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디지털 방황기
유튜브를 처음 만난 건 정확히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다만 기억나는 건, 그 시절 한국 콘텐츠는 거의 없었고, 나는 외국인의 메이크업과 요리 영상들을 보며 밤을 보냈다는 것. 그렇게 몇 달을 보냈다. 퇴근 후 침대에 누우면 자동으로 유튜브를 켰고, 주말이면 반나절을 영상 앞에서 허비했다.
그러다 불면증이 생겼다. 밤마다 천장만 노렸다. 따뜻한 우유, 잠옷, 명상 앱. 인터넷의 뻔한 처방들을 다 써봤는데 소용없었다. 그때 ASMR을 발견했다.
첫 영상을 켰을 때 느낀 건, 뭐랄까. 누군가의 속닥거리는 목소리, 톡톡 거리는 소리, 색깔 있는 슬라임이 한 손가락으로 천천히 눌리는 모습.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신기하게도, 그 영상들이 진짜 효과가 있었다. 일단 영상을 켜면 한 시간 뒤 나는 잠들어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몰랐다. 다만 감사할 뿐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이거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누군가의 밤을 이렇게 밝혀줄 수 있지 않을까?"
10만 원짜리 마이크를 샀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마이크 앞에 앉았다.
톡톡.
슬르르.
톡톡.
슬르르.
매일 밤 같은 동작의 반복. 일 년을 그렇게 했다. 처음엔 설렜다. "내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겠다"는 순진한 희망으로 가득했다. 그 희망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구독자는 천천히 늘었다. 10명, 20명, 몇십 명. 그리고 멈췄다.
어느 날부터 나는 느꼈다. 매일 밤 마이크 앞에 앉는 게 점점 무거워진다는 것.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던 마음이, 언제부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른 욕망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 욕망도 충족되지 않고 있었다. 구독자 수를 확인하는 것이 나의 하루 루틴이 되어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조회수를 센다. 점심시간에도 본다. 퇴근 후에도 본다.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확인했다.
그 느낌은 절망이 아니라 공허함이었다. 마치 영구적으로 발사되지 않은 화살 같은. 마이크 앞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할 때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지만 답은 없었다.
어느 날 밤, 나는 유튜브를 더 돌아다니다 발견한 게 있다.
브이로그.
남의 일상 영상. 처음에는 그냥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하나 봤다. 또 봤다. 그다음엔 몇 시간을 봤다. 퇴근하고 침대에 누웠을 때부터 잠들 때까지. 남의 아침밥을 보고 남의 출근길을 보고 남의 카페 시간을 봤다.
그 과정에서 나는 뭔가 다른 것을 느꼈다. ASMR과는 달랐다. 댓글이 있었다. "공감해요", "저도 같은 기분이에요", "구독 눌렀어요". 반응이 있었다. 사람들이 댓글을 남겼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에 응답한다는 느낌. 그것이 내가 원했던 거구나. 그렇게 깨달았다.
그러다 생각했다. "어? 근데 내 일상도 저 정도면 되는데?" 아침에 눈을 떠서 퇴근할 때까지, 모든 순간이 갑자기 "촬영해야 할 장면"으로 보였다. 평범한 점심시간도, 지하철도, 하릴없이 앉아 있는 카페도. 렌즈를 통해 보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마치 내 일상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처럼.
20분짜리 첫 영상을 만들었을 때, 재생해 보며 생각했다. "오, 내 일상이 이렇게 예쁜가?" 그 순간의 감동은 정말이었다. 촬영은 정말 재미있었다. 진짜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편집. 파이널컷 프로를 결제했다. 유튜브 튜토리얼을 켰다. 첫 번째 영상은 2일이 걸렸다. 자막 하나를 달려고 폰트, 색상, 위치를 다 만졌다. 손가락이 아팠다. 눈이 침침했다. 새벽 2시가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편집 화면을 보고 있었다. 화면 너머로 보이는 창밖은 이미 새벽이었다.
