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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모없어 보이는 취미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순간들.
- 게임으로 '연민'을, 캠핑으로 '사랑'을, 독서로 '지식'을 배우다.
- 취미의 쓸모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기록한 안내서.
우리는 종종 취미를 '쓸모없는 것'이라고 치부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 브런치북은 평범해 보이는 게임, 캠핑, 독서를 통해 취미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탐구합니다. 취미가 어떻게 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그 여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의 취미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좋아하면 일단 해봐야지!'라는 모토로 살아가는 호기심 많은 직장인. 어린 시절 <바람의 나라>에 푹 빠져 살았던 소년은 이제 동경하던 게임회사의 시니어 게임 기획자가 되었다. 게임, 캠핑, 독서, 글쓰기, 롱보드까지, 좋아하는 것들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름은 하나지만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듯한 다채로운 삶을 꿈꾸며, 오늘도 새로운 관심사를 발견하고 도전하는 일상을 즐기는 중이다.
"취미는 손을 내밀지 않아도 위태로운 나를 번번이 붙잡아주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좋아하는 것들은 무채색의 삶에 색감을 더한다."
믿거나 말거나, 10년 전만 해도 취미가 많다고 하면 회사에서 좋지 않게 봤다. 대학 시절 취업 준비를 할 때였다. 취직한 선배는 이력서 취미란에 '쓸모 있는' 취미만 적으라고 조언했다. 적을 게 없다면 차라리 빈칸으로 두라고 했다. 취미가 많으면 '쓸모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으로 보일 거라고.
몇 년 전 재취업할 때도 이력서 취미란을 빈칸으로 뒀다. 독서와 캠핑을 즐겼지만 적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에는 내 취미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취미는 봄날의 꽃향기처럼 내 몸에서 은은히 배어 나왔다. 점심시간이면 일찍 식사를 마치고 사내 카페테리아의 한적한 곳에서 책을 읽었다. 동료가 캠핑 얘기를 꺼내면, 마치 우연히 알게 된 것처럼 타프 설치법이나 팩 박는 방법 같은 팁들을 슬쩍 전해주곤 했다.
사람들이 취미를 쓸모없다고 여기는 와중에, 나는 내게 있어 취미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일지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얼마 길지 않은 인생을 돌아보니, 취미는 손을 내밀지 않아도 위태로운 나를 번번이 붙잡아주었다. 도시의 낯섦을 느끼던 초등학생 시절, 외로움에 잠식당할 뻔한 나를 구원한 것은 다름 아닌 게임이었다.
취업 후 삶의 변곡점에 도달했을 때,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게 해준 것이 캠핑이었다. 인생에 한 번씩 찾아오는 고민으로 시름할 때, 책에서 답을 찾고 모임에서 고민을 털어놓게 해준 것은 독서였다. 내 삶은 꾸불꾸불한 강줄기 같았다. 시련이라는 퇴적층이 무너질 때마다, 취미라는 든든한 지류들이 합류해 강물을 바다로 인도해 주었다.
취미는 텅 빈 내 마음을 따스하게 채워주었고, 지친 영혼을 보살펴주었으며, 납작한 나를 크게 부풀어 오르게 해주었다. 이토록 쓸모 있는 취미의 세계로 나를 이끈 그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나라는 존재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보면, 그 중심에는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호기심이야말로 좋아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발견하게 하는 내 취미의 근원이었다. 한 번은 독서모임에서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라는 책을 매개로, 각자의 '좋아하는 것들'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노트에 적기 시작했고, 어느새 노트가 빼곡해졌다. 음식, 과일, 꽃, 작가, 게임, 음악, 영화, 여행, 동물, 곤충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좋아하는 것들이 있었다. 세어보니 종류는 열아홉 개였고, 총 아흔아홉 개였다. 쓰면서 나도 놀라고, 함께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도 놀라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 한 참석자가 말했다. "모임장님이야말로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인 것 같아요."
