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힘과 존재함의 경계.

심윤경,<영원한 유산>

by 김뜻뜻
영원한유산.jpg 사진의 배경은 벽수산장이 있었던 옥인동을 방문해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오른쪽의 기둥은 벽수산장의 출입문이며, 정면에 보이는 인왕산에는 벽수산장이 있었다.



적산, 적이 남겨두고 간 자산이라는 표현에는 불을 지르고 싶은 적의와 한입에 삼키고 싶은 상반된 욕망이 뒤섞여 듣기만 해도 잠잠하던 피마저 들끓게 했다.(P67)
지금의 대한민국과 그때의 조선은 다른 세상이 아닌가? 나는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형편은 그때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네.(P97)
이 집은 위대한 문화유산이고 사적으로 지정되어야 마땅하네.(P237)
저택은 그의 눈앞에 확실히 존재하고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P248)


"해동이란 그가 보지 못할 해방된 세상을 자식들을 누리기를 기원한 간절한 이름이었다"

1966년 새해, 독립운동가의 아들인 이해동과 민족반역자 윤덕영의 딸 윤원섭은 언커크(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의 본부로 사용하고 있는 적산(벽수산장)을 통해 잊힘과 존재함 그 경계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돼지막에 숨겼던 독립선언문 인쇄기 때문에 일제에 끌려갔던 이해동의 아버지. 경술국치에 앞장 서서 친일했던 윤원섭의 아버지.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자긍심이었다.


"해동이 가진 것은 온통 미미한 것들뿐이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윤원섭의 친일미화 행동과 그녀를 두둔하는 세계(언커크)에 의해 해동은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던 중 해동은 자신의 우주였던 고모님의 별세와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에 대한 의혹을 겪는다. 윤원섭의 비서로 좌천된 그는 자신이 가진 알량한 자긍심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해동이 가진 것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미미한 것들이었으며, 윤원섭이 가지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영원한 것들이었다. 적의 유산인 벽수산장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대학생 때 관광 목적으로 군산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어스름한 저녁 내항의 야경은 여느때 보다 아름다웠다. 다음날 일제 수탈의 현장인 내항 부잔교에 대해 알고 나자 역사에 관해 관심 없었던 내가 열없이 느껴졌다. 그때 문화재로 등재되어있던 적산가옥들을 둘러본 뒤로 적산은 귀중한 근대유산이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적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잊힘과 존재함의 그 경계에 있었던 해동은 조금 더 침착해졌다. 소설 말미, 해동의 "다 별일이 아니었다"는 커트보니것의 <제5도살장>의 "뭐 다 그런거지"와 비슷하면서 다르다. 세상은 다 그런 것이며 알고 보면 별일 아니라고 여기는 무던함과 흔들리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경외감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을 살 수 없을 것이기에 해동의 말은 여정했다.


해동의 고민이 짙게 배였다. 자랑스럽고 떳떳한 독립운동가 아들의 자긍심이 윤원섭을 만남으로써 무너져가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가슴 저리게 만들었다. 해동에게 적산은 '적의 유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나, 현실은 불하받기를 원하는 이들로 넘쳐나는 '자산'이었다. 자긍심과 저택은 모두 '존재'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긍심은 눈에 보이는 벽수산장앞에서 맥없이 꼬꾸라지며 잊혀졌다.


영원할 것 같았던 벽수산장은 1973년 철거되었다. 이로써 눈에 보이지 않았던 독립운동가의 자긍심이, 그것을 지켜내려고 애면글면했던 해동의 마음이 영원한 유산으로 우리에게 전해질 것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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