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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뜻뜻 May 04. 2024

인간이 되는 데 필요한 자격.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저한테는 서로 속이면서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야말로 난해한 존재인 것입니다 P27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 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 P91



오바 요조에게.

저는 당신과 퍽 닮아있었습니다. 저는 타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타인의 눈치를 보며 제가 가지고 있는 감정들을 햇빛이 들지 않는 마음의 그늘막으로 조금씩 숨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사랑받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며, 사랑에 대해 책임지지 않기 위한 회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행동들을 당신은 '서비스'라고 지칭하는 것에 크게 공감되었습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성격은 청소년기에 발달이 끝난다고 합니다. 저나 당신이나 아마 그때쯤엔 성격이 비슷해져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의 수기를 읽으면서 저는 릴케의 <말테의 수기>가 떠올랐습니다. 작가의 수기형식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측면에서 그랬고, 젊은 날의 상실과 죽음 그리고 고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테의 수기>가 떠오른 이유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여기로 몰려드는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라는 첫 문장이 당신의 자살이 시작되었던 도쿄의 생활을 암시하는 말 같았기 때문입니다.



도쿄에서 당신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작은 상자를 열어버린 다케이치와의 만남은 세상과 이어지는 실을 제공해줬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도깨비 그림'에 대한 꿈은 '악우'라고 불리는 호리키의 만남을 종용하게 됩니다. 호리키와 함께 '비합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당신을 보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 둘 곳 없는 사람이 그나마 마음 둘 곳은 생겼다는 뜻이었으니깐요. 그러고 보면 당신은 이때까진 자살을 생각할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습니다.



당신에게 자살은 무엇이었나요. 쓰네코의 궁상맞은 고독 또는 요시코의 순결성 탈락으로 섣부른 결단을 내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앞에서 말한 <말테의 수기> 내용처럼 사람들의 조촐한 본성에 배신당하며 죽어가고 있었나요. 아니면 갑자기 쇠등에를 쳐 죽이는 소꼬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달아나려고 했었나요. 집 옥상에서 죄의 반의어가 무엇인지 호리키에게 물어봤었죠. 그때 당신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떠올린 것은 죄는 죽음을 통해서만 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죄의 씨앗이야"라고 말했으니깐요.



누군가 말하더군요. <인간 실격>은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후 읽어봐야 제대로 읽힌다고요. 아마도 제가 2년 전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그저 당신을 참으로 불쌍한 인간이라고만 여겼을 겁니다.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과 권고사직. 그리고 시작했던 일들이 줄줄이 엎어지면서 생겼던 트라우마들이 한 겹씩 쌓이기 시작하면서 사회에 대한 비난과 인간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던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인간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아주 조금은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인간 실격인가요. 인간 사회에 스며들기 위해 억지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들은 먹고살기 바빠서 감정에 무덤덤해져 있다가 몇몇 배반들을 만났을 겁니다. 그 중 몇몇은 사회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무저항과 신뢰를 가진 다른 누군가를 배반하며 스스로 역치를 높이며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겉으로는 인간으로 보이지만 인간 실격된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분명 속은 문드러진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자 이제 누가 인간 실격인가요



P.S 저는 당신처럼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모든 것이 지나간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느리지만, 일정한 속도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괜찮아지겠죠. 저도 누군가에게는 '하느님처럼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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