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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뜻뜻 May 11. 2024

떠나야 했던 사람들에게.

제시카 브루더, <노마드랜드>




우리는 빠르게 바퀴 달린 국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P128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지만, 국민들은 대체로 가난하며, 가난한 미국인들은 자기 자신을 싫어하도록 강요받는다 P337
점점 커지는 예금과 부채 사이의 간극에는 질문 하나가 매달려 있다. 계속 살아가기 위해 당신은 이 삶의 어떤 부분을 기꺼이 포기하겠는가? P400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은 새로운 계급이면서 경제 지표종인 '노마드'를 만들어냈다. 중산층의 안락함에서 까마득히 아래로 추락한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제시카 브루더'는 3년간 밴과 중고RV(Recreational Vehicle) 그리고 평범한 낡은 세단을 개조해서 길 위의 삶을 살아가는 노마드들을 만나면서 겪은 경험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해서 길 위에서 유랑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준다.


"당신은 온전히 당신의 책임이다" 지구상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은 자국민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예순다섯부터 나오는 사회보장연금만으로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기업들의 횡포에 정규 노동시간 이상으로 노동을 요구받는 현실에 처해있었다. 보호는커녕 홈리스 상태를 사실상 범죄화하는 일련의 법들이 미국을 휩쓸고 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산이 버텨주는 나이보다 오래 사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는 형편이었다. 이런 현상들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기에 충분했다.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에서 탄생한 이 새로운 계급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그들이 단순히 연민의 대상은 아니라고 작가는 말한다. CheapRVLiving 을 만든 ‘밥 웰스’는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길 위를 나섰다. 그들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경에서 의미를 추구하고자 했다. 연대를 통해 노마드들이 불쌍한 유랑민들이 아닌 불평등을 타파할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린다 메이’는 그 씨앗을 심을 수 있는 땅을 사들였고, 최종적으로 그들이 죽음이 아닌 '은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노마드랜드>를 읽으면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오버랩되었다. 미국은 소설 속 문명국과 닮아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의심하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노예 같은 사람들. 권리는 국가로부터 배정받는 것이므로 문명국 사람들은 그것을 따른다. 하지만 야만국의 '존'은 그들과 다르다. 국가가 제공해 주는 권리보다 더 나은 권리. 삶이 나아질 권리를 당당히 요구한다. 노마드들이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의 연대를 통해 불평등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당당히 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노매드랜드>를 보았다. 영화는 길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노마드 이전에 한 명의 개인으로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삶을 겁박하는지, 무엇이 삶을 북돋우는지에 대한 것들이 명징하게 다가왔다. 대도시의 불빛과 달리 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어둡지만, 서로의 랜턴을 켜서 희망을 확인하는 곳이 노매드랜드였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단지 빛이 없어서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희망은 그 자리에 가만히 놓여있었다.


'너무 가라앉아 있어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사회적 연대감. 우리는 그것을 '사회보장제도'라고 부른다. 한국은 '부(富)의 불평등’ 정도를 측정하는 소득분배 지표인 지니계수가 2017년 기준으로 0.355로 OECD국가 중 높은 편에 속한다. 한국에서도 빈곤층이 존재하고 그들은 여전히 복지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들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자유, 자아실현, 모험 같은 더 고결한 목표로 가는 문이 되어줄 수 있도록 '편견'은 버리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삶을 위해 기꺼이 포기해야 했던 모든 이들에게 '빛'이 내려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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