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어디쯤에 있나요, 했더니 누군가 스윙댄스를 권했다
“춤을 배우고 행복해졌어요.”
누가 한 말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문장은 오래 남았다. 하필 그때의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자주 생각하던 시기였다. 행복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 대체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누군가는 그걸 춤에서 찾았다니. 너무 막연해서 오히려 귀에 걸렸다.
그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서 비슷한 말을 또 들었다.
친구도 어디선가 “스윙댄스를 배우고 행복해졌다”는 사람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도대체 스윙댄스가 뭐길래, 사람들은 자꾸 거기서 행복을 주워 오는 걸까.
춤이라니.
그것도 남녀가 같이 추는 춤이라니.
그건 내 인생과는 별 상관없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나는 춤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몸은 하나인데 팔다리가 각자 다른 뜻을 품고 사는 편이었다. 그런데도 궁금했다. 궁금증은 사람을 참 쉽게 움직인다. 결국 친구와 나는 혼자 민망해지느니 둘이 같이 민망해지자는 마음으로 스윙댄스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처음 스윙댄스바에 들어가던 날의 풍경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벽면 가득 거울, 반질반질한 마룻바닥, 어딘가 노래방 조명과 영화 세트장을 반쯤 섞어놓은 듯한 빛. 치마를 입고 댄스화를 신은 여자들, 멜빵바지에 빵모자를 쓴 남자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또래들. 그 어둑한 공간 안에 그렇게 많은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부터가 내겐 낯설고 신기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모르고 살던 세계가 진짜 있었구나.
처음 배운 건 지터벅이었다.
그땐 누군가 “터벅터벅 걸어서 지터벅”이라고 설명해 줘서, 아 그렇구나 하고 순진하게 믿었다. 실제로 초보반의 나는 정말 터벅터벅 걷는 것 말고는 거의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동기들과 나란히 서서 발을 옮기고, 박자를 놓치고, 다시 웃으며 처음부터 해보는 시간이 반복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걷는 법을 새로 배우는 성인 같았다. 꽤 우스운 모습이었을 텐데, 이상하게 그 시절의 나는 그 우스움을 크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처음엔 낯선 남자와 손을 잡고 춤을 추는 것도 어색했다.
내 인생 어디에도 예고편이 없던 장면이었다. 그런데 몇 번 배우고 나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더 이상 그 사람이 ‘남자’로 느껴지지 않고,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존재’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스윙댄스는 리드와 팔로우가 신호를 주고받으며 추는 춤인데, 그 구조를 몸으로 익히기 시작하면 묘하게 관계가 단순해진다. 설명만 들으면 왠지 로맨스가 피어날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박자를 놓치지 않는 것이 훨씬 급하다. 설렐 틈이 없다.
그게 참 좋았다.
손을 잡고 있는데도 조금도 이성적인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그 사람은 내가 춤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파트너였고, 나는 그 단순하고 건강한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인간관계가 이 정도로 기능적으로 깔끔한 일도 드물다.
스윙댄스를 하면서 뜻밖에 좋았던 건 재즈를 듣는 귀가 열린다는 점이었다.
원래 나는 재즈를 즐겨 듣는 사람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재즈는 좀 어려운 음악 같았다. 함부로 좋아한다고 했다가 금세 들킬 것 같은 장르랄까. 그런데 춤을 추다 보니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아, 이 리듬에서는 몸이 이렇게 가는구나. 아, 여기서는 한 번 쉬고 다시 들어가는구나. 귀보다 몸이 먼저 이해했다. 그 후로 나는 가끔 라이브바를 찾아 재즈 공연을 듣게 되었고, 그건 스윙댄스를 배우지 않았다면 아마 열리지 않았을 문이었다.
몇 달쯤 지나자 졸업 공연을 준비하게 됐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취미반 공연이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 싶었다. 그런데 막상 공연이 다가오면 사람이 달라진다. 우리도 그랬다. 주말마다 모여 몇 시간씩 같은 동작을 맞췄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두 진지했다. 평소의 나라면 “취미가 왜 이렇게 본격적이죠?” 하고 중간에 도망쳤을 텐데, 이상하게 그때는 빠지지 않고 나갔다.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구 하나 심하게 투덜대지 않았다. 우리는 무슨 대형 기획사도 아닌데 데뷔를 앞둔 팀처럼 굴었다.
