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과외

토론토의 카페에서 전 세계의 모니터까지, 'K-선생님' 이야기

by 온빛

"안녕하세요"라는 한마디를 가르치고 시간당 10만 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 한국인 여자친구의 아버지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한국어를 배우러 왔다는 파란 눈의 캐나다 남자. 나는 그 자리에서 무슨 깡이었는지 모를 당당함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꽤 잘 가르쳤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부산에서 잠시 알고 지내던 터키 친구를 토론토 한복판에서 다시 만났다. 정치적인 이유로 캐나다에 망명 온 친구였다. 아무 연고 없는 타국에서 마주치니 오래된 고향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눈 덮인 토론토의 디저트 카페를 같이 돌아다니다가 그 친구가 물었다. 한국어를 많이 잊어버렸는데, 조금 가르쳐줄 수 있느냐고.


그 가벼운 요청에 응했을 뿐인데 "잘 가르친다"는 칭찬이 돌아왔다. 친구는 내가 토론토에 머무는 동안 한국어 과외를 본격적으로 해보라며 등을 떠밀었다. 그 무렵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은퇴한 캐나다 할아버지를 카페에서 만나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 나도 저 할아버지처럼 하면 되겠구나.' 커뮤니티 사이트에 구인 글을 올렸고, 생각보다 많은 연락이 쏟아졌다.


첫 수업에서 내가 꼭 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한국어 이름 지어주기. 초등학교 때 영어 학원에서 처음 영어 이름을 받았던 날이 생각났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 이름 하나가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묘한 애정을 만들어줬다. 그래서 나도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것이나 본인 이름의 뜻을 한글로 바꿔 이름을 지어줬다. 학생들은 이 단순한 선물에 예상보다 훨씬 열광했다.


파나마 출신으로 10대 때 캐나다로 이민 온 학생도 그렇게 한국어 이름을 받았다. 최애 아이돌이 트와이스고 한국 드라마라면 사족을 못 쓰던 친구였다. 이 학생은 내가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온라인으로 몇 년을 더 배웠다. 코로나 때 유튜브로 결혼식을 생중계하는 게 유행이었는데, 나에게도 링크를 보내주어 집에서 실시간으로 그 친구의 결혼식을 지켜봤다. 얼마 전엔 예쁜 아들도 낳았다. 한국어를 가르치다 가족 같은 인연이 생긴 셈이다.


물론 과정이 늘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재미로 배우는 사람들에게 교과서적인 한국어를 들이밀면 세 번째 수업쯤 어김없이 연락이 끊겼다. 흥미를 잃어가는 게 눈에 보였다. 그래서 아이돌 영상을 틀고, 드라마 대사를 가져오고, 실제로 쓰는 말투를 가르쳤다. 문법 용어는 거의 쓰지 않았다.


사실 이건 내가 영어를 배우면서 가장 싫어했던 것들 때문이다. 관계대명사, 현재완료, 수동태. 한국어로 된 문법 용어를 외우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용어보다 규칙이 먼저였고, 규칙보다 말하기가 먼저였다. 그 순서가 내게는 당연했는데, 가르치고 보니 학생들에게도 꽤 효과적이었다. 영어를 배워본 사람이 한국어를 가르치면, 상대가 어디서 막히는지와 어떤 설명이 와닿는지가 본능적으로 보인다. 내가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 가르친 격이다.


한국 대학에 가고 싶다는 미국인 학생을 가르칠 때는 나도 바짝 긴장했다. 시험 문제를 같이 풀고 교재를 따라가며 수업 전날 미리 예습을 했다. 목표가 명확한 사람은 달랐다. 예습과 복습이 철저했고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지금 이 학생은 서울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인 남자친구와 연애 중이다. 솔직히 나보다 나은 것 같아 조금 부럽기도 하다.


가르치다 보면 이상한 순간이 온다. 한국어를 설명하면서 내가 처음으로 우리말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 때다. 한국어는 주어와 목적어를 자주 생략한다. 종결어미 하나로 수십 가지 감정을 표현한다.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와 표현이 어찌나 많은지, 외국인 학생에게 설명하다가 나도 새삼 놀라곤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나는 한국 사회에서 늘 눈치를 많이 보며 살았는데, 그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 자체의 구조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분위기를 읽어야만 대화가 완성되는 언어, 생략된 것들을 알아서 채워야 하는 언어. 그게 우리말이었다. 모국어를 외국인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지금은 과외를 거의 하지 않는다. 온라인이어도 상대의 흥미를 끌어내는 데 드는 에너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많이 벌 때도 한 달에 오십만 원 정도였으니 N잡치고 수익이 화려하지도 않다. 그래도 이 부업에서 얻은 것 중 가장 쓸모 있는 건 한국어교원자격증이 아니다. 회사를 잘리는 날이 와도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전 세계 누구와도 연결되어 내 몫을 할 수 있다는 소박한 보험이다.


그리고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잘 가르칠 수 있었다는 것. 어쩌면 누군가를 이끌기 위해서는 그 분야를 완벽하게 정복하기보다, 한 번쯤 지독하게 헤맨 적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파란 눈의 캐나다 남자는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여자친구 아버지에게 점수를 좀 땄는지도. 하지만 그날 수업을 마치고 카페 문을 나설 때, 나는 꽤 뿌듯했다. 나라는 사람의 쓸모를 타국에서 처음 확인한 순간이었으니까.

화요일 연재