은 대학에 가면 함께 검도 동아리를 들자고 했던 친구가 있었는데요, 제가 그 학교에 떨어지면서 그 친구랑은 헤어지게 됐어요. 그렇게 대학 생활을 하다 우울감이 조금 심하게 왔던 시기가 있었어요. 이걸 떨치기 위해서 몸을 막 움직이고 싶은데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옛날 그 기억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그 길로 검도 동아리방을 찾아갔어요. 


그렇게 몸을 격렬하게 써 본 경험이 처음이었어요. 격투기다 보니 운동 강도가 높거든요, 그 순간에 잡생각이 사라지면서 사고가 굉장히 단순해지는데 그 감각이 저에게는 엄청 힐링이 되더라고요. 힘들지만 그런 재미를 느끼면서 계속하게 된 거 같아요.


코로나19로 인해 검도 생활에도 변화가 있었을 거 같아요.

십 수년간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해왔던 일이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경험을 했어요. 거의 1년 동안 도장 문이 닫혀있었는데, 수련을 못 하니까 그 시간에 집에 누워만 있게 되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유튜브 보면서 요가도 하고 이것저것 해봤는데 검도만큼 재밌진 않았어요.

그러다 올해 3월부터 다시 도장을 나가고 있는데요. 호구 안에 마스크를 낀 채로 운동하는 게 호흡하기 엄청 힘들더라고요. 대련할 때 서로 눈밖에 안 보이고, 그마저 4단계부터는 대련도 아예 할 수 없어요. 여러 제약이 있는 상황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당장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어요. 그 나름대로 또 재밌어요.


소셜미디어에 오랫동안 일상 검도 만화를 연재하고 계시잖아요. 어떤 이야기인가요?

계정을 운영한 지는 한 3년 정도 되었네요. 생활검도인 이소의 순간순간을 그리고 있어요. 수련하면서 느낀 작은 생각, 겪었던 에피소드처럼 아주 작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최근에는 잘 안 올리고 있지만 다른 분들의 사연을 받아서 만화로 그리는 시도도 했어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한 번은 제가 개인 소셜미디어에 낙서 끄적거린 걸 올렸더니 거기에 아버지께서 "네가 50편을 그리면 아이패드를 사주마."라는 댓글을 달아 주셨어요. 거기에 제가 "그럼 사주시면 할게요."라고 대꾸하고.(웃음) 그렇게 농담처럼 가볍게 만화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 도장을 다니면서 조금 외로웠거든요, 주변에는 전부 남자 선배들뿐이고 항상 저 혼자 여자인 그런 상황들이. 제가 하고 싶은 사소한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누군가를 찾고 싶었어요.


'콘텐츠'라는 게 정말 신기한 점이, 갑자기 반응이 '빵'하고 터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제가 팔로워 0명부터 시작을 했거든요. 아무도 안 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좋아요' 숫자가 급증했어요. 그렇게 시각적으로 반응이 보이니까 엄청 동기부여가 되었어요. 


이소의 인스타 툰 중


그동안 만화를 연재하며 어떤 경험을 해보았나요?

우선, 그동안 올린 결과물들을 모아 독립출판물을 2권 만들어 판매했어요. 어떤 플랫폼에 기대지 않고 오직 내가 만든 채널에서 작지만, 수익을 내 본 경험이었어요. 또 독립서점에서 '디지털 드로잉 워크숍'전시도 진행했어요. 또 잡지사와 인터뷰도 해보았네요.

아마 가장 큰 사건은 출판 계약이겠죠. 출판사 2곳과 계약을 했어요. 그중 첫 계약은 브런치에 올라온 제 만화를 보고 제의를 주셨어요. 물론 금액이 많진 않았지만, 경력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조직에 기대지 않고 내 이름을 걸고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였죠. 이런 식으로 뭔가 하나를 시도하면 그걸 계기로 또 다른 일거리가 조금씩 생겨났어요.


취미였던 검도가 어느새 '일'로도 연장되는 모습을 보며 '성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아서 하던 게 일이 되는 상황들이 이소에게는 어떻게 느껴지나요?

괴롭다. 일은 다 똑같이 힘들다.(웃음) 처음에는 엄청나게 신났던 기억이 나요. 내가 좋아하던 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니까 너무 재밌었죠. 그러다 보니까 업무량 조절을 잘 못 했어요. 주말까지 밤낮없이 작업하고 그랬더니 어느 순간 푹 고꾸라지더라고요. 일을 지속하려면 잘 맺고 끊는 법을 배우고, 충분히 쉬면서 체력 안배를 해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이 일을 오래 좋아하기 위한 나름의 루틴과 방식을 찾아가는 상황이에요.


검도를 해오며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다면 하나 소개해주세요.

