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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뜻뜻 May 25. 2024

인간은 왜 행복해야 하는가.

서은국, <행복의 기원>




행복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경험인데, 마치 머리에서 만들어내는 일종의 생각 혹은 가치라는 착각이 들게 한다.(P16)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P114)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 (P122)
행복은 가치나 이상, 혹은 도덕점 지침이 아니다, 천연의 행복은 레몬의 신맛처럼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P186)



최근에 읽은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의 소제목이 관계를 '행복'하게 만드는 대화였다. 책에서 감정은 욕구의 신호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행복'이라는 감정은 어떤 욕구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왜 인간은 행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의문이 들었다. 그러던 중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저자는 세계 100인의 행복학자인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이다. 그는 행복이라는 것은 생각이 아닌 경험이라고 말한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행복해진다'고 알고 있었던 내 지식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1장을 읽는 순간 내 지식의 천장이 와르르 무너졌었던, 한스 고슬링의 <팩트풀니스>가 떠올랐다. 나는 바지런하게 모아놓은 얕은 지식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경험을 또 하고 있었다.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하다.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이며, 행복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필요한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는 리차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와 맥락을 같이한다. 즉, 인간은 유전자를 담은 그릇이며 생존 기계이다. 저자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언급하며, 인간이 가진 모든 특성이 '생존 도구'의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당연히, 인간이 가진 정신적 특성인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모든 감정은 긍정적 정서(쾌)와 부정적 정서(불쾌)로 나누어진다. 인간의 뇌는 생존에 유리한 활동이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일에 계속 매진하라고 쾌를 느끼도록 한다. 반대로, 불리한 행동이나 생각들은 고통이라는 불쾌를 느끼도록 한다. 즉, 행복은 부정적 정서보다 긍정적 정서 경험을 더 자주 느끼는 것이며 이를 통해 생존에 유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큰 행복보다 작은 행복들이 인생을 채우고 있었던 각다분한 날들. 퇴근 후 코인 노래방에 갈 때 가장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소하고 확실했지만 지속성은 짧았다. 왜 이렇게 빨리 사라지는 걸까. 그에 대한 해답은 또 생존에 있다. '적응'이라는 현상이 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적응은 어떤 일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이다. 인간의 뇌는 쾌감 수준이 원점으로 돌아가야 다시 생존 의욕이 생기는 구조이기 때문에 행복에는 지속성이 짧을 수밖에 없다. 프랑스 사상가 '라 루시프코'의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지지도 않는다'라는 말이 맞는 것이다.


책을 읽기 전 내가 했던 질문으로 되돌아가고자 한다. 인간은 왜 행복해야 하는가. 결론적으로는 생존을 위해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인간의 몸은 '나'라는 유전자를 담은 이기적인 생존 기계이다. 행복은 '나'를 위해 만들어진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그 '행복'을 타인에게 증명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다. 타인에게 인정받아야지만 그 행복이 정당화되는 것인가. 퇴근 후 코인 노래방에 가는 행복감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다. 알베르 카뮈는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라'라고 말했다. 각자가 가진 가치와 이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이해하는 것. 그것이 삭막한 현대사회에서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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