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듬뿍 어린이 에세이.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by 김뜻뜻
어린이라는세계.jpg 사진의 배경은 여름의 서울 어린이대공원. 야심 차게 어린이분들을 만나러 왔지만, 코로나로 한산하다. 이 넓은 곳을 얼마나 뛰어다니고 싶을까. 행복한 일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해 줄 일은 무서운 대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할 힘을 키워 주는 것 아닐까. P53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P197
'어린이라는 세계'는 당신이 잊고 있었던, 신중하고 용감했던 당신의 세계다. P258


어린이에 대해 이토록 오랫동안 생각한 적이 있었을까. 어린이를 사랑하는 독서 교실 선생님의 에세이다. 어린이에 관한 이야기들이 한가득이다. 애정이 묻어난 글들에서 달콤한 향이 난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내 마음이 물큰해졌다.


서른이 훌쩍 넘어 강제적 어른이 되고 '어릴 때가 마냥 좋았지'라고 생각한 적이 많다. 숫제 어린 시절을 생각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이미 그 생각의 강을 건넜다면 돌아오기 힘들다. 여름철에 동네 아재 밭에서 참외를 서리하다가 들켰던 기억, 할머니 미싱기를 가지고 놀다가 고장 낸 기억, 전봇대에 걸린 연을 빼려고 돌을 던지다 이웃집 창문을 깼던 기억. 나에게 어린 시절은 놀기를 통해 사건 사고를 '자발'적으로 냈던 시절이었다.


'놀이'라는 단어보다 '놀기'라는 단어에서 기필코 놀고 말겠다는 어린이의 자발적 의지를 보았다는 작가의 글을 읽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맞다. 나는 얼마나 필사적으로 놀려고 노력했던가. 햇볕을 쐐야지만 놀았다고 생각했던 그때. 매일 비타민D 영양제를 복용하는 지금의 나는 믿지 못할 정도로 비타민D가 몸에서 흘러넘쳤던 날들이었다. 그러다 한 살 두 살 먹어가니 자연스레 '놀기'보다 '공부'가 우선인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나름의 교육에서 확고한 철학을 가지신 분이셨는데. 어린이라면 꿈 하나쯤은 가슴 속에 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철학은 어린이의 작은 가슴에 원대한 꿈을 품게 하였다. 그쯤 놀기에 지쳐있었던 나는 '남들이 놀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다. 욕구는 이내 꿈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현재의 게임기획자라는 직업이 되었다.


단순히 '공부'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나는 아마 지금의 '놀기' 직업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어른이란 어린이의 마음에 불씨 하나를 만들어주고 지켜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려서 뭘 모른다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어리다고 말해주지 않는 어른들이 문제이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어린이의 말을 무시하거나 놀리지 않았고, 한 사람으로 '대접'을 해준 그 선생님 덕분에 나도 어린이를 대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지난 4월 제주도의 작은 펜션에서 체크인 중에 어린이를 만났다. 펜션 주인의 아들이었는데, 아버지를 찾지 않고 출입 장부를 매우 부자연스럽게 펼쳐서 한참 동안 내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그 장부가 4월 장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펜션의 '차기 주인'답게 행동하려는 어린이가 머쓱해하지 않도록 옆에 꽂혀있던 4월 장부를 슬쩍 빼서 옆에 놓아두었다. 나는 그렇게 30분 만에 체크인을 마치고 숙소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날 숙소 열쇠를 건네준 어린이의 뿌듯한 표정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정지우 감독의 영화 <4등>에서는 어른이 보는 어린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어린이를 한 명의 존재로서 대접하기는커녕 성적이라는 지표를 통해 어린이를 판단하는 상황이 안쓰럽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른을 보며 어린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과 행동들은 답습되어 대물림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결국, 대물림을 끊게 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 중 <서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앞에 보이는 벽이 너무 높고, 세상이라는 가파른 물살에 몸을 가누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리다 겨우 내가 된다는 문장이다. 자라느라 바빠서 내가, 우리가 누군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어린이는 어른의 두 번째 세계이다. 어른들은 한때 어린이였다. 손을 잡아야 한다. 벽에 좌절하지 않게. 물살에 휩쓸리지 않게. 어린이들이 자라 '겨우' 내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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