몇 가지만 꼽자면, 두부, 열무김치, 유부초밥부터 카스타드, 마가렛 같은 과자들, 흑맥주와 수정과 같은 음료들, 참외와 토마토, 동백꽃과 비자꽃이 있다. 여기에 특정 버스 좌석의 번호, 작가 김애란과 올가 토카르추크, 게임 바이오쇼크와 심즈, 영화 서편제와 홀리모터스까지 더해진다. 이 단어들은 어떤 이에겐 익숙할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겐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이 모든 것들이 '나'라는 땅에 심어진 마늘 모종 같은 존재다. 언제든 따스한 볕과 시원한 물만 주어지면 무럭무럭 자랄 준비가 되어 있는 씨앗들. 이들은 각자의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숨어있다. 취미의 진정한 쓸모는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에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은 사이하테 타히의 말처럼, '세계와 나의 공통점을 찾아 표현하는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세상과 소통하고, 그 속에서 내가 있을 위치를 찾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으로 키운 취미들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나에게 다가왔다. 책으로 깊이 있는 경험을, 캠핑으로 개인 성장을, 게임으로 사회 연결을 이루며, 취미는 결국 자아실현의 영역에 도달했다.
좋아하는 것들은 내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좋아하는 것들은 나의 가치관, 세계관, 그리고 삶의 방식을 반영했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즐기는 과정에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독특한 개성을 만들었다. 이는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갖는 취미를 넘어서, 나만의 철학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은 마치 보물찾기와 같다. 때로는 우연히, 때로는 의도적으로 흥미로운 관심사를 발견하고 그것에 단박에 빠진다. 이 과정에서 내 안에 있는 세계를 탐험하고, 전에는 몰랐던 내 모습을 만난다. 가평 캠핑장에서 우연히 청설모를 발견하자, 내 안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좋아하는 것들은 무채색의 삶에 색감을 더한다. 그것은 단조로운 풀들 사이에 피어나는 꽃과 같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시간을 쏟는, 이 모든 경험들이 모여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 취미는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거울이 된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과 관계 맺는 일, 그것이 취미가 나에게 주는 쓸모이자 의미로 다가온다.
여름의 기운에 취해, 나는 혼자서 충남 공주로 발걸음을 옮겼다. 봉황초등학교 맞은편 조붓한 골목길을 따라 '길담서원'이라는 책방을 찾아갔지만, 휴무일이었다.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책방 담장에 새겨진 글귀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수국이 바람에 나풀거리며 문장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필기체로 쓰인 영어 문장은 읽기 힘들었지만, 그것은 버트런드 러셀의 자서전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에서 발췌한 구절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지배해 온 세 가지 강렬한 열정에 대해 말했다. 그는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 사랑에 대한 갈망, 그리고 지식에 대한 추구가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 왔다'고 했다. 나는 이 문장을 담장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함께 마음에 새겼다.
처음에는 멀게만 느껴졌던 문장이, 서서히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담장 위로 뻗은 감나무 잎사귀가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가을이 오면 타지에서 고생하는 아들을 위해 정성스레 감을 따시던 부모님의 주름진 손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나에게 사랑이란 부모님이었고, 또한 자연 그 자체였음을 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러셀의 자서전을 읽으며, 그의 메시지가 내 삶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놀랍게도, 그가 말한 세 가지 열정 - 연민, 사랑, 지식 - 이 내 취미 속에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고, 취미에 대한 나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게임은 내게 '연민'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 살며 느낀 외로움을 달래주던 친구였다. PC방에서 만난 <바람의 나라>는 현수라는 소중한 친구를 선물해 줬다. 함께 모험을 떠나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며 우리는 성장했다. 게임 속 캐릭터의 성장과 좌절을 경험하며, 나는 실제 삶에서의 어려움과 극복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게임 개발자가 되어서는 사랑에 대한 결핍으로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법을 배웠다.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세상과 교감하는 통로다.
캠핑은 내게 '사랑'이다.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우는 순간부터,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됐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캠핑하러 갔던 감포 해변에서의 추억이 떠올랐다. 부모님과 누나들과 함께한 그 시간, 모래성을 쌓고 파도와 놀던 그 순간들이 내 안의 사랑을 키워왔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우주의 광대함을 느끼고, 새벽안개 속에서 일출을 맞이하며 생명의 경이로움을 체험했다. 캠핑은 나를 자연과 연결하는 끈이었고, 그 끈을 통해 흐르는 것은 부모님으로 받은 사랑이자 자연에 대한 사랑이다.
