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성, <만세열전>
난 조선 사람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이었습니다. - 배재고보 2학년 김동혁(19)
만인을 죽이면 만인의 피가 백만을 물들이고, 백만을 죽이면 백만의 피가 천만을 물들일 것이오. 그럼 결국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소? - 보성사 사무원 인종익(49)
때는 1918년.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동방의 작은 나라로 하여금 독립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였다. 곧 희망은 '기획'으로 옮겨졌다. 몽양 여운형을 시작으로 의암 손병희와 이승훈으로. 천도교와 기독교, 불교를 중심으로 민족대표 33인이 꾸려지고 독립선언서가 작성되었다. 독립에 대한 불꽃은 '전달자와 실행자'들로 2천만 민족에게 옮겨붙었다.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청춘들이 목숨을 걸고 전국으로 배포했다. 1919년 3월 1일. 한반도는 '만세'소리로 가득했다.
당시 사건 진술서를 통해서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붙잡힌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당연히 해야 했을 일'이기에 했다는 말을 했다. 일제의 강제병합은 온당치 않으며 억압과 핍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독립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일본으로 받는 억압, 차별, 착취가 없어지는 것이 중했다. 그들은 국가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가만히 있지 않고 일어나 당당히 싸우는 역사를 만들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중략)"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에 이런 대사가 있다.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겠지만, 다행히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 이 책은 아무개였던, 가장 어두웠던 시대에 가장 빛났던 그들의 이름과 이야기를 알려준다.
종로3가역에서 내려 종각역까지 걸어본다. 붉은 수건과 인력거에 붙인 깃발로 만세를 외쳤던 장소는 맞지만, 지금은 그 형태도 잡을 수없을 만큼 아득하다. 길을 걷다 보니 사념들이 겹친다. 나는 태생이 부끄러움이다.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은 수치심이나 수줍음의 그것과는 다르다. 숨고 싶다는 감정보단 더 나아지고 싶다는 감정에 가깝다.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은 '능히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았을 때'와 '무관심으로 진실을 놓쳤을 때'에 느끼는 감정이다.
1919년 3월 1일. 작고 큰 영웅들이 저마다의 함성으로 세상을 들썩거릴 때, 창과 총으로 사지가 찢어지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만세를 힘껏 외쳤을 때. 1919년 그 자리에 나서지 못한 시간적 착오의 부끄러움이다. 이는 2016년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던 사람들을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을 때의 부끄러움과 닮아있다. 나는 왜 이토록 부끄러운가. 영화 <동주>에서 정지용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야.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지"
무관심으로 그득해지지 않도록 한없이 부끄러워할 것이다. 위안부와 독립운동가를 폄훼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무고한 죄를 통해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소년원에서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갈 때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생리대가 없어서 깔창으로 대신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공평한 과정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분노를 느끼며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3·1운동에 참여했던 '보통' 사람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