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원, <시와 산책>
그 무엇도 하찮지 않다고 말하는 마음이 '시' P24
걷지 말라니요! 걷지 않고 어떻게 숨을 쉬나요? 걷지 않으면 내 마음은 어디에서 사나요? P89
당신은 당신이 낯설지 않나요? 당신이 잘 보이나요? P122
같이 걸어요' 모든 시작이 이런 말이면 어떨까요. 같이 걷자는 말. 제 마음은 단번에 기울 것입니다. P169
한정원 작가의 글을 읽자 떠오른 것은 니체의 말이었다. '나는 손만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발도 항상 한몫하고 싶어 한다'. 산책과 시를 통해 작가의 생각이 <시와 산책>에 오롯이 담겨있다. 줄을 긋지 않은 문장이 없을 정도로. 문장 하나하나가 사금을 찾는 사람처럼 들뜨게 한다. 깊어가는 가을에 읽기 좋은 책이다.
지난달 서울농학교를 다녀오면서 서촌을 들렀다. 층층이 위치한 한옥들과 골목 빼곡히 들어선 단층의 가게들은 이곳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조붓한 골목길을 걷다가 우연히 서점을 만났다. 창 너머로 보이는 책장에는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었고, 노란 포스트잇이 책마다 정갈하게 붙여져 있었다. 그곳에서 이 책을 만났다. 책 포스트잇에는 "책방지기 인생책"이라고 적혀있었다.
사물들의 경이로운 진실, / 그것이 내가 날마다 발견하는 것이다. /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의 그것이다. / 이 사실이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페르난도 페소아, [사물들의 경이로운 진실]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니 괜스레 산책하고 싶어졌다. 후드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 문장, '걷는 사람은 시간을 제 것으로 장악하므로 시간에게 사로잡히지 않는다'처럼 시간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정처 없이 걸었다. 작가처럼 동네를 사랑하기 위해 동네를 걸었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연립단지 담장의 늙은 포도나무, 밥그릇 4개가 놓여 있는 공터, 간판 없는 허름한 세탁소.
옷을 수선하러 간 '그' 세탁소. 그곳엔 머리가 백발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었다. 네 평 남짓한 작은 가게에 딸린 방에는 손녀로 보이는 작은 꼬마가 누워서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색이 바래서 노오랗게 변한 벽지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곳에 있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서 수선을 잘 해주실까. 눈이 침침해서 바짓단을 잘못 수선하진 않을까. 그런 질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때 할머니가 요구르트를 내밀었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듯 아주 차가운. 손녀 먹으려고 꺼냈는데 마침 1개가 더 있어서 준다고. 갑작스러운 친절에, 상경해서 신새벽을 굼닐었던 그때가 떠올라서 울컥했다. 얼마나 걸릴까요. 1시간 뒤에 와. 할머니가 말했다. 방안에 누워있는 손녀는 입에 작은 막대 사탕을 물고 있었는데. 입안 치아에 사탕이 탁탁 부딪히는 소리만이 세탁소에 가득했다.
할아버지에게 앞으로 자주 오겠다고 말하며 편의점에서 사 온 과자를 건네드렸다. 손녀와 함께 드세요. 가게를 나와서 옷을 뒤살피니 멀끔하게 수선되어있어서 머쓱해졌다. 어스름해진 길을 따라 걸어오는데 손녀 주려고 차갑게 넣어놨던 그 요구르트 하나에 코로나로 요양병원에 면회를 못 간 지 오래된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포근하고 포근해서 맥락 없이 행복했던 어릴 적 그때도 함께.
<마음 챙김의 시>에서 류시화는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속도에 대한 세상의 숭배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시와 산책을 통해 자칫 살피지 못해 지나칠 수 있는 시간을 손에 고이 쥘 수 있게 해준다. 자신을 '산책자이면서 수집자'라고 말한 작가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쓸모를 기대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주변에 그득하다. ‘줍줍'한 이야기들로 작고 무른 나의 세계가 한없이 부풀어 오르고 단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