책은 내게 '지식'이다. 고등학교 시절 도서관 구석에서 발견한 일본 문학책들은 내 세계를 넓혔다. 나쓰메 소세키, 무라카미 하루키, 에쿠니 가오리의 글들은 내 마음속 깊은 곳을 울렸다. 그들의 말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죽음의 그림자와 마주했을 때, 책은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웠다. 정호승의 시는 내 외로움을 달래주었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은 삶의 의미를 찾게 해줬다. 에리히 프롬의 철학은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게 했다. 책은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니라, 내 삶을 변화시키는 마법의 열쇠다.
처서가 지나니 매미 소리는 잦아들고, 대신 숲에서 귀뚜라미와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이제 가을 석양 캠핑을 준비할 시기다. 그 순간이 그리워 찍어둔 석양 사진을 다시 꺼내본다. 서해의 수많은 섬과 겹치는 붉은 노을은 매년 봐도 황홀하다. 캠핑을 갈 때면 늘 읽고 싶은 책을 두세 권 챙긴다. 온전히 혼자 있을 때 책이 가장 잘 읽힌다. 개미들이 자갈 사이를 움직이는 옅은 소리조차 들릴 것 같은 고요함 속에서,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만이 들린다.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에어컨 나오는 호텔에서 책 읽기를 '북캉스'라 부른다면, 나는 이것을 '북캠핑'이라 이름 지었다. 일상에 쫓겨 읽지 못했던 책들을 다 읽고 돌아올 때, 그 캠핑은 특별히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다.
게임기 '닌텐도 스위치'도 빼놓지 않고 챙긴다. 엔딩을 보지 못한 게임들이 수두룩하니 말이다. 해가 뜬 낮에는 책을 읽고, 해가 진 밤에는 군고구마가 익어가는 난로 앞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게임을 즐긴다. 까만 밤이 커튼처럼 드리운 캠핑장에서, 텐트 밖으로 새어 나가는 작은 빛은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 같다. 여기에 싱글 몰트 위스키 한 잔과 게리 멀리건의 쿨재즈가 더해지면, 텐트 속은 그야말로 광막한 우주가 된다. 내 영혼이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넓디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이렇게 캠핑, 게임, 책이 어우러질 때, 내 삶은 깨끗한 물로 샤워한 듯 상쾌해진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씻겨 나가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여유가 생긴다. 그럴 때면 취미가 나를 보살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안도감은 덤이다.
취미는 나를 품어주고, 나 또한 취미를 품었다. 일상에 지친 날 텐트가 따스한 품을 내주었고, 외로울 때 게임이, 생각이 멈췄을 때 책이 말을 건넸다. 그럴 때마다 빠르게 돌아가던 세상이 천천히 회전하며, 멀어졌던 것들이 가까워졌다. 가장 멀어졌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다. 취미는 고맙게도 나 자신의 존재를 마주하고, 세상과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었다.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발견하게 했다. 나의 취미는 이렇게 내 삶을 보살피고 있었다.
취미는 나에게 단순한 쓸모를 넘어선 삶의 본질적 의미다. 그것은 마치 봄바람처럼 내 삶의 방향을 살며시 바꾸고, 나를 변화시켰다. 취미를 통해 연민과 사랑, 그리고 지식을 익히며 나 자신을 알아가고, 날마다 소중히 여기게 됐다. 일상의 틈새에서 작은 행복을 발견하는 법도 배웠다.
이런 경험을 한 나는, 취미의 쓸모를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취미를 소중히 여기라고. 취미는 단순한 활동이 아닌, 우리의 내면을 풍요롭게 하고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따스한 창구니까.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과 관계 맺는 일에 정성을 다하기를. 당신이 어떤 취미를 가졌든, 그 안에서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니까. 처음엔 쓸모없어 보이던 취미도 언젠가는 당신 삶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만은 꼭 기억하길 바란다. 우리가 취미를 보살피는 것처럼, 취미 또한 우리를 보살피고 있다는 것을.
Thanks to 아버지, 어머니, 작은누나, 큰누나 그리고 애정하는 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