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치료

폭우 속에서 시작된 1년, 그리고 포기

by 온빛

호주 멜버른 여행.

날씨 예보는 거짓말쟁이였다.

텐트 같은 폭우가 쏟아진 오후, 나는 관광객의 전형적인 선택지인 실내 활동을 검색하다 미술관 입장권을 끊고 있었다. '그림 몇 점 보고 나가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관 안은 생각보다 북적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사람들이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줄을 서서, 한 점의 그림 앞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처음엔 관광객들이겠거니 했지만 대부분 현지 사람들이었다. 스마트폰도 들지 않고 그냥 그림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사람들. 그 진지함이 전염됐다.

나도 줄을 섰다. 그리고 한 점, 또 한 점, 천천히 그림을 마주했다.




그때 일어난 일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면서 뭔가 이상한 감정이 일어났다.

마음 한구석이 건드려지는 느낌. 아무 계산도 없이, 아무 보상도 기대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표현한 예술가의 작품 앞에서 나도 모르게 치유받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나의 마음을 읽고 그것을 그려낸 것 같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나는 그날의 감정을 해석하고 싶었다. '그림보고 왜 느낌이 이렇지?'라는 호기심에서 시작된 검색은 한 단어에 멈췄다.


'미술치료'


그것이 내 인생을 조금 다르게 만든 순간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미술치료는 단순한 그림 그리기가 아니라 심리학과 미술이 만난 융합 치료였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처럼, 우리가 자유롭게 그린 그림 속에는 무의식의 세계가 투영된다. 말로는 숨길 수 있지만 그림 속의 색깔, 선의 강도, 구도, 여백까지 모두가 우리의 내면을 고백한다. 미술치료는 그 무의식적 메시지를 읽고, 자신도 모르던 자신을 만나게 하는 치료법이었다.




처음 다닌 곳은 백화점 문화센터였다.

3급부터 시작했다.

1급, 2급, 3급. 미술치료 자격증 체계는 마치 내 영혼의 층을 벗겨내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매주 한 번, 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앉아 그림을 그렸다. 회사 업무로 지쳐가는 직장인, 이별의 상처를 품고 있는 누군가, 70대인데도 자아를 찾아 헤매는 할머니까지. 우린 모두 캔버스에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


거기서 배운 첫 번째 깨달음은 이것이었다. "그림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심지어 숨기려는 그 의도까지도 캔버스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색감에서, 선의 강도에서, 여백의 의미에서. 그림은 항상 진실을 고백한다. 미술이라는 도구가 우리 마음의 통역가가 되어주는 것이다.


선생님은 계속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림은 도구일 뿐입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 어디서 상처받았는가, 그 뿌리를 찾는 것입니다."


2급은 한 단계 더 깊었다. 나 자신을 들여다봤을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자존감을 올리는 여러 기법들. 색깔 선택의 심리적 의미, 구도 변화가 드러내는 성장, 반복되는 패턴들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그렇게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모르는 사람인지를. 내가 뭘 좋아하는지, 정말로 뭘 원하는지, 그렇게 자명해야 할 것들조차 몰랐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있던 사람처럼.


1급까지 거의 1년. 꾸준히 배우면서 깨달은 게 있다. 그림을 통해 나와 대화하고, 진짜 나와 만나는 것. 그것이 미술치료의 핵심이었다. 작품의 질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경험 자체가 치유가 되는 것. 그리고 그 치유의 과정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부산시 행사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봉사 활동을 했다. 아이들과 부모에게 각각 '자신이 생각하는 동물'을 그리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그린 동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해석했다. 그 후 부모는 그 동물을 그렸다.


그 순간, 몇몇 부모의 얼굴이 붉어졌다.

"혹시... 그린 동물의 특징이 아이와의 관계 패턴은 아닐까요?"라는 온화한 질문이 누군가의 방어기제를 건드렸다.

그 후의 침묵이 길었다.


내가 초보자였던 탓일까, 그날 이후 깨달은 건 정말 많았다. 미술치료는 검사가 아니라 치료라는 이름이 어울린다는 것. 상처에 손을 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한 번 건드려지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다.


다행히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 프로그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경험 이후, 나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초보자의 솔직함이 때론 무례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상처에서 파생된 행동들이 무의식적으로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도.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은 습관이 되고, 때론 성격까지 되어버린다. 그 선택의 사슬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는지, 그 봉사 활동을 통해 처음으로 깨달았다.




친한 친구와 여행을 갔다.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미술치료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하나의 간단한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가 갑자기 울었다.

20년을 함께했지만 몰랐던 상처가 그 한 장의 그림에서 터져 나왔다. 나는 깜짝 놀랐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20년을 알고 지낸 이 친구가 감춰온 상처에서 비롯된 모든 행동, 모든 선택, 심지어 성격의 일부까지를 과연 이해해 줄 수 있었나?"


그때 이해한 것 같다.

왜 미술치료에서 '무의식'을 이렇게 강조하는지. 우리가 보는 사람의 행동이나 말투, 반응들의 대부분은 과거의 상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대부분 의식 아래 묻혀있다.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무의식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반복되는 패턴이 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같은 감정으로 반응하고, 같은 관계의 방식으로 타인을 대한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더 부드러워지고,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 뒤에 숨겨진 상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나는 이 길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진심으로.


실제로 함께 1급을 배우던 또래 두 명은 주말마다 대학원에 다녔다. 그들은 1급 자격증을 따고 얼마 뒤 퇴사를 했다. 그리고 지금 미술치료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성공 사례가 눈앞에 있었다.


나도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했을 때, 상황은 복잡했다.

미술치료사가 되려면 다시 공부해야 한다. 자격증뿐 아니라 대학원까지 생각하면, 최소 2-3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건 평생 공부하는 일이라는 것. 박사 학위를 따도 끝이 아니다. 수련 기간만 최소 3년. 거의 무보수로.


수익성? 미술치료사의 평균 연봉은 연 2,500만 원 정도. 초기 비용과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현재 직장이 훨씬 안정적이었다. 센터를 차려도, 초기 투자와 운영비는 만만치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현실적인 질문이 있었다.

"나는 다시 몇 년을 무급으로 버틸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요'였다.

그래서 나는 멈췄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결정이 옳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때 그만두지 말고 계속 밀어붙였다면, 지금쯤 수련 기간을 마치고 수익을 실현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누군가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지 않았을까?


그 생각은 때때로 들려온다. 특히 회사 생활이 힘들 때, 또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래서 요즘 다시 고민 중이다. 이 공부를 다시 해볼까, 하고.

더 늦어지면 또 후회할까 봐서.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후회보다는 다른 감정이 더 크다. 멜버른의 폭우가 없었다면, 그 미술관이 없었다면 내가 나 자신을 이렇게 깊이 있게 만날 수 있었을까? 직업으로는 선택하지 않았지만, 미술치료를 공부하면서 나는 분명히 변했다.


더 나를 알게 되었고,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조금씩 깨달았고, 타인의 상처에 더 섬세해지게 했다. 20년을 알던 친구조차 모르던 부분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림 한 장이 수천 마디 말보다 더 진실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도 충분한 선물인 것 같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도, 또 다른 그림의 시작인 것 같다.

완성을 기다리며, 나는 계속 붓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고 있다. 멜버른의 폭우처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쏟아지는 인생 속에서, 그 우연의 소나기가 내 마음의 캔버스에 어떤 색을 칠할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색깔이 무엇이 되든 간에, 그것이 나의 진정한 선택이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말이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