하지만 멈추지 못했다. 왜? "이 영상이 올라가면 누군가는 이걸 볼 거고, 댓글을 달겠지"라는 기대감. 그것이 나를 앉혀 있게 했다. 3개월이 지났을 때, 나는 2시간 만에 한 편을 끝낼 수 있게 됐다. 빨라졌다고 생각했다. 성장했다고 느껴졌다. 처음엔.
하지만 어느 날 기계처럼 편집하던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손은 움직이는데, 내 마음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화면을 보고 있지만, 내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오직 시간을 단축하는 것만 중요했다. 효율을 높이는 것만 중요했다. "다음 영상을 언제 올릴 수 있을까"만 중요했다.
그게 얼마나 외로운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손은 움직이지만 영혼이 없는 상태. 그것을 깨달았을 때의 그 허탈함.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왜? 여러 이유가 섞여 있었을 거다. 아마도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까. 투자한 시간과 돈이 아까우니까. 그리고 "혹시 더 버티면 누군가는 나를 발견해주지 않을까"라는 마지막 희망. 그것들이 모두 함께 작동했다.
구독자는 천천히 늘었다. 100명. 200명. 300명.
그리고 멈췄다.
더 이상 안 늘었다.
그날 밤, 나는 내 채널에 들어갔다. 최신 영상의 조회수를 봤다. 300. 여전히 300에서 400을 오가고 있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어제처럼. 그제 깨달았다. 절대 안 될 거라는 것. 내 브이로그는 재미가 없다. 누구의 일기장을 보고 싶을까? 나조차 내 일상을 재미없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이 10분을 견딜 리 없다.
알고리즘은 나를 외면했다.
그 밤, 나는 이제까지 투자한 모든 것들을 계산했다. 마이크 값, 파이널컷 결제금, 밤샘 작업의 시간들, 손목 통증, 눈 피로. 모든 게 한순간에 무의미해 보였다. 마치 사막에 모래를 쌓고 있던 거 같은 기분. 아무리 쌓아도 바람이 불면 사라져 버릴 모래들.
하지만 잠깐.
다시 생각해 보니, 300명은 내 영상을 클릭했다. 그들은 몇 분을 할애했다. 내 영상을 봤다. 어쩌면 그중 누군가는 내 영상을 보며 위로받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의 일상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혹은 공감했을지도. 내가 알 수 없을 뿐이다. 알고리즘은 나를 외면했지만, 300명은 나를 보았다. 그들의 눈빛은 어땠을까. 그들은 나의 어떤 순간에 웃었을까. 나는 영원히 모를 것 같다. 이게 역설이다. 실패이면서 동시에 작은 성공. 알고리즘에만 선택받지 못한, 그럼에도 의미 있는 무언가.
영상 만들기를 멈췄다. 약 3년을 했으니까. 더 이상 설득력이 없었다. 마이크는 먼지를 뒤집어썼다. 파이널컷 프로는 실행 아이콘이 되어 책상 모서리에 남았다. 그 이후, 가끔 미련이 올라왔다.
밤 11시쯤 침대에서 유튜브를 스크롤할 때. "어?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구독자를 모았지?" "내가 좀 더 버텼으면 어땠을까? “
실패는 낭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아는 과정이었다. 가장 비효율적이고, 가장 길었지만, 가장 진정한 방식의 자기 발견. 여전히 나는 가끔 유튜브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영상을 보면, 기술이 새로워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혹은 밤이 길어질 때. 그때마다 미련이 살짝 올라온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이 내 삶 전체를 차지할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도 충분하다는 것. 미련을 안고 가는 것도, 또 다른 방식의 살아가기니까. 완전한 포기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재정렬.
지금 나는 글을 쓴다. 조회수도 세지 않고, 완벽함도 추구하지 않으면서. 단지 생각을 담아낼 뿐이다.
아직도 확실하지 않지만, 지금은 이게 맞는 것 같다. 손가락이 키보드를 누를 때마다, 내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을 때마다, 내가 찾던 것이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