2019년에 '한국사회인검도대회'라는 아마추어 전국대회의 단체전을 '남자 장년부'로 출전한 적 있어요. 원래 남성팀은 5인조인데요, 딱 한 명 결원이 생길 경우 여성을 포함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요. 도장에 보통 저 혼자 여자니까 단체전을 나갈 일이 잘 없었거든요. 대회가 너무 나가고 싶어서 선배들에게 "혼성 단체전 한번 해보자." 하고 슬쩍슬쩍 흘렸어요.(웃음)

검도에서 남자 장년부는 체력도 좋은 데다가 숙련도도 올라와 있는 연령대라 시합상대로 꽤 버거워요. 저보다 크고 힘이 센 사람들과 시합을 한 거죠. 그때 내지른 기합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던 거 같네요.(웃음) '광탈'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3회전을 다 이기고 조 결승까지 진출했어요. 물론 마지막 4회전에서 지긴 했지만, 그날 최선을 다해 부딪혔던 것과 시합 끝나고 사람들이 박수 쳐주고 했던 순간들이 기억에 남네요. 저희 팀 모두 뿌듯해했어요.


시합에 출전한 이소


이소가 검도를 하게끔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그때그때 달랐던 거 같아요. 검도에는 승단과 시합이라는 이벤트가 있는데요, 그 퀘스트를 하나씩 깨 가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어요.

인터넷에서 "저항감을 몸으로 느끼고 극복해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라는 표현을 봤어요. 누가 나를 때리려고 하는 상황이 엄청 무서워 죽을 거 같고, 반대로 내가 공격을 하면 성취감도 전부 다 내 몸으로 느껴져요. 그런 경험을 통해 고통을 감당하는 폭이 조금 커지는 거 같아요. 그런 게 너무 재미있는 운동이에요. 

또 같이 수련했던 도반(道伴)들. 좋은 분들을 만나서 좋은 영향을 받았죠. 이런 여러 가지 이유가 다 검도를 하는 데 동기부여가 되었어요. 


긴 시간 ‘검도'라는 한 가지 취미를 꾸준히 해올 수 있었던 지구력이 대단하게 느껴져요.

저는 그 ‘지구력’이 콤플렉스였어요. 남들은 해보다 안될 거 같으면 바로 노선을 바꾸잖아요. 뭔가 잘하는 다른 게 있었으면 금방 갈아탔을 거 같은데, 생각보다 그런 게 별로 없더라고요.(웃음) 습득 속도도 빠른 편은 아니라서 검도를 할 때도 굉장히 더뎠어요. 남들은 이미 3년 차 때 입상도 하는데 저는 성적을 내기까지 10년 넘게 걸렸어요. 다른 사람보다 못하고 성과도 없어서 오히려 더 붙잡고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한참이 지난 뒤에 돌아보니, 어느 시점부터 제가 꽤 잘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만큼 오래 해보니까, 뭔가를 꼭 잘해야만 계속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몰라요. 사실 이건 조직 생활에서는 통용이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하거든요, 못하면 사라지는 게 당연한 사회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제 인생에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도 계속 머물 수 있는 장소가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이소가 검도를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17년 전에는 목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는데요, 지금은 그냥 제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어요.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시작했지만, 점점 검도를 하면서 성취하는 나, 만난 사람들, 이런 게 다 너무 좋아졌어요. 이것을 내 일상에 들여놓으면 스스로 괜찮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저는 검도를 통해서 만난 제 모습이 좋아요.


이소가 생각하는 검도의 매력은?

누구나 이기고 싶고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이 마음을 도장에서는 보통 ‘호승심’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이런 욕심들은 좀처럼 드러내기 어려운 종류라고 생각해요. 검도에는 그런 공격성을 표출해도 누군가 다치지 않도록 여러 장치가 존재해요. 그 안에서 자신의 공격성을 충분히 표출하고 발산하는 건 생각보다 건강한 경험이거든요. 저는 항상 주눅 들어있고 소심한 사람이지만 검도를 할 때만큼은 호승심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게 저에겐 되게 큰 장점이에요.


스스로 정의하는 '이소'는 어떤 사람인가요?

어슬렁거리는 사람, 관계 맺는 방식이 적극적인 편은 아닌 거 같아요. 주변을 배회하다 천천히 다가가는 편이에요. 그리고 이야기하는 사람, 꾸준한 사람.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보다 분량이 있는 작품을 창작 오픈 플랫폼에 공개하는 것. 지금까지는 검도를 소재로 한 ‘내 이야기’를 해왔다면, 가상의 이야기를 창작하는 것에 도전하고 싶어요. 제가 대형 포털에서 연재할 만큼 실력이 좋다고는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제가 가진 능력 안에서 나아갈 수 있는 다음 스텝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검도는 5단을 목표로 10월에 승단 심사를 보려고 하는데, 물론 떨어질 수도 있죠.(웃음) 그 정도의 계획입니다.




발행 무중력지대 성북

해당 인터뷰는 정부 방역 지침을 준수하며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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