그리고 공연 당일, 사람들의 호응과 박수를 받으며 그 3분을 무사히 끝냈다.
그때의 성취감은 지금도 또렷하다. 회사에서 일을 잘 마쳤을 때 느끼는 감정과는 전혀 달랐다. 일의 성취감이 ‘해냈다’에 가깝다면, 그날의 성취감은 ‘살아 있었다’에 가까웠다. 얼굴은 달아오르고, 심장은 빨랐고, 나는 분명 부끄러운데도 아주 신나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잘 추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주 열심히 즐기는 사람은 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잘 추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같이 터벅터벅 걷던 사람들이 어느 날 바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정말 과장이 아니라, 그들은 점점 음악과 한 몸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장면을 보며 알게 됐다. 춤은 재능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연습이 사람을 바꾼다는 것을. 많이 한 사람은 몸에서 그 시간이 보인다는 것을.
나는 그들만큼 깊이 빠져들지는 못했다.
취미를 넘어 삶의 중심으로 옮겨갈 만큼 뜨겁진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스윙댄스는 내게 직업이 아니라 기쁨이었으니까. 잘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좋아했던 시간 자체로 이미 충분했다.
스윙댄스를 추면 묘하게 더 어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정확한 나이로 돌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잘 보이려는 마음보다 같이 웃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고, 잘해야 한다는 압박보다 계속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는 시간. 그 순수한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그 낯설고 조금은 부끄러운 취미를 1년 넘게 이어갈 수 있었다.
정말 몸치인 내가 춤을 1년 넘게 했다는 사실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이건 나 자신에게도 꽤 충격적인 이력이다. 이력서에는 못 써도 내 인생사에는 제법 굵게 써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 좋아했던 것들도 삶의 리듬이 달라지면 조용히 손에서 멀어지곤 하니까.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배우고 싶다. 물론 요즘은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이제는 스윙댄스보다 살사를 배워야 하는 나이인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나이에 따라 추천 댄스 장르가 달라지는 시스템은 아직 없는 걸로 안다.
스윙댄스를 배우고 나서부터는 여행지의 풍경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유럽에서 운 좋게 저렴한 가격으로 짧게 크루즈를 탄 적이 있었는데, 광장에서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천천히 춤추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이 꽤 오래 남았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 수 있을까, 음악이 나오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잠깐 생각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공원에서는 라이브 연주에 맞춰 잔디밭 근처에서 춤을 연습하는 사람들도 봤다. 너무 자연스럽고, 너무 아름답고, 너무 영화 같아서 몇 초 동안 진심으로 생각했다.
아, 나 여기 살고 싶다.
물론 여행지에서의 ‘여기 살아야겠다’는 마음은 대개 아주 짧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스윙댄스를 배워봤기 때문에 그 장면을 더 깊이 알아볼 수 있었다. 배우지 않았다면 그냥 사람들이 춤추는 풍경으로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저건 단순히 발을 움직이는 일이 아니라, 음악을 나누고 시간을 견디고 몸으로 삶을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스윙댄스 덕분에 나는 그 뒤로 다른 춤들도 조금씩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춤도 스윙댄스만큼 오래, 그리고 재미있게 붙들고 있지는 못했다. 내게 스윙댄스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낯선 공간에 들어가 어색함을 견디고, 사람들과 박자를 맞추고, 내 몸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걸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시간이었다.
정말로 몸치인 내가 춤을 췄다니.
가끔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나는 춤을 췄고, 즐거웠고, 행복했다.
언젠가 다시 하게 될까.
아니면 또 다른 춤을 배우게 될까.
사실 이제는 어느 쪽이든 괜찮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미 내게는 아주 근사한 기억 하나가 있으니까.
행복이 조금 모자라는 날이면 나는 그때를 꺼내본다.
어색하게 손을 내밀던 순간, 박자를 놓치고도 웃던 순간, 겨우 3분짜리 공연을 위해 진심으로 연습하던 순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끝난 뒤 이상하게 벅차오르던 마음.
그러면 알 것 같다.
아, 나는 한때 정말 즐겁게 살아본 적이 있구나.
춤을 배우고 행복해졌다는 사람의 말을, 이제는 나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