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히 경험한다는 것이다(P21)
걷는 사람은 시간을 제 것으로 장악하므로 시간에게 사로잡히지 않는다(P33)
침묵을 만들어내는 것은 소리의 사라짐이 아니라 귀를 귀울이는 자질, 공간에 생명을 부여하는 존재의 가벼운 맥박이다(P71)
모든 걷기는 계절을 탄다.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감각들을 일깨우거나 아니면 같은 분위기 속에서 경험했던 다른 순간들의 내밀한 기억을 상기시킨다(P198)
저자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사회학 교수로, 걷기의 사용법을 안내하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쓰진 않았다. 그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걷기도 하는 그 고즈넉한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함께 걸어보자는 의도로 글을 써내려갔다.
책은 '루소', '소로우', '키에르케고르', '니체' 등 명사들의 말을 인용하며 걷기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 차 있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에서 자연이 들려주는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며, 주위에서 울려오는 소리들을 음미하고 즐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기술의 발달로 자동차와 같은 운송수단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걷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도시는 '침묵'이 없으며 '소음'만 있다. 도시의 길은 시간을 허송하지 않으려고 고심하는 가운데 거쳐 가야 할 코스의 일부로 변하고 말았다며 도시의 기능화, 획일화를 비판한다.
나는 '금강'을 걸었다. 겨울에는 갈대가 하얀 눈을 못 이겨 으스러지는 소리를, 봄에는 갯버들에 물오르는 소리를 숨죽여 듣곤 했다. 여름에는 샛노란 금계국이, 가을에는 연분홍 살살이꽃이 하얀 물안개를 이불처럼 덮고 있는 것을 사려 깊게 바라보곤 했다. '걷는 것은 여러 가지 풍경들과 말들 속을 통과하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나도 모르게 여러 계절을 두루 거치며 '침묵'의 말들 속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 후로 걸으면서 주위를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꽃과 나무는 어제와 오늘이 달라서 그 차이점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푸레나무가 있다면 꽃에 원두 향이 짙어졌는지 맡아보고, 감나무가 있다면 감꽃이 잎사귀 뒤에 숨어있는지 찾아본다. 걷다 보면 오직 '호기심'만이 남는다. 저자는 그것을 '세계'와 소통하는 방법이라 말한다. 호기심이 세계의 '두께'를 얇아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호기심'은 새, 꽃, 나무, 안개 등 그런 무용(無用)한 것들이 내는 '침묵'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자동차, 공사장, 확성기와 같은 유용(有用)한 것들이 내는 '소음'만 있을 뿐이다. 현대 사회는 무용한 것들보다 유용한 것들을 우선시한다. 유용한 것들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침묵'은 참을 수 없다. 이는 곧 '나'라는 존재를 세계와 만날 수 없게 만듦으로써 삶에서 소외시키게 된다.
'걷기'는 세계를 만나게 해주고 ‘나’의 존재가 여기, 지금, 이곳에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걷기가 존재에 대한 불안과 고뇌가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격려해주는 것이리라. <방랑자>에서 '진정한 삶은 움직임에서 구현된다'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말이 떠올랐다. 어느새 나는 신발 끈을 묶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