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숫타니파타>
낡은 것을 좋아하지 말라. 새로운 것에 매혹당하지도 말라. 사라져 가는 것을 슬퍼하지 말라. 잡아 끄는 것에 붙잡히지 말라. 944 (P325)
<숫타니파타>는 불교의 많은 경전 중에서 가장 초기에 이루어진 경전으로 1,149수의 시를 70경에 정리, 이것을 다섯 장으로 나뉘어 있다. 범어로 '숫타'는 말의 묶음, '니파타'는 모음이란 뜻으로 '말의 모음집'이라는 의미가 있다. 부처가 80세의 나이로 열반에 든 후,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간추려 간결한 산문 형태로 묶은 것으로 초기 경전의 소박한 형태를 통해 부처의 가르침이 단순하고 소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책을 번역한 법정 스님의 오두막에는 <숫타니파타>의 경구가 붙어 있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1장 '뱀의 비유'에 있는 '무소의 뿔' 경구의 중 하나이다. 이 경구에는 부처가 가르치고자 한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집착'하지 말고 '탐욕'을 버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지혜'를 통해 '무지'에서 깨어나 '평안'하라.
성북동 조붓한 길을 따라 올라가니 '삼각산길상사' 현판을 단 일주문이 보인다. 아담한 사찰은 찾아오는 이를 반기듯 은성한 햇살을 쏟아내고 있었다. 극락전을 지나 법정 스님이 입적한 영진각 가는 길섶 그루터기에 앉았다. 들썽였던 마음은 자연이 내는 침묵의 소리에 침잠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극락전에서 예불 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눈에는 재작년 구례 화엄사 법당에서 반야심경을 외고 있었던 풍경이 펼쳐졌다.
"세상에는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이 있고 의지의 대상은 그 여섯번째이다. 그런 것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난다면 곧 괴로움에서 벗어나리라. 171" 부처가 말하고자 했던 내용은 반야심경 '무안이비설신의/무색성향미촉법' 구절에 담겨있었다. 눈, 귀, 코, 혀, 몸, 뜻에 의해 나타나는 형태, 소리, 향기, 맛, 감촉은 모두 괴로움을 만들어내므로 평안을 얻으려면 오감을 경계하라는 부처의 가르침을. 나는 부끄럽게도 의미도 모른 채 법당에서 외고 있었다.
"생각을 떠난 사람에게는 얽매임이 없다.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사람에게는 어리석음이 없다. 그러나 생각과 견해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남과 충돌하면서 세상을 방황한다. 847" 부처는 오감에 의한 물질적 집착과 함께 생각에 대한 집착도 경계하라고 말한다. 얼마 전 읽었던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적 실존양식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소유하는 여러 대상물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인간의 전반적인 마음가짐이다" 라는 대목과 비슷하다. 부처는 마음가짐 즉, 생각이 소유를 탐하여 괴로움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생각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히 나와 비슷하게 생각한 제자들이 많았다. 부처는 답했다. "바르게 생각하지도 말고 잘못 생각하지도 말며, 생각을 가지지도 말고 생각을 없애지도 말라. 이렇게 수행하는 자에게 형태가 소멸된다. 그러나 의식은 생각을 인연으로 넓어지는 것이다 874"
무슨 말인지 부처에게 되묻고 싶었다. 성인은 역시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며 볼멘소리를 냈다. 그때 책장에 꽂혀있던 <마음챙김의 시>가 시야에 들어왔다. 내가 생각하고 있음을 의식하라. '알아차림'을 통해 생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이 이해가 되자, 불교 경전을 읽은 것이 아니라 심리학책을 읽은 느낌이 들었다. 어설프게라도 부처의 가르침을 알게 되니 마음이 끌끌해졌다.
얼마 전 대중의 공분을 샀던 스님의 '풀소유'사건이 있었다. 부처는 소유하는 것에 대해 파멸과 천한 사람이라 비유하며 늘 경계하라고 말한다. 선망하고 존경해 하는 스님들이 법정 스님처럼 '열반'에 들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씁쓸해졌다. 그들은 나처럼 부처의 가르침을 어설프게 받은 사람이 아닐 것이기에 생각은 여정했다. 법정 스님께 인사드리고 길상사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