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 돼볼게-
야근하며 완료한 일이 쓸모 없어졌을 때. 청소기를 샀는데 부품이 오지 않을 때. 중요한 약속 날 입을 옷이 세탁소에 있을 때. 3박 4일 제주도 비행기 안에서 냉장고 문을 열고 온 게 기억날 때. 놀랍게도 최근에 모두 겪은 일이다. 만약 5년 전의 나라면 마음을 쓰며 일을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다. 업무가 취소된 것을 상사에게 따졌을 것이고. 부품이 오지 않았다고 불평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흘러가는 일이라고 여긴다.
삶이 나에게 할 말이 있어서 그런 일이 일어났겠구나. 이미 벌어진 일이라서 내 마음만 소비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래로 덤덤히 흘려보낸다. 그럼에도 스트레스는 가랑비 옷 젓듯이 기분에 조금씩 스며든다. 괜찮은 척하는 마음은 금방 나에게 들킨다. 묘하게 표정이 퉁해지고 말끝이 내려간다. 그때가 되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물해 준다. 가령. 좋아하는 치킨 메뉴에 시원한 생맥주 같은 것들. 나를 좋아하는 마음은 포기하지 않고 나를 지켜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